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말글을 배우는 소년. <한겨레> 자료사진
‘범을 그려도 그 뼈는 그리기 어렵고 사람을 알아도 그 마음은 알 수 없다네/ 물은 흘러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고 말은 한 번 뱉으면 다시 거두기 어렵네/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네/ 꽃은 다시 필 날이 있지만 다시 소년이 될 수 없구나/ 젊은 날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청춘은 다시 오지 않으니.’
파란색 가죽 표지의 책을 넘기면 40~41쪽에 청소년을 격발시키는 이런 글귀가 나온다. 한국 유교의 본산인 성균관이 최근 발간한 <인성육서>(人性六書) 가운데 추구(抽句) 편이다.
이 책은 조선 중후기 청소년들의 필독서다. <추구>, <사자소학>, <계몽편>, <동몽선습>, <격몽요결>, <소학> 등 유교사회에서 청소년들의 인성교육을 위한 고전들이다. 이율곡이 만든 <격몽요결>은 ‘입지’(立志·뜻을 세움), ‘혁구습’(革舊習·구습을 고치다), ‘지신’(持身·몸가짐), ‘독서’(讀書·책을 읽음), ‘사친’(事親·부모를 섬김), ‘접인’(接人·사람을 대함), ‘처세’(處世·세상에서 살아감) 등 청소년들이 가정과 세상에서 제대로 살아갈 인격체로 커가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처럼 6가지 책 모두 왕가와 선비의 자제들이 하나같이 성숙한 성장을 위해 읽었던 책들이다.
13명의 집필위원이 번역·편집 등을 해 만들어낸 이 책은 무려 947쪽으로, 가격이 7만원이나 하는데도 지난해 12월 말 출간된 지 채 2주가 안 돼 초판 3000부 가운데 1500부가 팔려 나갔다. 성균관 오흥녕 연구원은 “우리도 의외의 반응에 놀라고 있다”며 “중년세대들은 제목이나 부분적인 내용은 어딘가에서 들어봤는데 정작 책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이 미지의 책을 소장하거나 본인이 한번 읽겠다고 한다. 자녀나 손주들에게 설 선물로 주겠다며 구입하는 분들도 계신다”고 말했다. 실제 이 책들은 청소년 필독서라고 하지만 유학자들의 필독서이기도 했다. 성리학자 김굉필은 평생 <소학>만 읽다시피 해 ‘소학동자’로 불리기도 했다고 전한다. 손진우 성균관장은 “‘나보다 우리 아이들이 더 잘되었으면 좋겠다’고 한 부모님의 정성과,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던 스승들의 정신,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 바치겠다’고 나섰던 선조들의 혼이 지금의 한국인을 만들었을 것”이라며 “이 책을 통해 변화와 적응을 잘하는 한국인의 특성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2011년 정영채 훈장이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영휘원 재실에서 여름방학을 맞은 초등학생들에게 <사자소학>을 가르치고 있다. 사진 김봉규 기자
성균관이 한국 정신문화의 근간을 이룬 유교의 경전들을 마치 성서처럼 한권으로 펴낸 것은 지난해 3월 <사서>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다. 유학의 교과서 격인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을 한권으로 묶은 사서도 발간 9개월이 지난 현재 초판 5000여부가 거의 판매돼 재판 인쇄를 앞두고 있다.
편집위원장인 최영갑 성균관 교육원장은 이런 호응에 대해 “가진 것이 많아지는 시대이지만 마음 한구석이 뭔가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 현대인들에게 허전함 모두를 채워줄 수는 없지만 왜 우리는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우리가 태어났을 때 우리는 어떤 존재로 인식되었는지 등을 이 책들을 통해 알아가며 자존감을 찾는 과정이 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성균관은 앞으로도 유교 서적을 대중서로 발간하는 작업을 계속할 계획이다. 오는 7월쯤엔 문묘에 배향한 현인 18명의 전기 시리즈 첫 권을 출간할 예정이다. 최 원장은 “중국의 성현들은 널리 알려졌지만 정작 한국의 위대한 인물들에 대해 알 기회가 많지 않았다”며 “이퇴계와 이율곡 등 현인 18명을 제대로 알 수 있도록 발간 작업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인성육서>는 2월28일까지 성균관 누리집(skk.or.kr)과 교육원에서 주문하면 정가에서 약 30% 할인된 5만원에 살 수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