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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 깨달음의 길 알리고자 ‘정독 선문정로’ 펴냈죠”

등록 2022-02-21 19:49수정 2022-02-22 02:31

[짬] 원택 스님·강경구 교수

‘성철선’ 연구가인 강경구(왼쪽) 동의대 교수와 성철 스님의 상좌 원택(오른쪽) 스님. 조현 종교전문기자
‘성철선’ 연구가인 강경구(왼쪽) 동의대 교수와 성철 스님의 상좌 원택(오른쪽) 스님. 조현 종교전문기자

성철(1912~1993) 스님은 한국불교 선(禪)의 당간지주를 세우려 했다. 그 당간지주가 1981년 출간된 <선문정로>(2집 2권)였다. 현대 한국불교의 최대 논쟁이 된 ‘돈(돈오돈수)-점(돈오점수) 논쟁’을 촉발시킨 책이었다. ‘성철선 이해와 실천을 위한’ <정독 선문정로>가 도서출판 장경각에서 출간됐다. 장경각은 성철선(禪)을 선양하기 위해 성철 스님을 22년간 시봉한 상좌 원택 스님이 설립한 성철 저서 전문 출판사다. 한문투였던 선서를 한글 세대가 읽을 수 있도록 새로 편집했다.

21일 서울 견지동 한국불교문화역사기념관에서 열린 출간 간담회에서 원택(79) 스님과 강경구(63) 동의대 중어중문과 교수를 만났다.

1981년 성철 종정 ‘선문정로’ 등 펴내
“나는 이제 부처님께 밥값을 했다”
조계종 중조인 보조지눌국사 비판에
‘돈오돈수-돈오점수’ 최대 논쟁 촉발

“화두 사라진 진정한 무심이 견성”
‘성철선’ 이해 돕고자 한글로 풀이

도서출판 장경각 제공
도서출판 장경각 제공

“(성철) 스님께서 해인사 방장이 되어 1967년 동안거 때 백일법문을 했지만, 그 이후 15년간 스님 저작은 한 권도 없었다. 1981년 조계종 종정이 된 뒤에야 <선문정로>와 <본지풍광>이 나왔다. 스님은 <종경록>(북송 영명연수의 저서)을 10년간 따로 공부해 선을 정리했다. 법정 스님에게 윤문을 맡긴 이 두 책을 내고 ‘나는 이제 부처님께 밥값을 했다’며 ‘이 책들을 제대로 터득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나를 바로 아는 사람일 것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그 책에 조계종의 중조이자 송광사 16국사 문중의 초조인 보조지눌국사의 ‘돈오점수’(깨닫고 난 뒤에 점차 닦음)를 비판하면서 선종의 정통은 ‘돈오돈수’(한번 깨달으면 더 이상 닦을 것이 없음)라고 밝혀 한국 불교학계가 발칵 뒤집혔다.”

원택 스님은 “보조학회에서 이종익 교수 등이 상좌인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신랄하게 (성철) 스님 욕을 했다”며 그때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나 성철 스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면서 직접 들은 말씀이 있어서 <선문정로>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었다고 했다.

“스님께서 불쑥불쑥 말씀을 하셨다. ‘내가 29살 때 동화사 금당에서 칠통(칠흑 같은 어둠)을 깨고 오도송을 읊고 나니 온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날 밤 장좌불와(밤새 눕지 않음)의 자세가 저절로 되며 용맹정진에 들어가는기라. 그렇게 편안하게 하룻밤을 지냈는데, 그게 하루가 아니고 매일매일 장좌불와로 이어지는기라. 그것이 그래 며칠이나 갈란가 하고 장좌불와의 자세를 잃지 않았제. 이놈아! 그게 얼마쯤 하다가 마는 것이 아니라 10년 가까이 저녁마다 그 자세로 지냈단 말이다. 밤에 고개 한번 떨구지 않고 말이다’라면서 얼굴에 미소 가득 득의연해 하셨다. 다섯 번이나 그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 속으로는 ‘참말로 그럴 수 있을까? 정신과 의사들이 들으면 무엇이라 할지…’ 하는 불경스러운 마음을 지우지 못했다. 또 큰스님께서 여든살에 급성폐렴으로 부산 동아대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계신 어느 날, 병문안을 가서 침상 옆에 꿇어앉아 누워 계신 모습을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는데, 퀭한 눈빛으로 ‘똑같다! 똑같다!’라고 한두 마디만 하셔서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니 한마디 하셨다. ‘이 벽창호 같은 놈아! 옛날 젊었을 때나 장좌불와할 때나, 목숨이 오가는 지금이나 정진이 똑같다는 말이다. 그 말도 못 알아들어? 미련한 곰새끼 아니가?’ 하셨다.”

<선문정로>가 돈·점 논쟁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선의 바른 길을 제시하려고 펴낸 책이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릴 방법을 찾아 고심하던 원택 스님은 강 교수가 성철선에 대해 쓴 논문을 보고 눈이 번쩍 뜨여 해설서를 부탁했다.

왼쪽부터 &lt;정독 선문정로&gt; 저자 강경구 교수와 감수자 원택 스님. 조현 종교전문기자
왼쪽부터 <정독 선문정로> 저자 강경구 교수와 감수자 원택 스님. 조현 종교전문기자

1천쪽 분량의 책을 정리해낸 강 교수는 출가한 형을 따라서 초등학교는 강원도 정암사에서, 고교 때는 제주도의 사찰에서 학교를 다니며 <초발심자경문>을 배웠고, 젊은 날엔 그 자신도 출가를 위해 해인사에서 20여일간 행자 생활을 했다. 그는 대학 교수가 되면서 원택 스님이 설립한 부산 고심정사 불교대학에서 15년간 <신심명>과 <육조단경> 등 선서(禪書)들을 강설했다.

“선종의 깨달음이 과연 부처님의 깨달음과 동일한 것인지가 늘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성철 스님은 스스로 부처님의 깨달음에 도달했다고 생각했고, 여래선과 조사선과 간화선의 깨달음에 연결되는 코드를 발견했다. 그것이 구경무심(究竟無心·궁국의 무심 경지)이다. 선은 화두를 타파해 반짝이는 대답을 얻었다고 되는 게 아니다. 내놓은 대답이 기특한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진정한 상태인지를 봐야 한다.”

강 교수는 “언뜻 본 것을 가지고 공안 몇개를 타파했다고 하더라도 부처님이 도달한 무심의 상태에 이르지 못하면 깨달음이 아니다”라고 <선문정로>의 진의를 전했다. 그래서 견성했다는 수좌들에게 과연 견처가 동정일여(움직일 때나 멈출 때가 같은지), 몽중일여(꿈에서나 깨어있을 때나 같은지), 숙면일여(깊은 잠을 잘 때도 같은지)인지 물었다는 것이다.

원택 스님은 “그 전엔 선방에서 안거가 해제되면 ‘한마디 일러보라’며 서로 깨쳤다고 고함을 치는 바람에 시끄럽고 요란한 싸움이 일곤 했는데, (성철) 스님의 물음 이후 싸움이 그치고 조용해졌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화두는 강력한 무기이지만 그 뜻을 헤아리면 머리(생각)에서 일어난 장난일 뿐이지 자기 구원에 이를 수 없기에 성철 스님은 유심으로 인한 장애가 완전히 제거된 진정한 무심이라야 견성이고, 만약 수행이 더 필요하다면 그것은 견성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이라며 “꿈조차 없는 숙면의 상태에서 무심의 선정이 유지돼 아뢰야식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야 진정한 무심이 나타나는데, 그것이 부처 마음과의 통일적 만남이 일어나는 지점임을 분명히 해 선의 나침반을 삼게 했다”고 설명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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