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이 이끌던 시민모임 ‘맑고 향기롭게’가 법정 스님의 미발표원고를 세상에 내놓기로 했다.
‘맑고향기롭게’는 자체 월간 소식지를 통해 △침묵 △좌선 △불자의 도리 등 3편의 미발표 원고를 공개하기로 했다. 이 원고는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법정 스님이 썼으나 발표하지않고 있던 것들을 맏상좌이자 ‘맑고향기롭게’ 이사장인 덕조 스님이 간직하고 있던 것들이다.
이 가운데 ‘침묵’은 기존에 발표된 글 ‘침묵에 대하여’의 모세혈관을 살필 수 있는 원판격에 해당한다. 또 ‘좌선’은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법정식 좌선 방법을 설명해주고 있다. 법정 스님은 대중적 글쓰기의 달인이자 수행자답게 이 글을 통해 초심자도 참선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불자의 도리’ 는 잔소리꾼 법정 스님의 속내를 드러내는 글이다. 정신없는 세상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불자들을 바라보는 스님의 애잔한 속뜰의 정경이 섬세하게 나타난다. 겉으로는 무심한 척했지만 이번에 발표된 글에서 스님은 언제나 중생의 고통에 애간장을 태우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법정 스님이 입적 전 “10 년 동안 (전남 순천 송광사) 불일암으로 돌아가 수행에 정진하라”고 한 명에 따라 10년을 불일암에서 보낸 덕조 스님은 40년 넘게 침묵 속에 간직해온 법정 스님의 원고를 살피던중 미발표 원고를 발견하고 이를 세상에 전하기로 했다고 한다.
법정 스님이 은거했던 전남 순천 조계산 송광사 불일암에서 법정스님(오른쪽)과 맏상좌 덕조스님이 함께 앉아있다.
법정 스님이 지난 2010년3월11일 입적하기 전 기존 출판물들을 절판하라고 유언을 남긴지 10년만이다. 법정 스님이 절판 유언을 내렸으나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비롯한 저서들을 읽으려는 독자들의 성화에 따라 사실상 절판은 이뤄지지못했다.
‘맑고향기롭게’는 내년 1월호부터 미발표원고 외에도 ‘법정과 함께 떠나는 선지식 여행’을 시작한다. 법정 스님이 1970년대에 처음 번역한 뒤 2002년에 다시 고쳐 옮긴 <화엄경>의 ‘입법계품’을 읽는 강독 여행이다. 선재동자가 걸었던 천신만고의 수행을 따라가는 강독이다.
‘맑고향기롭게’측은 “<화엄경>의 ‘입법계품’에서는 동국역경원의 문을 열고 수 없이 경전을 옮기고 손 본 스님의 번역 솜씨가 여지없이 드러난다”며 “<어린왕자>의 주인공을 연상케하는 선재동자는 위없는 보리심을 실천하려는 불가 최고의 구도자로 그의 길을 따라가다 문득 우리가 만나는 것, 텅 빈 지혜의 호수에 비친 비구 법정의 이글이글 타오르는 차가운 불꽃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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