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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들에 재산 나눠준 ‘화순의 성자’ 이공 이세종 기린다

등록 2022-11-01 07:00수정 2022-11-01 10:12

4일 학술세미나와 추모예배
전남 화순군 도암면 등광리 이공 이세종 생가터에서 이공의 삶을 따르면서 살아가는 한영우 선생(가운데 모자 쓴 이)이 지난 2012년 이곳을 찾은 성지순례객들과 함께하고 있다. 조현 기자
전남 화순군 도암면 등광리 이공 이세종 생가터에서 이공의 삶을 따르면서 살아가는 한영우 선생(가운데 모자 쓴 이)이 지난 2012년 이곳을 찾은 성지순례객들과 함께하고 있다. 조현 기자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광주·전남 개신교 영성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공 이세종(1879~1944)의 삶을 기리기 위한 학술 세미나가 열린다. 이세종선생기념사업회 주최로 오는 4일 전남 화순군 화순 하니움 문화스포츠센터 만연홀에서 오전 ‘영성의 삶’, 오후 ‘근현대사상사적 위상’을 주제로 펼쳐진다. 오전과 오후 세미나 사이엔 이세종과 그의 제자인 ‘맨발의 성자’ 이현필 선생 추모 예배가 열린다.

지난 7월 화순군 도암면 등광리 이공 생가를 출발해 이공기도터를 거쳐 천태산-홍골제-부활동산을 도는 5.83㎞ 성지순례길을 개설한 화순군에서도 구복규 군수, 하성동 군의회의장 등이 함께해 순례길에 대해 설명할 예정이다.

이세종은 남의 집 머슴으로 일하다 마을 최고 부자가 됐다. 성경을 읽고 개안한 뒤 스스로 ‘이공(空)’이 되어 재산을 빈자들에게 나눠주고, 부인과 해혼(잠자리를 하지 않음)하고, 사람은 물론 동식물까지도 지극한 생명애로 애경하는 삶을 실천한 인물이다.

전남 화순 이공 성지순례길
전남 화순 이공 성지순례길
한국전쟁 때 고아와 폐병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다 자신도 폐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 ‘맨발의 성자’ 이현필(1913~64), ‘나환우들의 아버지’ 오방 최흥종(1880~1966) 등 성자적 삶을 산 이들이 그를 따랐으며, 그리스도적 토착 사상가인 다석 유영모(1890~1981) 등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차정식 한일장신대 신학과 교수는 미리 배포한 발표문에서 “이세종은 목사도, 신학교의 학자도 아니었지만, 치열한 삶의 실천 현장에서 성경을 통해 깨달은 기독교의 진리를 구경(최고의 깨달음)적 영성의 경지로 밀어붙여 가히 성인의 경지에 다다른 인물로 평가된다”며 “그의 활동 반경은 화순 일대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그의 실천적 유산은 세월이 갈수록 더 깊어지고 넓게 확산되고 있다”고 평했다.

전남 화순군 도암면 등광리 이공 이세종 생가터에서 이공의 삶을 따르면서 살아가는 한영우 선생이 지난 2012년 이곳을 찾은 성지순례객들에게 이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현 기자
전남 화순군 도암면 등광리 이공 이세종 생가터에서 이공의 삶을 따르면서 살아가는 한영우 선생이 지난 2012년 이곳을 찾은 성지순례객들에게 이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현 기자
차 교수는 특히 이세종의 생태영성에 주목했다. 그는 “고사리를 꺾을 때 거기서 나오는 액체를 생명의 피로 여기고, 길을 가다가 혹여 자기 발에 개미 같은 미물이라도 밟혀 죽을까 싶어 심히 조심하여 살필 정도로 뭇 생명체에 대한 예민한 생태적 감수성을 지녔고, 자신의 많은 재산을 가난한 자들과 공익기관에 다 분배하여 무소유의 삶을 지향하면서, 산속에 움막을 짓고 음식도 도토리 같은 열매, 말라 죽은 식물성을 위주로 생명 연장의 최소치만을 취하며 자족했다”며 “그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호랑이를 대면해 그 행실을 꾸짖고 나무라면서 동시에 ‘호 선생’이라고 이웃 피조물로 예의를 갖춰 존대하며 교화함으로써 늑대를 교화한 성 프란치스코와 같이 흉측한 동물마저 사탄의 분신이 아니라 긍휼히 여겨 품고 사랑해야 할 하나님의 피조 생명으로 여겼다”고 기렸다. 이에 대해 황종열 광주가톨릭대 강사는 이세종의 열린 생명적 삶과 달리 배타적인 현 개신교의 닫힌 관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차 교수의 발표를 통해 이세종의 자연 생태 차원에서는 하느님 보편에 열려 있었다는 것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데, 그리스도교 중심주의라 할 수 있는 불교 배타는 이세종의 보편 살이와 어떻게 상관되는가”라고 물음을 제기했다.

김창수 전 녹색대 교수는 “자기비움(케노시스)은 신이나 법(깨달음)과 하나가 되는 과정과 상태로서, 예수나 석가, 노자와 장자 그리고 공자, 최제우나 박중빈 등이 도달한 경지로, 이세종의 생명존중 사상도 깊은 영성 가운데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며 독일의 신비주의 사상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1260~1327)와 비교했다. 그는 “에크하르트는 사람들이 순종 가운데 자신의 자아에서 벗어나 자신의 것과 결별하게 된다면 바로 그때 신도 어쩔 수 없이 그들 안으로 들어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세종도 세상에 대해 공으로, 빈 껍질로 남아 거기에 깃든 신의 현현 속에서 살았다”고 봤다.

작가인 성금란 목사는 발표문에서 이세종을 따르며 생태적 삶의 실천가로, 독신영성가로 살아온 한영우(1929~2019)와 이원희 등의 삶을 조명하며, 이공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유적지 순례 여정을 소개했다. 김종옥 이세종선생기념사업회 이사는 “이공기도터를 중심으로 천태산, 화학산 일대가 스페인 산티아고 같은 성지순례길로 부상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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