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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조현이만난사람

30년 전 속초성당서 설법한 무산스님 뜻 이은 ‘문화인의 집’ 연다

등록 2022-09-16 07:00수정 2022-09-16 10:20

[짬] 권영민 교수 신달자 시인 선일 스님

서울 성북구 성북동 무산선원에서 신달자 시인과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 주지 선일 스님(사진 왼쪽부터). 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서울 성북구 성북동 무산선원에서 신달자 시인과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 주지 선일 스님(사진 왼쪽부터). 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설악산 신흥사 조실이자 시인이었던 무산 조오현(1932~2018) 스님을 기리는 무산선원이 서울 성북구 대사관로3길 삼청각 옆에 개원된다. 그런데 이 사찰은 일반 불자들이 기도하거나 참선을 하는 도량이 아니라, 문화예술인들이 작품을 발표하고 공연하고 교류하는, 이른바 ‘살롱’이 될 전망이다. 무산 스님의 상좌들의 모임인 무산문도회가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 문화예술인들을 위해 멋들어지게 재탄생한 무산선원에서 무산 스님을 따르던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 신달자 시인, 선일 스님을 15일 만났다.

무산선원 요사채. 조현 종교전문기자
무산선원 요사채. 조현 종교전문기자

30여년 전 속초성당의 십자가 아래에서 설법하고 있는 무산 조오현 스님. 무산선원 제공
30여년 전 속초성당의 십자가 아래에서 설법하고 있는 무산 조오현 스님. 무산선원 제공

권 교수와 신 시인은 ‘무산 스님이 열반한 뒤 스님을 그리는 문화예술인들이 마음 둘 곳이 없었는데, 스님의 제자들이 이런 공간을 만들어줘 다시 모일 수 있게 된 것’에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무산 스님은 만해마을과 만해축전, 만해대상을 만들었다. 특히 시조시인인 무산 스님은 만해마을을 시인과 소설가들의 아지트로 제공했고, 작가들이 작품을 발표할 수 있도록 <유심>을 창간하고, 유심작품상을 만들어 문화예술인들의 큰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특히 일체의 형식적인 틀에 얽매이지 않고 파격을 일삼은 기인이었던 무산 스님은 ‘아지랑이’ 등 200여 편의 구도시를 써서 공초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깨달음을 담은 추상화와 글씨도 남겼다. 그는 남모르게 사회적 약자들과 빈자들을 도왔고, 남을 돕는 데 일체의 종교적 차별을 두지 않았다. 무산선원의 전시공간이자 주 행사장소로 활용될 181㎡(55평)가량의 요사채엔 무산 스님의 그림들과 함께, 무산 스님이 30여년 전 속초성당의 십자가 아래에서 강연하는 사진이 걸려 있다. 주지 선일 스님은 “종교의 벽을 허물었던 무산 스님의 뜻을 반영해 요사채 입구 불상 옆에 2m 높이의 마리아상을 모시기로 했다”고 밝혔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 무산선원. 조현 종교전문기자
서울 성북구 성북동 무산선원. 조현 종교전문기자

무산선원의 전시와 행사공간인 요사채에 걸린 무산스님의 글씨와 그림. 조현 종교전문기자
무산선원의 전시와 행사공간인 요사채에 걸린 무산스님의 글씨와 그림. 조현 종교전문기자

무산선원 법당 벽을 장식한 무산 스님의 시와 그림. 조현 종교전문기자
무산선원 법당 벽을 장식한 무산 스님의 시와 그림. 조현 종교전문기자

산과 계곡이 어우러진 서울 속 비경인 무산선원은 평생 이곳에서 수도해온 한 노승이 무산 스님의 정신에 감동해 기증한 것을 삼조 스님을 비롯한 제자들이 법당 벽과 요사체 전시 공간에 스승의 글과 그림과 시를 전시한, 멋진 공간으로 리모델링을 마치고, 오는 19일 오후 2시 개원식과 시낭송회를 연다.

조오현 스님 기리는 무산선원

‘문화 예술인 살롱’ 19일 재탄생

정호승 도종환 등 첫 시낭송 행사

요사채 55평 전시·공연 공간

“종교 벽 허문 스님 뜻 받들어

요사채 불상 옆엔 마리아상”

“무산 스님은 인간의 화합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 분이다. 너와 나, 우리, 더불어 함께를 늘 강조했다. 슬프고, 외롭고, 굶는 사람 없이 함께 살자고 했다.”

신 시인은 자신은 가톨릭 명동성당 신자로서, 불자가 아닌데도, 무산 스님과 인연을 맺은 일화를 들려줬다.

“2000년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우울증 증세가 심해 산에 자주 가라는 의사의 권유로 대모산 아래로 이사를 했다. 그곳엔 포장마차가 많았다. 밤마다 출근하듯 포장마차에 가서 소주를 마셨다. 새벽 미사를 드리러 일어나 포장마차를 지나는데 막 포장마차를 닫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거리의 암자’라는 시를 썼는데, 무산 스님이 어디선가 그 시를 보고, 보자고 했다. 그리고 겨울 동안거 해제 때 백담사에 갔더니 스님들에게 ‘너희가 3개월 수행한 것보다 이 시 한 편이 낫다’고 말해주었다. 우울증으로 인해 ‘시는 써서 뭐 하나’라고 좌절한 내가 스님의 그 한마디에 다시 살아났다. 스님은 나뿐 아니라 문단 곳곳의 음지에서 눈을 겨우 뜬 문학인들의 손을 잡아줬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 무산선원에서 신달자 시인과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 주지 선일 스님(사진 왼쪽부터). 조현 종교전문기자
서울 성북구 성북동 무산선원에서 신달자 시인과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 주지 선일 스님(사진 왼쪽부터). 조현 종교전문기자

무산선원 요사채에 전시된 무산 스님의 그림. 조현 종교전문기자
무산선원 요사채에 전시된 무산 스님의 그림. 조현 종교전문기자

무산 스님의 시를 해설한 <적멸을 위하여>의 저자이기도 한 권 교수는 “2005년 세계평화시 축전 때 조직위원장을 맡으면서 무산 스님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됐다”며 무산 스님의 시 세계를 소개했다.

“2014년 서울대를 정년퇴임하고 미국 버클리대 동아시아학과에 가서 지난 8년간 한국문학을 가르쳤는데, 뉴욕주립대 하인즈 펜클 교수가 <적멸을 위하여>를 영역했기에 이유를 물었더니 ‘기독교와 관련된 시는 엄청나게 많은데 불교 시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작품이 없다. 그런데 승려시인 무산 스님 시의 깊이가 대단해서 선택했다’고 답했다. 그가 무산 스님의 선시를 여러 유명 잡지에 소개해 서구인들이 스님의 시를 읽고 굉장히 좋아했다. 하버드대의 데이비드 매캔 교수는 무산 스님 시조를 영역해 미국에 알리고, 뉴잉글랜드 지방 고교 교사들에게 영어로 시조를 짓는 것을 가르치며 한국 시조를 널리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무산 스님의 시조가 촉발제였다.”

권 교수는 “무산 스님의 뜻을 잇기 위해 ‘무산 스님을 그리는 문화예술인’ 50여명과 함께 매달 두분 내지 네분 정도의 시인과 문화예술계 인사를 초청해 자작시 낭송회와 음악회를 개최할 것”이라며 “문화예술인들이 서로 위로하고, 높은 시정신을 이어가는 기회를 갖기 위해 동참해달라”고 호소했다.

오는 19일 시낭송회엔 도종환, 정호승, 이근배, 오세영 시인 등이 참여해 시낭송회를, 안숙선 명창이 창을 들려줄 예정이다. 크리스천인 배우 신영균도 종교를 넘어선 무산선원의 화합과 상생의 정신에 동참하기 위해 함께하기로 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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