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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선사’의 마지막 법문은?

등록 2021-09-02 14:35수정 2021-09-02 17:59

경북 문경 봉암사에서 고우 스님 다비식 봉행
2일 낮 경북 문경시 희양산 봉암사 연화대에서 고우 스님 다비식이 봉행되고 있다. 조현 기자
2일 낮 경북 문경시 희양산 봉암사 연화대에서 고우 스님 다비식이 봉행되고 있다. 조현 기자

“스님, 불 들어갑니다.”

2일 낮 12시 경북 문경시 희양산 봉암사 연화대에서 고우 스님(1937~2021)의 법구가 불길에 휩싸였다. ‘타다닥….’ 장작불 위의 법구가 타들어가자 제자들과 보살들이 “스님, 스님”을 불렀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성심성의껏 답해주던 그런 자상한 말씀을 어디 가서 들어야 하느냐’는 보살들의 애타는 마음은 아랑곳없이 산은 푸르고 하늘은 맑았다.

이에 앞서 봉행된 영결식엔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 총무원장 원행 스님, 원로의장 세민 스님을 비롯한 2천여명의 사부대중이 이 시대 ‘마지막 선사’를 추모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조전을 보내 “스님과 생전에 두번 뵈었는데, 무한경쟁을 하지 말고, 나와 너의 분별을 버리는 무한 향상을 강조했다”고 회고했다.

스님의 장례식은 전국선원수좌회장으로 봉행됐다. 수좌란 참선을 하는 선승을 말한다. 봉암사는 조계종 유일의 비구 특별선원으로, 수좌들의 본거지다. 전국의 수좌들이 이미 봉암사를 떠난 지 30년도 넘은 고우 스님의 마지막을 이곳에서 모시기로 한 것은 오늘날 봉암사를 세계 최고의 참선도량이 되도록 한 데 고우 스님이 최고 공로자이기 때문이다. 봉암사를 중심으로 전국의 선방을 이끌어온 무여·혜국·일오·원타·선법·철산·영진 스님 등 내노라하는 수좌들이 5일 내내 장례식장을 지켰다.

경북 봉화 금봉암에서 은거하던 말년의 고우 스님. 조현 기자
경북 봉화 금봉암에서 은거하던 말년의 고우 스님. 조현 기자

성철·청담 스님 등이 1947년 천년고찰 봉암사에서 ‘부처님 법(진리)대로만 살아보자’는 ‘봉암사 결사’를 결행했으나, 이후 한국전쟁으로 다시 퇴락하면서 대처승이 장악해 산내 암자에서 정진하는 수좌들 식량조차 대주지 않던 지경이었다. 해인총림 유나 원타 스님은 “이를 안 고우 스님을 중심으로 7~8명의 수좌들이 1968년 봉암사에서 살며 참선을 시작한 것이 오늘날 봉암사를 선도량으로 만든 제2 봉암사 결사의 시작”이라며 “대처승이 희양산의 벌목 허가까지 내준 것을 수좌들과 온몸으로 막아 공무집행방해죄로 한달간 옥살이까지 하면서 희양산의 자연을 지키고 관광지가 되는 걸 막아 천혜의 도량을 지켜낸 일등공로자”고 회고했다. 봉암사 주지를 했던 함현 스님도 “봉암사 조실이 오래 비었을 때 조실로 모시기 위해 세번이나 찾아갔지만 오히려 적명 스님을 추천했다”며 자리나 권한에 연연하지 않았던 모습을 회고했다.

경북 봉화 금봉암에서 반려견과 함께한 고우 스님. 조현 기자
경북 봉화 금봉암에서 반려견과 함께한 고우 스님. 조현 기자

1980년 전두환 신군부의 조계종 총무원 장악으로 집행부와 본사 주지들이 대거 끌려가면서 봉암사 수좌들이 총무원을 임시로 맡았을 때, 스님은 실제 실무 총책임 총무부장을 맡아 복잡한 인사를 마무리지은 뒤 3개월 만에 두 손 털고 봉암사로 돌아왔다. 말년에 은거한 경북 봉화 금봉암에서 부처님 오신 날 등 공양도 받지 않고 마음의 등(지혜)을 밝히라 권해왔다. 전국수좌회 공동대표 일오 스님은 “한평생 올곧고 흠이 없어 모든 수좌들이 존경했다”고 말했다.

2일 경북 문경 희양산 봉암사에서 고우 스님 영결식이 봉행되고 있다. 조현 기자
2일 경북 문경 희양산 봉암사에서 고우 스님 영결식이 봉행되고 있다. 조현 기자

스님은 부자나 권력자나 주민이나 일체 차별 없이 대한 것으로 유명하다. 정통 수좌들이 불교 내에서도 화두선 이외는 멸시해 아예 상종하지 않은 것과 달리 의견을 달리한 이들과의 맞장 토론에도 응한 드문 선사였다. 고우 스님을 필생의 스승으로 모시고 참선 수행한 불교인재원의 박희승 교수는 “스님의 법문을 갈구하는 대중의 청을 물리지 못해 70살 넘는 나이에 운전면허를 따서 손수 운전해 가서 법문을 해주곤 했다”며 “재가자들이 바른 안목을 갖추어 바르게 공부하면 출가자들과 다름없이 공부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아주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너와 나, 위와 아래, 좌와 우가 없는 중도(中道)를 말이 아닌 삶으로 실천했다는 것이다. 맏상좌(제자) 중산 스님은 “정진 욕심으로 주로 선방에서만 정진했는데, 생활 속에서 이기적 자기를 내려놓는 수행이야말로 진정한 참선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2일 경북 문경 봉암사에서 고우 스님 법구를 다비장으로 운구하고 있는 스님들. 조현 기자
2일 경북 문경 봉암사에서 고우 스님 법구를 다비장으로 운구하고 있는 스님들. 조현 기자

스님은 한없이 열려있으면서도 법(진리)엔 엄정했다. 석종사 조실 혜국 스님은 “중국의 선종사찰 순례 때 선문답에 말대꾸조차 못하는 중국의 방장들이 ‘한국의 간화선은 중국에서 건너가지 않았느냐’고 하자, 스님은 ‘저 허공에도 이 나라 저 나라가 있느냐’고 일침을 놓았다”고 전했다. 문상 와서 5일 내내 봉암사에 머문 금강 스님은 “미황사를 빨리 나와 스님 곁에서 모시고 살 작정이었는데 실기하고 말았다”며 아쉬워했다.

2일 낮 경북 문경시 희양산 봉암사 연화대에서 고우 스님 다비식이 봉행되고 있다. 조현 기자
2일 낮 경북 문경시 희양산 봉암사 연화대에서 고우 스님 다비식이 봉행되고 있다. 조현 기자

불가에선 화중생련(火中生蓮)이라 한다. 연못에서 피는 연꽃이 아니라 불 속에서 피는 연꽃이라야 진정한 깨달음이라는 의미다. 스님은 20대 초 군복무 중 폐결핵에 걸려 폐 한쪽을 잘라내고, 생을 포기하는 심정으로 출가했다고 한다. 그는 병 또한 마음 따라 생긴다는 불경 구절대로 마음을 내려놓고 병마저 사라지는 체험을 했으니, 이미 젊은 날 생사를 넘나드는 불꽃 속에서 부활의 꽃을 피운 셈이다.

병도 고도 허상일 뿐인가. 다비식 날 비가 쏟아질 것이란 예보도 허상이었다. 세상이야, 승가야 삼독(탐욕·성냄·어리석음)에 붙들려 있든 말든, 맑고 밝은 삶으로 일관한 스님의 본래 면목인 듯 티 없이 맑은 허공이 삶과 죽음 또한 허상이라는 마지막 법문을 설하고 있었다.

문경/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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