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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조현이만난사람

“지역민에게 ‘놀 판’ 깔아주니 ‘새 불교 발상지’ 이름났네요”

등록 2020-07-06 21:46수정 2020-07-07 08:58

[짬] 남원 실상사 회주 도법 스님

도법 스님이 거처하는 남원 실상사 경내 극락암 마당에는 풀을 부러 뽑지 않아 개망초꽃이 가득하다. 사진 조현 기자
도법 스님이 거처하는 남원 실상사 경내 극락암 마당에는 풀을 부러 뽑지 않아 개망초꽃이 가득하다. 사진 조현 기자
전북 남원 산내면 지리산 아래 평지에 있는 실상사. 통일신라시대 선(禪)을 알린 구산선문 가운데도 가장 먼저 개창한 선의 발상지다. 그러나 실상사는 이제 관념화되어가는 선마저 깨고, 현장에서 지역민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새 불교의 발상지다.

아침마다 모든 대중이 모인 자리에서 승려들과 재가자가 함께 원으로 둘러앉아 법회를 보고, 공양간에서도 원탁에 빙 둘러앉아 함께 식사를 하며, 승려들도 직접 자신의 식기를 씻는다. 하나같이 다른 사찰에선 쉽게 보기 어려운 장면들이다. 그 변화의 중심에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상임대표인 회주 도법 스님(71)이 있다. 최근 <붓다, 중도로 살다>(불광출판사) 개정판을 펴낸 스님을 지난 4일 실상사에서 만났다.

1998년 실상사 소유 3만평 내놓아

이듬해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발족

귀농학교·한생명·대안학교 등등

산내면 500여명 귀촌 ‘마을공동체’로

선문집 ‘붓다, 중도로 살다’ 펴내

“길도 답도 깨달음도 현장에 있어”

도법 스님의 뒷편 벽에 인드라망생명공동체를 상징하는 안상수 교수의 작품  ‘존재의 실상’ 액자가 걸려 있다. 사진 조현 기자
도법 스님의 뒷편 벽에 인드라망생명공동체를 상징하는 안상수 교수의 작품 ‘존재의 실상’ 액자가 걸려 있다. 사진 조현 기자
새벽마다 스님들이 직접 울력에 나서 풀을 뽑아서인지 실상사 경내는 깔끔하기 그지없다. 도법 스님이 주석하는 극락암만 빼고 말이다. 너른 경내의 남쪽 끝 극락암에 들어서면 삭발 시기를 놓쳐 산발한 듯 자란 개망초가 가득하다. “개망초가 가득 차면 다 망한다고 하던데….” 사람들은 저마다 흥하고, 성공하고, 소유하고, 부유해지고, 건강해지고, 장수하기 위해 애쓴다. 그런데 ‘망한다’는 소리를 그토록 평화롭게 하다니.

“우린 모두 가짜 뉴스에 속고 있어요.”

그가 말하는 ‘가짜 뉴스’는 존재에 대한 착각이다. 그 착각이란 만물과 독립된, 별개의 나가 존재할 수 있다는 착각이다. 즉 존재의 실상인 중도(中道)에 대해 무지하기에 세상이 다 망해도 나만 흥할 수 있다고 믿고, 쓰레기더미를 집 밖에 버리고서 나만 청정하고 건강하게 살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는 별개가 아니라 모두가 연결된 실상을 인드라망생명공동체로 표현하며 그 운동을 펼쳐왔다. 그러니 나만, 내 울타리 안만 챙기는 것 자체가 ‘가짜 나’에 속아 사는 삶인 셈이다.

새벽마다 모두 나와 울력하는 실상사 스님들
새벽마다 모두 나와 울력하는 실상사 스님들
새벽 울력중인 도법 스님
새벽 울력중인 도법 스님
그 역시 처음부터 지금의 중도관을 가진 것은 아니다. 출가 초기엔 남들 하듯이 참선으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 13년간 선방에서 화두선에 몰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화석화한 구두선에 일생을 허비할 수 없었다. 아니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부처님의 생애를 보면 출가 초기 6년 동안 고행의 최정점까지 갔는데도 해답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사막의 한가운데 서서 자기 자신에 직면해 관찰해서 연기법을 발견했다. 깨달은 직후 다섯 비구를 만나 고통의 소멸을 일깨워주면서 이를 ‘중도’라고 설명했다. 부처님은 ‘나란 존재가 어떻게 이뤄졌는지’에 대해 ‘연기(緣起)로 이뤄졌다’고 했다.”

공양간에서 원으로 둘러앉아 재가자들과 어울려 함께 식사를 하는 실상사 스님들
공양간에서 원으로 둘러앉아 재가자들과 어울려 함께 식사를 하는 실상사 스님들
실상사 스님들과 재가자들이 함께 밭에서 울력을 하고 있다.
실상사 스님들과 재가자들이 함께 밭에서 울력을 하고 있다.

차를 내리는 도법 스님의 뒤벽엔 인드라망생명공동체의 상징이 있다. 1999년 인드라망생명공동체가 발족할 때 안상수 홍대 미대 교수가 도안한 ‘존재의 실상’이다. 연기적으로 서로 연결되어있는, 사람 형상 위로 새와 나무, 태양과 별 그림이다.

“나라는 존재가 만약 공기가 없다면, 물이 없다면, 식물이 없다면, 태양이 없다면 살 수 있을까. 그것들이 없다면 부처님과 예수님도 별수 없어요. 우린 서로 의지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지요. 그러니 내가 곧 세상이고, 우주지요. 그것이 우리의 참모습이고, 본래 면목이에요.”

그런데도 이런 ‘중도’가 정치권의 ‘중도 통합’이란 말로 정치적 언어가 되어있을 뿐 불교계에선 알듯 모를듯 복잡하고 난해하게만 여겨져 교리적으로는 미궁에 빠져버리곤 한다는 게 그의 안타까움이다.

“불자들도 이게 깨달음의 핵심인 중도라고 하면, ‘어떻게 이렇게 쉬울 수가 있느냐’며 믿지 않아요. 꼭 어려워야만 불교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5비구 후에 가장 먼저 깨달은 이들은 밤새 술을 마시다 ‘사는 게 뭐지’라며 잠을 못 이루고 배회하다가 부처님을 만났던 야사 등 청년 50여명이었어요. 기존 관념에 찌들지 않고 순수하게 열려있는 이들은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에 대한, 중도를 듣고, 바로 받아들였어요.”

도법 스님은 야사처럼 부처님의 깨달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부처님과 달리 현장을 놓쳤기 때문이라고 본다.

“현장에 길이 있어요. 답도 현장에 있어요. 목숨보다 귀중한 물건을 잃어서 그걸 찾으려고 한다면 잃어버린 현장을 가야 해요. 전생 내생을 가는 신통을 발휘해봐야 현장을 떠나서는 찾을 수가 없어요. 중도를 우리말로 쉽게 풀어보면 ‘현장에, 있는 그대로의 길’이에요.”

<붓다, 중도로 살다> 개정판 표지.
<붓다, 중도로 살다> 개정판 표지.
그는 1998년 실상사 소유의 땅 3만평을 내놓아 귀농학교를 만들고, 지역민과 함께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한생명’을 만들고, 대안학교인 ‘실상사 작은 학교’와 생명평화대학도 만들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을 ‘그가 한 것도 실상사가 한 것도 아니’라고 한다. 실상사라는 공간이 있으니, ‘이용하려면 이용하라’고 했을 뿐이고, ‘공양간이 있으니, 배고프면 함께 먹자’고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나를 중심으로 일렬로 서라’가 아니고, 나와 실상사는 지역민들이 마음껏 놀 판만 깔아주겠다는 주변인의 자세를 지켜왔다.

농촌에서도 주민이 지역의 주인이 되도록 역량을 키워주지 않고, 농협, 새마을금고, 농민회, 관공서, 종교기관이 하나같이 자기편만을 만들려고 하면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인드라망생명체 정신이자 중도적 삶이다.

산내면에서 무려 500여명의 도시인들이 귀촌해 원주민들과 함께 70여개의 공부·스포츠·예술 동아리들을 만들어 활기찬 마을공동체를 가꾸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 너와 나, 절과 지역민이 둘일 수 없다는 인드라망생명사상의 실천에서 네편 내 편이 아닌, 너와 내가 함께 사는 중도, 즉 ‘제3의 길’이 열린 것이다.

남원/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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