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맞이 템플스테이 모습.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제공
세밑을 천년 고찰에서 마무리하면 어떨까. 자신을 돌아보고 새해 다짐을 하기에 고요한 사찰만한 데가 있을까. 산에도 올라 떠오르는 해를 보며 멋진 새해를 맞으면 어떨까.
전국 50개 사찰이 경제적인 부담 없이 새해맞이를 할 수 있는 특별 템플스테이를 마련했다. 불교문화사업단은 24절기 중 스물두번째 절기인 동지(22일)맞이와 새해맞이 특별 템플스테이의 참가비로 5천(1일)~1만원(1박2일)만 받기로 했다. 선착순 5천명이다. 동지맞이는 21~22일, 새해맞이는 12월31일부터 새해 1월21일까지 각 사찰이 정한 날에 진행된다.
불교문화사업단장 원경 스님은 “민족 고유의 명절인 동지를 맞아 벽사진경(辟邪進慶·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끌어들임)의 의미를 살리고 새해엔 송구영신(送舊迎新·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함)을 되새기는 시간을 선물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했다”며 “2년째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애초 이번 프로그램은 100여개 사찰에서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오미크론 확진자가 늘어남에 따라 많은 사찰이 행사를 취소했지만, 철저한 방역을 내건 50개 사찰은 계획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예약은 사업단 누리집(templestay.com)을 참고하면 된다.
동지맞이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은 직접 새알심을 빚어 동지 팥죽을 쑤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특히 동짓날엔 대부분의 사찰이 동지죽을 쑤어서 인근 주민들에게 퍼주는 나눔행사를 펼치는데, 템플스테이 참가자들도 희망자에 한해 이 봉사에 함께할 수 있다. 다른 절과 달리 30일까지 동지맞이 행사를 진행하는 경북 김천의 천년 고찰 직지사 스님들은 동짓날엔 동지죽 1천명분을 쑤어 소외된 불우 이웃에게 나눠줄 예정이다.
직지사 새해맞이 템플스테이는 일터에서 동료들과의 갈등으로 고통받은 직장인들의 스트레스 해소처로 유명하다. 참가자들은 스님과 차담, 감사 명상을 하고 아침엔 직지사에서 걸어서 30분쯤 걸리는 황악산 명적암에 올라 일출을 보며 새해를 준비하게 된다. 특히 ‘행복을 찾는 108배’에서는 △험난한 인생길을 잘 참고 견뎌온 스스로를 칭찬하며 절합니다 △지금의 나를 있도록 해준 세상 모든 인연들에게 감사하며 절합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집착하고 괴롭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며 절합니다 △내 생각대로 하려는 마음 때문에 상처 준 사람은 없는지 돌아보며 절합니다 △지나간 과거에 집착해 스스로를 괴로움에 빠뜨리지 않는지 돌아보며 절합니다 등 108개의 멘트와 함께 절을 한다.
직지사 템플스테이 도을호 내국인 팀장은 “매년 20~30대 젊은층의 참가가 늘고 있는데, 108배 멘트가 나올 때마다 지나온 삶을 반성하고 성찰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며 “108배와 스님과의 차담을 통해 응어리진 마음을 풀고, 해맞이를 하고 소원등을 달면서 한해를 살아갈 의지를 다진다”고 전했다.
수덕사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의 덕숭산 정혜사 해맞이 모습.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제공
충남 예산의 천년 고찰 수덕사에서는 동지맞이 참여자들이 스님들과 함께 동지죽 500인분을 쑤어 동짓날 노인요양원에 가져다주는 나눔봉사에 참여한다. 새해맞이 행사로는 수덕사에서 새벽 6시 아침공양을 하고, 걸어서 25분 거리인 덕숭산 정혜사에 올라 탁 트인 전망을 바라보며 솟아오르는 해를 맞이하는 게 있다. 수덕사 템플스테이 정현주 팀장은 “멋진 경관을 자랑하는 정혜사에서 해를 맞기 위해 불자보다는 오히려 다른 종교와 무종교인 참가자 비율이 높다”며 “해외를 나가지 못해서인지 올해는 20~30대 신청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1회 정원 20여명이 대부분 마감될 정도로 호응이 높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마포동 석불사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한강에서 명상을 하고 있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제공
석불사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한강 걷기 후 기념사진을 찍었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제공
산사의 해맞이를 위해서 수도권 거주자가 반드시 지방 사찰에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새해맞이 템플스테이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사찰들도 적지 않게 참여하고 있다. 서울 도심 사찰인 서울시 마포구 마포동 석불사는 수십년 전부터 민족의 풍속을 소중히 여기는 비구니 노승들이 주석하며 동짓날 동지죽 나눔의 전통을 이어왔다. 유병용 종무실장은 “동지죽의 붉은 팥이 악귀와 전염병을 쫓아준다고 믿는 문화를 지켜온 석불사는 이번 동짓날에도 석불사의 말사인 충남 당진 안국사지에서 직접 재배한 유기농 팥으로, 1천명분의 동지죽을 쑨다”며 “직장인들이 많은 공덕동·도화동사무소 앞에서 동짓날 오전 11시부터 행사를 매년 하는데, 직장인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고, 템플스테이 참가자들도 자신의 힐링만이 아니라 타인들에 대한 봉사를 통해 큰 기쁨을 누린다”고 말했다.
석불사 비구니 스님들이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을 위해 차린 사찰음식.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제공
석불사의 최고 인기는 사찰음식이다. 이곳에선 비구니 스님들이 새벽부터 정성스레 만든 10여가지의 음식을 뷔페식으로 펼쳐놓아 참가자들의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특히 조선 숙종 때 마포나루터 암반 위에 조성된 석불사에선 길 건너 한강으로 나가 맞는 해맞이가 명물이다. 석불사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은 스님들의 새벽 예불이 끝난 뒤 스님들과 함께 한강에 나가 떠오르는 해를 맞으며 명상을 한다. 새해맞이는 8~9일, 15~16일 두차례이며, 정원은 25명씩이다.
석불사 템플스테이 참여자들이 스님과 차담을 하고 있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제공
석불사 주지 경륜 스님은 “참가자들은 너무 바쁘게 살아 자신을 돌볼 여력이 없어 심적으로 지친 분들이 많다”며 “남의 사랑을 받는 것도 좋지만 먼저 자신이 ‘소중한 나’를 안아주도록 해야 한다. 그 힘으로 새해를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기르는 새해맞이가 되도록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