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다는 것>을 쓴 강영안 서강대 명예교수 겸 미국 칼빈신학대학원 교수. 사진 칼빈신학대학원 제공
한국 크리스천들은 세계에서 성경을 가장 열심히, 가장 많이 읽는다. 한 주간에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신·구약 66권을 모조리 읽어내곤한다. 특히 한국 개신교 복음주의자들의 열성은 대단하다. 그런데 인도 선교사 출신의 영국 신학자이자 <1984년의 저편>의 저자인 레슬리 뉴비긴(1909~1998)은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을 읽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한국의 크리스천 철학자를 큰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그 말을 듣고 ‘과연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을 가졌던 강영안(68)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35년 만에 <읽는다는 것>(IVP 펴냄)을 통해 답했다. ‘독서법 전통을 통해서 본 성경 읽기와 묵상’이란 부제를 단 책이다. 저자는 계명대와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거쳐 지금은 미국 칼빈신학대학원에서 동서양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칸트학회·한국기독교철학회·대한철학회·한국철학회 회장을 지낸 대표적인 크리스천 철학자이자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공동대표로, 한국 개신교의 나아갈 길을 제시해온 운동가이기도 하다.
당시 뉴비긴에게 “복음주의자들만큼 성경을 금과옥조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물었다가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을 외우고 성경을 인용하지만 성경을 읽지 않는다”는 답변을 들었던 저자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는다는 사람들 가운데 예수의 질책에 무관심하게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꼬집었다.
저자는 “‘저게 자전거입니다’라고 읊조리기만 하면 소용이 없고, 자전거에 올라타봐야 자전거를 탈 수 있듯, 성경 말씀을 삶에 ‘적용’하고 나 자신을 성경에 ‘적용’할 때 비로소 성경 말씀을 읽고 이해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성경을 제대로 읽는다면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국 간다’고 단순하게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에서 한-일 갈등이 고조되던 지난해 8월 보수 유튜버들의 논리대로 ‘일본 배상금으로 잘살게 됐다’는 설교를 한 분당 우리들교회 담임 김양재 목사의 성경 읽기와 묵상 방법을 비교적 자세하게 언급한 것은 옥에 티가 아닐 수 없다.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말씀과의 괴리로 위기가 가중되고 있는 한국 개신교로선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숙제를 던져준다. 저자는 코로나로 인해 방한을 못 하고 미국에 체류 중이어서 인터뷰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진행했다.
미국에서 북토크중 답변하는 강영안 교수. 사진 칼빈신학대학원 제공
―한국 개신교는 같은 신을 믿고 같은 성경을 읽는데 왜 남북·남남 갈등에서 보수·진보로 나뉘어 첨예하게 맞서나?
“기윤실에서 크리스천들의 정치의식을 조사해보니, 젊은 전도사들은 변화를 원했지만 나이 든 장로들은 안정 지향이었다. 성경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정의로운 평화다. 그래서 크리스천이라면 남녀·인종·계층을 차별할 수 없다.”
―그런데 대형교회 목사들이 성경 구절을 일부 발췌해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를 공격하고 배타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성경을 제대로 읽었느냐는 것은 사람을 억울하게 하느냐, 하지 않느냐로 알 수 있다. 억울하게 하는 것은 불의를 행하는 것이고,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은 정의와 공의를 세우는 것이다. 또 고아와 과부, 가난한 자와 나그네, 즉 예멘 난민과 같은 외국인을 어떻게 대우하느냐를 보면 알 수 있다.”
―비리·세습·성폭력·언어폭력을 하는 목사들의 경우 성경 읽기와 도덕이 평행선을 긋는 이유는?
“암스테르담에 있을 때 한국 목사 25명이 와서 현지 한인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적이 있다. 주로 상사 주재원들인 현지 교인들의 반응이 ‘목사님 같은 분이 안 보이네요, 모두 사업가 같아요’였다. 종교가 ‘업’이 되어버리면 입으로는 하나님을 이야기하나, 실은 무신론자가 된다.”
―‘오직 믿음으로 의로워지며 구원을 받는다’는 ‘이신칭의’에 따라 믿음만 강조하며, 도덕성이나 덕행이나 실천, 사회정의를 무시하는 경향이 강한 이유는?
“이해에 문제가 있어서다. ‘의롭게 된다’는 말은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가 평화로운 관계로 회복된다는 것, 둘째 그리스도와 한몸이 되어 닮은 삶을 사는 것, 셋째 선한 삶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문제는 첫번째에서 멈춰 둘째, 셋째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는 데 있다. 칼빈(칼뱅)은 구원을 칭의에 한정하지 않고 성화도 포함한다. 성화는 거룩한 삶의 회복이다. 루터나 칼빈, 웨슬리 모두 사역에서 누구 못지않게 가난한 사람을 돌보고 불의한 제도를 개선하려 애썼다.”
―책에서 언급하듯 복음주의자들은 부와 건강과 성공만이 신심의 징표이고, 고통은 벌처럼 느끼게끔 기복적 간증을 많이 하는데.
“인간은 건강하게 남보다 부유하게 살려는 욕망을 가진 존재다. 현실에서 종교는 세계 어디에서나 욕망을 충족하는 수단으로 쓰였다. 그러나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기독교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종교는 아니다. 건강이나 물질, 성공의 축복보다 오히려 고난을 강조한다. 성경에 따르면 사회의 악이나 횡포, 부조리한 구조를 바꾸기 위해 받은 고난은 오히려 영광이다.”
―대형교회 목사들의 대물림 세습을 비롯해 자기 중심, 가족 중심의 사고가 지배하는데.
“자기 중심과 가족 중심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다. 모든 관계와 삶이 여기서 출발한다. 하나님의 창조 가운데 처음 하신 일 중 하나도 가정을 세우는 일이었다. 가정에서 한 사람이 양육되고 한 인간으로 성숙한다. 그만큼 한 개인도 중요하고, 가족도 중요하다. 그러나 예수의 복음은 개인주의나 가족주의를 지지하지 않는다. 예수는 혈육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곧 형제자매요 어머니라 가르쳤다.”
―한국 교회가 ‘성경적’으로 돌아가는 길은?
“한국 교회의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에 대한 무관심이다. 대신 물질주의와 현세주의, 성공주의, 극단적인 정치 이념에 사로잡혀 있다. 성경을 다시 읽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발견해야 한다. 성경을 읽되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성품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형성될 수 있게 읽어야 한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