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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뉴스

하느님이 내안에서 자신을 보는순간

등록 2023-05-19 14:11수정 2023-05-19 14:12

픽사베이
픽사베이

1.

이준익 감독의 영화 ‘자산어보’를 본다. 세 번째다. 대사가 귀에 쏙쏙 들어온다. 지식 거래가 성사되어 서로 다른 지식을 묻고 답하는 창대와 자산의 모습. 서로 다른 모습이나 선생과 학생의 역할은 동일하다.

도미가 해파리를 먹는다는 창대의 정보 제공에 수온이며 해파리 수와 도미 수의 증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자산. 답이 막히자 짜증 내는 창대가 질문 좀 그만하라 하자, 이어진 자산의 대답. “질문이 곧 공부야 이놈아. 외울 줄 밖에 모르는 공부가 나라를 망쳤어.”

잠시 영화 보던 것을 중지한다.

질문은 궁금해서 못 참을 때 나온다. 절대로 남이 시켜서는 질문이 나올 수 없다. 내 안에서 뭔가가 먼저 작동하고 의식이 한곳에 모여야 질문이 된다. 질문이 나오려 할 때 시선을 나에게서 남에게로 돌리는 순간, 처음 질문의 그 상태는 달라진다. 질문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 제대로 할 수 있다. 자산은 공부란 것이 그래야 한다고 창대에게 설명하고 있다. 바다 위 함께 탄 배 위에서.

곧 새 학기가 시작된다. 배움의 현장이 질문으로 가득하길 바라는 나는 어떤 생각으로 새 학기를 맞이할 건가를 스스로 묻는다. 질문거리를 던져주고 기다릴 것인가? 그렇다면 어떤 질문거리를 만들 것인가? 학생들과의 거리도 중요하다. 교사와 학생의 거리 말이다. '자산어보'를 보다가 새학기를 생각하게 해준 이준익 감독이 고맙다. 참 고마운 사람!

2.

‘이름’은 사람의 인식을 변화시키는데 그 변화는 그 이름을 제대로 인식한 사람에게서 일어난다. 피타고라스가 1과 2라는 두 개의 숫자로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라는 음계를 만들었다. 그 음계는 소리를 내는 현의 길이의 비로 나타낼 수 있고 그 수를 유리수라 이름지었다. 유리수라는 이름은 유리수의 특징과 한계를 아는 사람에게서 살아 움직인다. 인식의 범주를 넘어서려는 바로 그 경계에서 말이다. 피타고라스가 살았던 당시의 사람들 인식 속에는 유리수로 충분했고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새로운 변화, 곧 서로 다른 두 선분의 길이를 유리수로 표현하고 그 두 수의 곱이 면적만을 나타낸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수가 탄생 될 수 있는 인식 공간이 생겨났다. 무리수의 출현이다. 무리수의 출현이 먼저 발생한 다음 2000여 년이 지나면서 피타고라스 음계는 조옮김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평균율로 바뀌게 되었고 다양한 악기들이 민들어져 더불어 함께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게 되었다. 인식의 변화에 따른 힘이 다른 변화를 가져오게 된 것.

유리수와 무리수라는 이름은 실수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실수란 이름이 제대로 인식되자 또 다른 이름이 만들어진다. 이름은 고정관념이면서 새로운 변화와 창조를 가능케 하는 양면성을 지닌 언어다. 그렇다면 ‘이름’은 동사란 말인가?

3.

부름 받아 나선 이몸! 찬송의 가사를 되새기다가 여기서 '부름'은 ‘심부름’이 아닐까를 잠시 생각. 부름이 먼저고 심부름은 나중이겠지만 결국 그게 그거란 생각이다. 심부름은 시키는 이와 하는 이가 다른 듯 혼연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신뢰가 바탕이 되고 분명하게 심부름 내용을 알아들어야 함은 물론 심부름을 했으면 그것으로 족할 뿐 또 다른 심부름을 기다리는 삶으로 살아져야 한다. 나는 심부름을 하는 이다. 적어도 지금 여기에서의 상태는 그렇다는 것. 오늘은 내게 어떤 심부름이 주어질까?

정약용 생가. 사진 <한겨레> 자료 사진
정약용 생가. 사진 <한겨레> 자료 사진

4.

‘내가 나를 드러낸다’는 말에 대한 묵상.

인도의 고대 문헌에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단다. ‘하느님은 광물 속에서 잠자고, 식물 속에서 꿈꾸고, 동물 속에서 눈뜨며, 인간 속에서 자기를 본다.’

내가 나를 드러낸다는 말은 내 안에서 보여진 하느님의 모습이 드러난다는 의미이겠다. 결국 내가 날마다 하느님 모습으로 살아져야 가능한 일.

그런데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언어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인식하든 하지 않든 숨쉬는 모든 여정이 하느님과 동행하는 것 아닐까? 하느님의 그 완벽한 계획에 한 치의 오차 없이 살고 있지 않은가? 결국 의식의 차이일 텐데 참사람의 모습을 순간순간 만들어 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겠다. 거창하게 계획을 세우고 미래를 설계하고 비전을 만들어 가는 쓸데없는 짓을 관두고 지금 여기에서 옹글게 살아가도록 마음 모으는 일, 그것이 먼저란 의미. 하늘이 맑고 푸르다.

5.

장인 팔순을 맞이해 온 가족이 함께 모인다. 일본 요코하마 교회에서 목회하는 바로 아래 동서와 4년 만에 만난다. 하루 일정을 비워 둘이서 양수리의 두물머리 강변을 걷는다. 일본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감리교신학대학에서 공부하고 목사 임직을 받아 일본에서 목회하는 동서.

한국과 일본의 문화 차이, 인식의 차이가 있어 대화를 나누는데 소통과 공감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를 염려했으나 기우였다. 귀한 시간이었다. 정약종 선생의 순교를 기억하며 세워진 마재 성당. 주변의 순례길을 걷는데 동서가 전해준 이야기 하나. “형님. 제가 아는 목사님 한 분은 스님과 함께 바(bar)를 운영합니다. 술 마시러 온 손님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상담하는 일을 통해 성직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어요.”

팔당댐 곁으로 난 도로를 따라 돌아오는 길의 이른 봄 햇살이 눈부시다.

글 박진호(순천사랑어린배움터 공동체원)

*이 시리즈는 전남 순천사랑어린배움터 마루 김민해 목사가 펴내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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