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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 “서구의 신은 황제적…동학은 ‘우리가 하느님’이라 말해”

등록 2021-07-06 23:52수정 2022-01-25 19:20

수운 최제우가 쓴 ‘동경대전’ 초판
지난해 구하자마자 번역·해설서 써
꿈에서 초판본 뺏으려 해 실랑이
발버둥치다 실제 머리 찢어지기도
<동경대전> 1·2권을 펴낸 도올 김용옥 전 고려대 교수. 통나무출판사 제공
<동경대전> 1·2권을 펴낸 도올 김용옥 전 고려대 교수. 통나무출판사 제공

도올 김용옥(73) 전 고려대 철학과 교수가 사고를 쳤다. 30대에 그 좋다는 정교수직을 때려치우고 학교 밖에 나선 이래 강경 발언으로 사고를 친 게 한두번이 아니지만, 이번에 친 사고는 다르다. 지구 문명을 이 지경으로 만든, 이분법적 서구 신관(神觀)을 뒤집어엎어야 한다고 나섰다는 점에서 다른 차원이다. <동경대전>(통나무 펴냄) 1·2권을 통해서다.

<동경대전>은 근대 한민족을 깨운 동학의 1대 교조 수운 최제우(1824~1864)가 쓴 경전이다. 수운이 직접 써서 해월 최시형(1827~1898)에게 전한 초판 원고로 만든 목활자본을 지난해 10월 김용옥이 구하자마자 번역·해설한 책이 이번 도올판 <동경대전>이다. 도올은 이미 고려대 철학과에서 동학을 만난 이래 1991년 동학 2대 교조 해월 최시형을 그려 개봉한 영화 <개벽>의 시나리오를 썼고, 동학도였던 표영삼(1925~2008)을 따라 수운과 해월의 흔적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 바 있다. 따라서 이 책은 50년에 걸친 동학 순례의 대미다. 그러나 동학 혹은 천도교라는 한 종교의 경전 해설서는 아니다. 도올이 생각하는 동학이란 흔히 초기 천주교로 일컬어지는 서학의 대립 개념이 아니다. 예부터 우리 민족을 ‘해동’으로 불렀듯이 그가 생각하는 동학의 ‘동’(東)은 태초부터 우리 민족사를 관통하는 한민족의 정체성으로, 이를 바탕으로 둔 학문이 동학이란 말이다. <동경대전>의 부제를 1권 ‘나는 코리안이다’, 2권 ‘우리가 하느님이다’라고 한 데서 알 수 있다. 그는 성경, 사서삼경, 불경, 노자 등의 동서양 사상을 강연하고 책을 썼지만 이번 <동경대전>을 “제 인생의 결정체”라고 했다. 

그는 “서구가 추구해온 근대라는 이념을 추종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선언한다. 서구의 근대가 낳은 터무니없는 인간의 교만, 서양의 우월성, 환경의 파괴, 불평등 구조의 확대, 자유의 방종, 과학의 자본주의로의 예속 같은 서구적 패턴을 우리가 반복해야 할 의무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참다운 평등과 조화는 오로지 황제적인 신이 사라지고, 모든 인간이 하느님이 될 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사람이 하느님이다’(인내천·人乃天), ‘사람을 하느님으로 공경하라’(사인여천·事人如天)고 외치며 일제와 부패 권력자들의 총칼에 쓰러져 죽어간 30여만명의 동학교도와 3·1만세운동의 동포들의 여망을 안고 거대한 기득권에 부딪힐 계란이 되려 각오할 때 그를 짓누르는 압력이 없었을 리 없다. 그는 <동경대전> 번역을 시작할 당시의 고백을 이렇게 썼다.

‘너무도 많은 난관이 나를 기다린다. 터무니없는 편견들과 싸워야 한다. 혼자 알고 혼자 뒈지는 것이 낫지, 내가 뭔 첨병이라고 이 전쟁터, 지옥의 여로를 걸어갈 것이냐? 돌아오는 것은 잡설 욕지거리밖에는 없을 것이다.’

도올이 초판본을 손에 쥐고, ‘우리 민족의 원전을 찾았다’며 기쁨에 들떠 잠든 그날 밤부터 고난은 시작됐다. 그는 모두가 잠든 새벽 자택에서 사고를 당해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실려가 무려 20바늘을 꿰맸다. 꿈에 초판본을 뺏으려는 자를 밀쳐내면서 실제 몸이 침대에서 날아가 방구석의 판자에 머리를 부딪치는 바람에 머리 윗부분이 훌러덩 벗겨졌다고 한다. 이로 인해 많은 피를 흘려 병원에 긴급 이송돼 수술을 받았다. 그 사고를 시작으로 그는 거대한 서구적 신관과의 한판씨름이라는 ‘사건’을 만들어내고 있다. 지난달 28일 서울 대학로 통나무출판사에서 동경대전의 의미를 들었다.

―초판목활자본의 의미는?

“지금 성경 27서는 예수 시대의 것이 아니라 4세기께에 확정된 것이다. 오리지널이 아니다. 그러나 이건 동학의 오리지널이다. 나도 수운은 서자로 태어나 고생하다 과거시험도 못 본 인물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번에 수운의 진면목을 알게 됐고, 내겐 충격적인 이 만남을 가감 없이 썼다. 수운이란 인물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고, 조선의 운명이었다.”

―동학이 ‘우리 민족의 개벽세를 맞이하기 위해 알아야만 할 우리 조선 민족의 유일한 성경’이라고 한 이유는?

“같은 시대 청나라에서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킨 홍수전은 기독교를 무속적으로 받아들여 하늘에 가서 야훼를 만나고, 예수 형님을 만난다며 현실에선 80명의 미녀에게 둘러싸여 별짓을 다 했다. 외래종교의 초월적 하느님으로 사람들을 굴복시켜 악용해 이득을 취했다. 그러나 수운은 우리가 소박하게 알고 있는 본래의 하느님, 장독대에서 물 한그릇 떠놓고 빌던 하느님상을 살렸다. 완전한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어린아이도 하느님으로 봐서 그들이 가진 순수성을 북돋워주었다. 우리 민족의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한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 민중의 애환 속에서 평범하게 살아야만 했던 보통 사람이었다. <동경대전>은 우리 민족의 고전인 동시에, 모든 서양철학이 가야 할 ‘오메가 포인트’(궁극의 종착점)를 제시하고 있다.”

―수운은 왜 기도 중 상제(하느님)가 준다는 재상 자리도, ‘조화’의 능력도 거부했나?

“그는 조선 유학의 엄격한 도덕주의 훈련을 받았기에 차력사나 요술쟁이들이나 하는 조화로 세상을 구하라고 한다면, 기존 종교들처럼 또 하나의 사기술을 펼치라는 것밖에 안 된다는 것을 간파했다. 따라서 수운은 상제를 만났다기보다 최상의 무극대도(無極大道)를 깨친 것이다. 그는 서구 종교가 말하는, 초월신을 초월했다. 어떤 초월적 존재나 상제가 저 하늘 위에 앉아서 다스린다고 더는 사기 쳐서는 안 된다는 데, 눈을 뜬 것이다.” 

2014년 전남 순천대에서 강의 중인 도올 김용옥 전 고려대 교수. 통나무출판사 제공
2014년 전남 순천대에서 강의 중인 도올 김용옥 전 고려대 교수. 통나무출판사 제공

―다산 정약용을 비롯한 실학자들이 <천주실의>를 보고, 서학으로 넘어갔는데, 왜 수운은 그러지 않았나?

“다산 같은 유학자들은 서양인들의 의도를 몰랐지만, 수운은 서학이 겉으로는 도덕적인 선을 위장하면서, 실제로는 침략을 목표로 하고, 이 나라를 망가뜨려 소유하려는 수단으로 교회당을 짓는 것을 간파했다. 아편으로 중국을 궤멸시키는 제국주의의 음모를 보고, 대포와 함대 뒤엔 기독교가 있다는 것을 이미 알아차렸다. 보부상 조직에 가담해 모든 정보를 수집했던 수운의 정보력은 전남 강진에서 책과 씨름하던 다산과는 차원이 달랐다. 수운만큼 서구 문명의 본질을 간파한 이는 세계사적으로 없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앞서갔다. 서양이 20세기 들어서야 여성 참정권을 줬지만, 수운은 이미 한세기 전에 고통받는 여성들과 아이들이 하느님이라고 했다. 다산처럼 지식이 깊은 것만 가지고 뭘 바꿀 수 있겠는가. 그래서 실학이 아니라 허학일 뿐이다. 주자학이 당파 싸움으로 끔찍한 것이 되어버렸지만, 수운은 서구 사상이 지금도 그 언저리도 못 간다고 했다. 결국 수운과 같은, 행동하는 지성이 되지 않으면 역사를 바꿀 수 없다. 수운은 죽음을 향해 스스로 걸어 들어가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현재 천도교(동학)가 쓰는 ‘한울님’이란 용어는 잘못됐고, ‘하느님’으로 복원되어야 한다고 한 이유는?

“‘하느님’은 본래 우리 민족이 쓰던 고유의 언어인데, 천도교 교리를 만든 사람들이 천주교에서 하느님이라고 쓰니, 한울이라고 했다. 애국가에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라고 한 것은 ‘우리 민족 고유의 하느님이 보우하사’라고 한 것인데, 이제 ‘기독교가 보우하사’가 되어버렸다. 한울이란 용어는 우리 민족도, 수운도 쓰지 않았고, 보편성도 없다. 동학은 빨리 원래대로 ‘하느님’이란 용어를 되돌려놓아야 한다.”

―기독교 집안에서 나고 자라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교를 다니고도, 공부의 방향을 철학으로 전환한 까닭은?

“여러 이유를 댈 수야 있겠지만, 타고난 기질 때문이다. 신학교에 가보니, ‘여기다 내 인생 걸다가는 숨 막혀 죽겠구나’라고 느껴져 나와버렸다. 서양철학도 견딜 수 없어서 ‘중국 고전’으로 향했다. 동학을 계기로 국학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 우리 집안은 기독교 집안이지만, 어머니는 내가 승복을 입건 무엇을 하건 존중해줬다.”

―여생의 학문과 삶을 어디로 귀결할 것인가?

“국학이다. 국학 자료들이 많이 번역되면서 과거에 몰랐던 정보가 교차 점검되며 풍부해져가고 있다. 국학 분야를 건드리면 재미가 있어 미치게 된다. 나와 연결된, 우리가 살아온 삶과 역사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국학이 중흥기를 맞이하고 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대기업에 들어가고, 벤처 할 생각만 하지 말고, 고전을 공부해서, 이 나라의 문명의 깊이를 추구해줬으면 좋겠다. 21세기는 우리 스스로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고, 우리 삶의 방식을 만들기 위해 정신 차려야 할 때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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