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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 위해 택배·대리운전 목사님 “교인 애환·헌금 소중함 더 느껴”

등록 2022-09-13 07:00수정 2022-09-13 17:26

예장 이중직 경험 ‘겸직 목회’ 발간
구교형 목사 “삶에서 멀어지면 안돼”
겸직 반대하던 보수적 개신교도
미자립교회 늘면서 의식 달라져
목회를 하면서 택배기사와 대리운전 일을 한 구교형 목사. 조현 종교전문기자
목회를 하면서 택배기사와 대리운전 일을 한 구교형 목사. 조현 종교전문기자
개신교에서 목사가 목회 이외에 다른 직업을 겸하는 이중직이 이제 거스르기 어려운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청교도목사회는 지난 6일 경기도 고양시 삼송제일교회에서 ‘목사의 이중직,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조성돈 실천신학대학원대 교수는 생계조차 어려운 목사들이 팬데믹 상황에서 택배기사나 대리운전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온 현실을 고려해 이중직을 찬성했고, 서창원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장은 목회자로서 현실보다 소명이 우선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중직에 대해 진보·중도교단들은 대체로 찬성하는 반면, 보수교단들은 반대하는 의견이 강했다. 그러나 최근 대표적인 보수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 목사 34명이 이중직 목회 경험을 담은 책 <겸직 목회>(솔로몬 펴냄)를 발간해 눈길을 끈다. 합동 총회교회자립개발원이 지난해 8월 목회자이중직지원위원회를 꾸리고 준비한 결과물이다. 목사가 자체적으로 생계를 꾸리기 어려운 미자립교회가 전체의 70%에 이르고, 교단의 미자립교회 지원도 한계에 봉착하면서 목사의 이중직에 대한 개신교 내 의식이 전향적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이 책에서 첫번째 필자로 등장해 목회를 하면서 택배기사와 대리운전기사로 일한 분투기를 올린 구교형(56) 십자가로교회 목사를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구 목사는 총신대학원 재학 시절 선배들과 사회선교학교를 하며 사회 참여에 나섰다. 졸업 후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간사를 시작으로 기독청년학생협의회, 남북나눔운동, 교회개혁실천연대, 하나누리 등을 거쳐 현재 성서한국 대표와 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 공동대표를 맡는 등 교회 엔지오(NGO) 활동에 투신해왔다. 엔지오 활동과 교회 부목사 일을 병행하던 그는 처음 교회를 개척한 지 5년 만인 2015년 생계를 위해 택배 일을 시작했다.

<겸직 목회> 표지. 솔로몬 제공
<겸직 목회> 표지. 솔로몬 제공
택배 일은 녹록지 않았다. 아침 6시40분 지하 택배분류장에서 갖가지 물건 가운데 자기 몫을 골라 정리하고 화물차에 실어 출발 준비를 끝내면 오전 10~11시가 됐다. 처음엔 지도 한장 들고 한 집 배송하는 데만 30분 넘게 걸린 탓에 속이 타고 절망에 빠졌다. 하루 겨우 100여개밖에 배송을 못 했는데도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엉뚱한 곳에 배송하는 바람에 고객들의 항의 전화가 끊이지 않아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두려움에 떨었다. 택배는 구역이 정해져 있어서 아파도 쉴 수 없다. 쉴 수 있는 날은 달력의 빨간 날뿐이다. 팬데믹 이후엔 무거운 음료와 세제, 심지어 안마의자까지 택배로 보내곤 했다.

“물품에 적힌 ‘위아래를 뒤집지 말아주세요’란 글을 보면 속이 뒤집혔다. 화초나 생화 같은 것을 보내면서 ‘형님, 오늘 중에 살아서 갈 수 있을까요’라고 쓴 문구를 보면, ‘형님, 이렇게 소중한 물건을 택배로 보내셔도 되나요’란 말이 절로 나왔다.”

구 목사가 맡은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엔 엘리베이터도 없는 연립과 빌라가 많아 4~5층까지 지고 나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렇게 하나를 배달하고 받는 돈이 700~800원이었다. 동분서주하다 보면 아침을 거르고, 점심도 대충 때우고, 늦은 저녁에야 겨우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아저씨’라고 부르며 반말 조로 몰아붙이는 고객을 대할 때면 ‘그래도 내가 목사인데…’ 하는 자존심이 올라왔다.

“그러다 보니 방어적 태도가 생겨나고 말투가 퉁명스럽게 변했다. 어느 날 퇴근 후 고객과 통화하는 모습을 본 딸이 ‘아빠는 지금 배달기사인데 자꾸 목사로 대접받고 싶어 하는 것 같아. 택배기사인 걸 인정해. 그리고 아빠가 열심히 일해서 가족 먹여 살리는 것이 얼마나 멋있는데’라고 말했다. 그 말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만 같았다.”

목회를 하면서 택배기사와 대리운전 일을 한 구교형 목사. 조현 종교전문기자
목회를 하면서 택배기사와 대리운전 일을 한 구교형 목사. 조현 종교전문기자
구 목사는 처음 택배일을 시작했을 때는 점장에게 부탁해 주 4일만 근무했지만, 팬데믹 이후 2020~2021년엔 주 6일간 택배일을 했다. 그렇게 택배의 고강도 노동을 감내하고 나면 설교 준비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지금은 대리운전으로 전환했다. 대리운전은 저녁 식사 이후인 오후 7시께 시작해 대중교통으로 집에 돌아오려면 밤 11시에 일을 끝내야 하기 때문에 택배 일에 비하면 수월했다. 다만 택배는 한달에 300만원가량 벌어 생계에 큰 도움이 되지만, 대리운전은 전용 애플리케이션 서비스 사용료와 보험료를 내고 나면 손에 쥐는 것은 겨우 100만원 정도다. 그러나 그는 이중직을 하면서 돈보다 더 큰 것을 벌었다고 생각한다.

“본래 목회자 자리가 삶에서 멀어지면 안 된다. 지금까지는 한국 교회가 고도성장을 하다 보니 가만히 앉아 있어도 교인들이 찾아오고, 자동으로 성장하고, 교인들의 성금으로 자연스럽게 운영될 수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더는 그런 상황을 기대할 수 없게 되자 현장 일을 겸한 목사들이 늘었는데, 이것이 경제적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신앙적 측면에서도 신자들의 애환을 이해하고, 그들이 어떻게 한 주를 살아가고 어떻게 헌금을 모아 가져오는지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된다.”

구 목사는 “지금까지 한국 교회가 신앙인들끼리만 모이다 보니, 독백 모임처럼 되어버린 경향이 짙다”며 “이중직은 일반인들의 감각을 되찾아 새롭게 복음전도의 길을 여는 기회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한편, 예장합동 총회교회자립개발원은 이중직 사역을 위해 유용한 직업 개발 및 연계, 권역별 통합지원센터 및 네크워크를 구축하고, 오는 19~22일 열리는 정기총회에서 ‘이중직목회자지원협의회’ 설립을 청원하기로 했다.

목회자들 사이에서도 <겸직 목회> 강독회를 하며 이중직의 현실을 배우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마을목회포럼 4.0’은 9~11월 12주 동안 마을목회학교를 열고 <겸직 목회>를 읽는다. 또 총회교회자립개발원 광주전남권역위원회는 10월 이 책으로 세미나를 열 계획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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