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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뉴스

5.18 문용동 전도사 의로움 추모한 소강석목사

등록 2020-05-18 16:05수정 2020-05-18 16:06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자료 사진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자료 사진

40년전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엔 광주중심가를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지하실의 다아너마이트를 해체해 더 많은 시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대폭발을 막고,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키며 죽음을 택한 젊은이가 있었다. 개신교 호남신학교에 재학 중이던 문용동 전도사였다.

대형교회 목사가 5.18광주항쟁에서 자신의 부끄러움을 고백하며, 문 전도사의 의로움을 추모했다. 신흥 대형교회로 손꼽히는 경기도 용인 죽전 새에덴교회의 담임 소강석 목사다. 소 목사는 5.18을 하루 앞둔 17일 5월의 ‘문용동은 웃고 있지만, 소강석은 울고 있어요’란 글을 띄웠다. 주일 때마다 지인과 신자들에게 온라인으로 보내는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에서였다.

문용동 전도사에 대한 방송. 갈무리
문용동 전도사에 대한 방송. 갈무리

소 목사는 “(목사가 되겠다고 해서) 집에서 쫓겨나 난생 처음 광주로 가서 광주신학교에 입학한 19세 그해에 5월 5.18민주항쟁을 맞았다”면서 “당시 저는 뚜렷한 역사의식 같은 것은 없이 그저 성령 충만한 삶 자체가 목적이어서 공수부대가 광주를 점령해 금남로에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을 때 그 길을 걸어서 조선대학교 앞에 있는 광주서광교회를 다니는 것이 전부였다”고 고백했다.

소 목사는 “그러나 저와 동시대에 호남신학교를 다니던 문용동 전도사는 저보다 여덟 살 많은 호남신학교 4학년생이었는데, 길을 지나가다 공수부대 군인들에게 진압봉으로 맞은 시민을 업어서 기독병원 응급실에 데려다주고 그날부로 시민군에 참여한다”며 “그의 일기를 보면 얼마나 그가 의협심에 불타고 정의감으로 가득 찼는지를 알 수 있다”고 문 전도사의 사람을 상세히 소개했다.

문용동 전도사의 생전 모습
문용동 전도사의 생전 모습

문용동 전도사의 생전 글. 갈무리
문용동 전도사의 생전 글. 갈무리

문용동 전도사의 묘지
문용동 전도사의 묘지

“그는 수도경비사에서 헌병으로 근무하면서 화약과 탄약에 익숙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전남도청을 지키고 있을 때 도청 지하실에는 화순탄광에서 가져온 8톤짜리 트럭 네 대 분량의 다이너마이트가 있었습니다. 그때 시민군 강경파에서는 공수단이 도청으로 진격해 오면 다이너마이트를 폭발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었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되면 광주시의 3분의 1 가까이 희생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용동은 광주전투교육사령부의 김기식 부사령관을 찾아가서 탄약을 제거하자고 제안을 합니다. 그래서 김기식 장군은 탄약 분해 전문가인 배승일 군무관을 비밀리에 급파하여 문용동과 함께 다이너마이트를 분해했습니다. 그 이후, 문용동은 도망가면 살 수 있었는데 끝까지 그곳을 지키다가 계엄군의 총격으로 죽습니다. 광주시민들의 안전을 끝까지 지키려다가 죽은 것입니다.”

문 전도사는 5.18 이후 군 정보사의 공작에 의해 프락치로 오해를 받았지만, 함께 있던 사람들의 증언과 그의 일기장에 의해서 그는 프락치가 아닌 것으로 판명돼 호남신학대 교정엔 문 전도사의 추모비가 세워졌다고 한다.

광주신학교에 재학 당시 소강석 목사(사진 윗줄 맨 오른쪽). 사진 새에덴교회 제공
광주신학교에 재학 당시 소강석 목사(사진 윗줄 맨 오른쪽). 사진 새에덴교회 제공

5.18의 현장인 광주 금남로와 전남도청을 순례중인 소 목사와 새에덴교회 신자들. 사진 새에덴교회 제공.
5.18의 현장인 광주 금남로와 전남도청을 순례중인 소 목사와 새에덴교회 신자들. 사진 새에덴교회 제공.

소 목사는 “그의 미소를 바라볼 때마다 마냥 부끄럽기만 하다”며 “나는 과연 산 자의 값을 치르고 있는 것일까”라고 자문했다. 소 목사는 이어 “그는 새벽길을 간 사람이고 저는 지금 살아서 캄캄한 암흑길을 걸어가고 있다”며 “그때는 역사의식이 없었지만, 지금은 문용동의 역사혼을 가지고 산 자의 값을 치르려고 울며 고뇌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 목사는 개신교 내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교파인 예장합동을 사실상 대표하는 부총회장이자 지난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설교를 하고, 한국교회동성애대책협의회 대표회장을 지내고, 6·25참전해외용사들을 13년째 교회에 초청해 행사를 여는 등 보수적인 행보를 해온 중진 개신교 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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