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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 김수환 추기경 등 시복 시성 추진

등록 2023-03-24 07:26수정 2023-03-24 08:13

중국서 선종한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
한국순교복자 가족수도회 창설한 방유룡 신부도
김수환 추기경. 사진 서울대교구 제공
김수환 추기경. 사진 서울대교구 제공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바르텔미 브뤼기에르 주교(1792∼1835)와 방유룡(1900∼1986) 신부, 김수환(1922∼2009) 추기경의 시복(諡福)·시성(諡聖)을 추진하기로 했다.

서울대교구는 23일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청에서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와 시복시성위원장 구요비 주교, 부위원장 박선용 신부, 위원 유경촌 주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시복시성위원회 회의를 열어 이렇게 결정했다.

시복·시성이란 가톨릭교회가 성덕이 높은 사람이 죽었을 때, 혹은 순교자에게 공식적으로 복자(福者)나 성인(聖人)의 품위에 올리는 예식을 말한다. 성인은 전 세계 가톨릭교회가, 복자는 해당 지역 가톨릭교회가 모시게 된다. 시복·시성에는 두 가지 이상의 기적이 필요하지만, 순교자는 순교 사실만으로 기적 심사가 면제된다. 시성이 되려면 먼저 시복이 이뤄져야 한다. 시복·시성 진행 과정은 엄격한 증거 조사를 거친다는 점에서 재판 형태를 취한다. 예비 심사 법정이 이들의 행적을 조사하고 덕성을 따져 교황청에 약전(略傳)을 보내면 교황청이 관련 자료를 검토해 선정 여부를 가린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초대 조선대목구장으로, 한국 천주교회와 이를 계승하는 서울대교구 초대 교구장이다. 조선시대 박해로 고통받던 교회 지도자들은 첫 중국인 선교사 주문모 신부가 순교하자 교황청에 성직자 파견을 요청했고, 교황청에서는 1831년 조선대목구를 설정하며 브뤼기에르 주교를 초대 조선대목구장에 임명했다. 하지만 당시 선교활동이 엄격히 금지됐던 중국을 관통하는 데 3년이 소요되면서 조선 입국을 앞두고 병고로 중국 네이멍구(내몽고) 자치구인 마가자의 한 교우촌에서 선종했다. 이후 서울대교구는 1931년 조선교구 설정 100주년을 기념해 유해 송환을 추진해 서울 용산성당 성직자 묘지에 브뤼기에르 주교의 유해를 안장했다.

조선시대의 모든 순교자와 증거자에 대한 시복 추진 권한은 주교회의에 있기 때문에, 브뤼기에르 주교 시복 추진에는 사전에 주교회의의 추진 동의가 필요했다. 이에 주교회의는 지난해 10월 가을 정기총회에서 서울대교구가 자체적으로 브뤼기에르 주교 시복을 추진하는 것을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브뤼기에르 주교 시복 추진에는 교황청 시성부의 시복 재판 관할권 이전에 대한 승인도 필요했다. 브뤼기에르 주교가 조선에 입국하지 못하고 중국 땅에서 선종했기 때문에 속지법에 따른 관할권이 중국 교구에 있었다. 교황청도 이에 대해 이해하고 검토한 끝에 2023년 1월 서울대교구로의 관할권 이전을 승인했다.

방유룡 신부. 사진 서울대교구 제공
방유룡 신부. 사진 서울대교구 제공

김수환 추기경은 1968년 제11대 서울대교구장에 착좌한 후 1998년 퇴임까지 30년간 교구장으로 사목했다. 서울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는 “김 추기경은 개인적 덕행의 모범, 한국교회의 성장과 위상을 높인 공헌, 인권과 민주주의 정착을 위한 헌신 등으로 많은 이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으며,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벗’으로서 그리스도교적 사상의 토대인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연민을 바탕으로 가장 낮은 사람을 또 하나의 그리스도처럼 대하며 그리스도교적 사랑의 전형을 모범으로 보여줬다”고 시복·시성 추진 이유를 밝혔다.

방유룡 신부는 한국 순교자 영성을 녹인 한국순교복자 가족수도회를 창설한 데 이어 수녀회(1946년), 성직수도회(1953년), 재속복자회(제3회, 1957년), 빨마수녀회(1962년)를 설립했다. 방 신부는 조선시대에 순교한 한국 순교자들에게 영감을 얻어 가톨릭 신앙을 동양적 정서 속에 녹여낸 고유한 수도 영성을 만들었으며, 한국순교복자 가족수도회는 이를 바탕으로 순교자 현양 사업에 앞장서왔다.

정순택 대주교는 “그간 교회 안팎에서 꾸준히 제기돼온 세 분의 시복·시성 추진 문제에 대해 오랜 기간 숙고하며 다양한 경로로 의견을 청취해왔다”며 “신자들과 교회 단체 등 다양한 건의 내용을 바탕으로 후보자들의 덕행의 영웅성과 명성의 지속성에 대해 충분히 검토한 후 한국교회와 신자들, 수도회와 회원들의 영적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시복·시성 추진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브뤼기에르 주교. 사진 서울대교구 제공
브뤼기에르 주교. 사진 서울대교구 제공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1925년 조선시대 순교자 79위가 시복됐고, 1968년에 24위가 추가돼 103위의 복자가 있었으며, 이들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방한한 1984년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시성식 때 성인품에 올랐다. 이후 2014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124위를 복자로 선포해 국내에는 성인 103명과 복자 124명이 있다. 한국인 두 번째 사제,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시복은 ‘기적 심사’ 절차만 남아있다. 이 밖에도 한국교회는 현재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 ‘신상원 보니파시오 사우어 아빠스와 동료 37위’의 시복·시성을 추진하고 있다.

시복·시성을 추진하는 교구는 해당자가 덕행의 영웅성, 즉 견고하게 선을 행하려는 습관적 성향을 항구하게 주저함 없이 지니고 있는지를 확인해 후보자가 평균 이상으로 매우 높은 수준의 덕행을 실천했음을 입증하기 위해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의 구두증언을 통해 사실, 사건, 발언의 내용을 듣고, 문서와 글을 수집한다.

순교자의 경우는 다르다. 후보자가 순교자로 선언되면 그는 즉시 복자가 된다. 순교자가 아닌 경우에는 그의 전구(간접적으로 은혜를 구함)로 인한 한 가지 기적이 인정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이 기적 사건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인정되는 치유이며, 교황청 시성부 내의 신자와 비신자로 구성된 의학 전문위원회에서 판단하게 된다. 여기서 긍정적 평가를 받으려면 치유가 완전하고 지속적이며 즉각적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어야 한다.

성인으로 선언되기 위해서는 복자에게 청한 전구 기도의 결과로 시복 이후에 일어난 두 번째 기적이 인정되어야 한다. 시복·시성을 위한 재판에서는 일종의 반대심문과 변호 절차가 있다. 청원인이 후보자의 성덕을 입증하면, 일명 ‘악마의 변호사’가 청원인이 제시한 증언과 문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이에 대해 충분한 소명을 거쳐야 한다.

시복·시성에도 지름길을 인정하는 예외적인 사례들이 있다. 즉 기적 사건이 승인되기 전에, 오랜 세월 계속되어 온 공경을 적법한 검증을 거쳐 교황이 승인할 경우 통상적인 심문과 기적 심사를 거치지 않기도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요한 23세 교황을 성인품에 올릴 때 두 번째 기적의 승인 없이 수십 년 동안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던 성덕의 명성을 인정해 성인으로 선포했다. 또 베네딕토 16세 교황도, 규정상 선종 5년 뒤에 시작할 수 있는 시성 절차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경우 선종 몇 주 뒤에 예외적으로 진행한 바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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