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세상에서는 십년을 죽으라고 공부해서 도성입덕(인격의 완성)하였다고 한다면 그것도 매우 빨리 성취된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세속적 공부와는 달리 내가 깨달은 무극대도에 도달한다는 것은 죽으라 공부했는데 삼년에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헛말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마음이 조급한 그대들은 인사는 아니 닦고 천명에 곧바로 도달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다시 말해서 하학의 공부가 없이 상달만을 바란다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급히 달성되는 것,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든가, 갑자기 고관이 되었다든가 하는 것은 모두 상서롭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액운을 몰고 온다. 이것은 만고에 전해 내려오는 진리가 아니겠냐?’
동학 교조 수운 최제우가 대각후 직접 쓴 한글 가사 <용담유사> 가운데 도수사(道修司), 즉 ‘도를 어떻게 닦아야 하느냐’는 글이다. 도올 김용옥 전 고려대 교수가 수운의 <동경대전> 해설서를 펴낸 데 이어 이번에 ‘수운이 지은 하느님 노래’ <용담유사>(통나무 펴냄)을 냈다.
<용담유사>는 수운이 1860년 4월5일 하느님과의 해후에서 무극대도를 받아낸 사건의 느낌이 생생하게 남아있던 시기인 4월 말경에 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도올은 “이 지구상의 어떤 종교적 천재도 자신의 종교대각 체험을 그 직후에 전후 상황을 자세히 알리는 서술 양식으로 스스로 집필한 사례는 거의 없다”며 이렇게 적고 있다.
“시 한 수를 쓴다든가, 신비적 체험의 느낌을 나중에 제자들에게 설파한다든가, 혹은 계시받은 대로 영험스럽게 손을 움직인다든가 하는 식의 사례는 있어도 수운처럼 자신이 전 생애를 회고하고 태어난 곳의 지세를 운운하면서 영적인 체험이 가능했던 객관적 맥락들을 상술하는 그러한 정황은 매우 특이하다. 이것은 수운 본인의 성품 그 자체가 매우 영험스럽고 신비로운 동시에, 그 신비적 성격을 객화시키고 소외시키고 언어화시키는 매우 특이한 지적 명철성을 지녔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올은 또한 “수운은 신비는 신비화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이 사사를 쓰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그의 체험이 그에게 모든 인식의 구조를 뒤바꾸어 놓았고 삶의 느낌을 개변시켰기 때문이며, 그러한 개변 속에 주변의 동포들을 참여시키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어떤 충동이 직관으로써 들끓어 올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용담유사>는 수운이 최초의 하느님 해후의 느낌을 한글로 적었다는 것, 즉 무극대도의 출발이 한글 가사였다는 것, 동학이 한글 노래로 시작했다는 점에서 조선 민족의 역사에서 중대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수운이 본격적으로 동학을 널리 알리기 위해 <포덕문>을 한문으로 쓴 것은 대각 1년3개월이나 지난 후의 사건으로, 대각의 생생한 느낌이 많이 희석되고 개념화되고 언어화된 반면 <용담유사>야말로 비극적인 삶의 역정이 무극대도 수용을 계기로 환희로 전환되는 그 감격을 여실하게 표현했다는 것이다.
도올 김용옥 전 교수가 2018년 광주문화방송 대강당에서 강연을 하는 모습. 통나무 제공
<용담유사>는 용담가, 안심가, 교훈가, 도수사, 권학가, 몽중노소문답가, 도덕가, 흥비가 등 8편의 한글 노래로 되어있다. 도올은 이 원문 전체를 1883년 계미중추본의 판본 한글 그대로 담고, 독자의 이해를 위해 각 어휘에 해당하는 한자를 첨가하고, 각 편들의 전체 개론과 현재 우리말 풀이, 보충 설명을 달았다.
도올은 “<용담유사>는 수운이 깨닫고 가르치는 동학의 핵심 사상과 그의 고유한 감성이 올곧이 들어있는 영묘한 문학이고 철학이다”며 “<용담유사>는 벌판을 적시는 강물처럼 민중의 마음을 적시며, 필사를 통해 암송을 통해 전국적으로 퍼져나가 동학농민혁명의 거대한 함성이 되었다”고 밝혔다.
이 책의 말미에는 도올이 발표한 동학선언문과 ‘동학과 21세기 혁명’이라는 글이 영어 버전과 함께 담겼고, 도올이 최근 지역 주민들과 함께한 ‘국민총행복과 농산어촌 개벽대행진’에 관한 문헌 자료들을 실었다.
도올은 <동경대전>에 이은 또 한편의 동학 장정을 통해 “동학이야말로 인류 문명 대전환의 시대의 답을 주는, 21세기 전 인류의 보편적인 철학”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동학은 고조선에서부터 내려오는 전통적 우리의 사유를 바탕으로 서세동점의 절박한 순간에 수운의 통찰에 의해 새롭게 탄생한 사상이다. 위기의 시대에 맞서 수운은 조선조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태도와 방식으로 새 시대를 열어갈 수 있는 대전환의 사상을 선포한 것이다. 상식적인 사유를 열어주는 명징한 이성과, 천지 대자연에 대한 경외를 느끼는 영성이 동학에서 찬연히 빛난다. 이제 모든 인류를 동학을 배워야 한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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