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인천교구 내에서 은폐된 성추행 사건이 22년만에 수면 위에 떠올랐다. 에스비에스의 <그것이 알고싶다>는 16일 ‘깊은 침묵-사제들의 죽음 그리고 한 사람’이란 제목으로 22년 전 성추행 신부 사건을 방송했다.
이 방송에서는 최아무개 신부가 1996~1998년 인천 가톨릭대학 1대 총장으로 재직하면서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키스를 하거나 엉덩이를 만지는 성추행 내용을 고발하는 전직 수녀와 신부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또 당시 인천가톨릭대에 재학중인 신부는 “최 총장신부가 자주 자기 방으로 부르고 학교 밖으로 일 보러 나갈 때 비서처럼 데리고 나가서 구강성교를 강요했다고 들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한 신부는 최신부에 대해 “모금을 하고 저녁에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도 기사까지 있는 차에서 그 짓을 했다”고 말했다.
방송에서는 최신부는 “나는 사실 외부로 돈 모금하러, 너무 바빠 학생 지도 문제는 다른 신부님한테 맡겼다”라며 “아들과 같아서 사랑의 표현으로 사랑을 했었다”고 말했다.
이번 성추행사건은 군대 이상으로 엄격한 위계를 자랑하는 가톨릭 신학교 내에서 최고권력자인 총장이 무력한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피해자들의 고통이 더욱 더 컸을 것으로 보인다. 신학생들은 7년간 가톨릭대 기숙사에 머물며 교육을 받으며, 일단 한 교구가 소속되면 대부분 평생 교구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주교나 총장 등 상급자에 요구를 거부할 수 없는 순명의 풍토 속에서 지낸다. 실제 최 신부의 잇따른 성추행에도 불구하고 신학생들은 이를 문제 삼지못했고, 이런 사실은 인천가톨릭대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외국인 선교사 신부가 신학생들과 면담하는 과정에서 드러나 당시 인천교구장이었던 나길모 주교에게 즉시 보고돼 교구 내에 알려진 것으로 전해졌다.
인천교구는 <그것이 알고 싶다>의 방송이 확정되자 지난 8일에야 최 신부를 면직하고, 13일엔 인천교구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교구의 입장을 밝혔다.
인천교구는 이날 “(최)신부가 1998년 5월 총장 재직 중 외부 모금활동과 면담 과정에서 다수의 신학생을 대상으로 성추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돼 당시 인천교구장이던 고 나길모 주가 (최) 신부에게 총장직에서 물러날 것과 인천교구를 떠날 것을 명했으나 유야무야됐다. 인천교구는 이번에 문제가 다시 제기된 이후에야 제재와 징계가 미흡했다는 점을 인정해 (8일)면직조치했다”고 밝혔다.
지난 2018년 수원교구 소속 한 신부의 성추행 사건이 드러난뒤 한국천주교 차원에서 사죄하고 있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오른쪽)
인천교구는 “자체 재조사 결과 1996년 입학생 가운데 9명이 피해자인 것으로 파악됐다”며 “그러나 2006년에 서품을 받은 두 사제는 1998년 5월 (최)신부가 총장에서 물러난 이듬해 입학했기에 그들의 죽음은 (최)신부와 연관이 없다”고 해명했다.
한편 인천교구는 쇄신위원회를 구성해 성직자 쇄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해온 인천교구가 교구내 인사들로만 쇄신위를 꾸릴 경우 미봉으로 끝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인천교구 청년회장을 지낸바 있는 박영대 교구노동사목위원은 “교회 권위를 지키기 위해 사제 성폭력을 감추고 신자들도 자신의 신념체계를 지키고싶어서 알게 모르게 사제들을 인간적인 실수로 옹호하고 피해자가 원인 제공했다는 분위기로 몰아 2차 3차 피해를 가져오곤한다”며 “침묵의 카르텔이 계속될 수 있으므로 쇄신위엔 외부전문가들이 들어가 무엇보다 피해자 보호책을 마련해야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