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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마음산책

돼지 죽통에 오줌 눠도 그 향기 잊을 수 없어라

등록 2020-06-24 16:56수정 2020-06-24 17:30

권좌와 재물이 있던 생전과 달리 사후엔 기리는 이가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후에야 더욱 진한 향내를 풍기는 사람도 있다. <북산을 걷다>(명작 펴냄)란 책을 보니, 악취도 감출 수 없지만 향기도 감출 수 없는가 보다. 북산(北山)은 지난해 6월 77살로 별세한 최완택 목사의 호다.

북산은 대중이 알 만한 유명인이 아닌, 가난한 교회 목사였다. 그런데 동화 작가 권정생(1937~2007)이 유언장에서 유언 집행인으로 첫번째 거명하며 “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이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라고 했던 인물이다. 권정생의 말년 ‘돼지 움막’을 방불케 했던 안동 거처를 두어번 찾아 깐깐한 그 성정을 호흡한 적이 있다. 그러니 권정생의 저런 표현이 얼마만한 상찬인지 모르지 않는다.

북산 최완택 목사
북산 최완택 목사
이현주 목사가 지난해 북산의 장례식장에서 감신대 동기이자 절친인 북산 최완택 목사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이현주 목사가 지난해 북산의 장례식장에서 감신대 동기이자 절친인 북산 최완택 목사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북산은 유신 시절 한국공해문제연구소를 창립해 공해문제를 최초로 이슈화한 기독교 환경운동의 선구자였다. 북산 1주기를 맞아 무려 44명이 추모글을 모아 ‘북산과 함께 걷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은 것은 그가 기독교 환경운동의 태두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자연스러운 영성 때문이었다. 나도 추모글을 보태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북산과 가까이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고 채희동 목사(1964~2004)를 통해 귀가 닳도록 북산에 대해 듣곤 했다. 나의 벗 채희동도 북산처럼 이름 없이 살다가 만 40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인물이다. 채희동은 충남 아산의 신자 20명도 안 되는 컨테이너 교회에서 목회를 하면서, 교회를 짓기 위해 모아둔 3천만원을, 고관절 통증에 시달리던 여성 신자 손에 쥐여줬던 이다. 그 신자는 너무도 심한 통증 때문에 그날 밤 안으로 자살하려던 중이었다고 한다. 채희동은 <샘>이란 잡지를 내 최완택, 이현주, 권정생 등의 글을 실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6년이 지났는데도 지인들이 십시일반 글과 발간비를 기부해 <샘> 잡지를 아직도 내고 있다.

채희동 목사(왼쪽)과 함께 산에 오른 북산 최완택 목사
채희동 목사(왼쪽)과 함께 산에 오른 북산 최완택 목사
북산 최완택 목사와 함께 산에 오른 목산회 멤버들.
북산 최완택 목사와 함께 산에 오른 목산회 멤버들.
매주 목요일마다 산에 오른 북산 최완택(뒷줄 왼쪽에서 세번째) 목사와 함께 산에 오른 목산회 멤버들.
매주 목요일마다 산에 오른 북산 최완택(뒷줄 왼쪽에서 세번째) 목사와 함께 산에 오른 목산회 멤버들.
그 채 목사에게 평소 가장 많이 듣던 이야기가 바로 북산에 관한 것이었다. 목요일이면 늘 그분과 함께 산에 간다는 것이었다. 산에 올라 술도 한잔 나눈다는 말에 ‘목사가 술을!’이라는 의구심보다는 겉볼안의 솔직과 편안함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채희동은 ‘민들레교회 이야기’라는 민들레교회 주보를 건네주곤 했다. 북산이 비뚤배뚤한 손글씨로 만든 주보였다.

4대강 대운하 사업에 반대하는 종교인 100일 순례 등에서 북산을 종종 만난 적이 있다. 그때 “인터뷰를 하자”고 제안했지만, 그는 “내세울 만한 게 없다”고 했다. 유명해지려 고개를 높이 드는 종교인들과 달리 북산은 햇살을 멀리한 채 심산의 음지를 제자리로 아는 이끼인 듯했다.

북산 최완택 목사가 직접 손글씨로 써 만든, 민들레교회 주보
북산 최완택 목사가 직접 손글씨로 써 만든, 민들레교회 주보

생전 여러 종교 성직자 출가자들과 함께 4대강 살리기 전국 순례에 참가한 북산 최완택 목사(맨오른쪽)
생전 여러 종교 성직자 출가자들과 함께 4대강 살리기 전국 순례에 참가한 북산 최완택 목사(맨오른쪽)
북산 최완택 목사의 묘비
북산 최완택 목사의 묘비

북산의 애제자인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상임대표 양재성 목사는 <북산을 걷다>에서 “북산은 신학대를 졸업하던 해 북한산 백운대에 올랐다가 삼양동 빨래골로 하산하면서 본, 공초 오상순 시인의 묘비에서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오,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나의 혼’이라는 시 ‘방랑의 마음’을 읽고 자유혼이 시작되었다”며 “예수의 자유혼에 삼켜짐으로써 세상의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자신을 속박하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한 것”이라고 했다.

또 채희동, 양재성과 함께 북산을 모시고 목산회 등산을 자주 했던 성백걸 백석대 기독교학부 교수는 “북산은 이 땅에서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라며 “앞으로도 목사는 얼마든지 나오고 또 나오겠지만, 그만큼 예수의 사랑과 자유혼을 지니고 온몸으로 살아내는 목사는 보기 어려우리라”고 추모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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