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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조현이만난사람

손 없는 손, 천수천안으로 상처를 감싼다

등록 2020-07-08 14:31수정 2020-07-08 14:42

귀정사 사회연대쉼터지기 중묵 처사

전북 남원 귀정사 사회연대쉼터지기인 중묵 처사(가운데)가 최장기 손님인 권정숙(왼쪽)씨, 집행위원장 장병관씨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전북 남원 귀정사 사회연대쉼터지기인 중묵 처사(가운데)가 최장기 손님인 권정숙(왼쪽)씨, 집행위원장 장병관씨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은 지친 영혼을 편히 쉴 곳조차 찾기 어렵다. 갑자기 해고를 당해 생계 수단을 잃었거나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하며 계란으로 바위를 치다가 나가떨어진 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사찰과 수도원, 교회 수양관 등에 호텔이나 펜션 못지않은 숙소들이 넘쳐나는데도 말이다. 전북 남원시 산동면 만행산 골짜기의 작은 절 귀정사가 소중한 것은 그래서다. 사냥꾼에게 쫓겨 목이 마른 사슴이 바위 뒤에 몸을 숨기며 바위틈 옹달샘에서 목을 축이는 곳. 귀정사는 바로 그런 샘물이다.

귀정사는 2013년부터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 등을 하는 사회운동가나 사회단체·장애인단체 등의 활동가, 문인·예술인들이 무료로 쉴 수 있는 사회연대쉼터 ‘인드라망’을 운영하고 있다. 손님들은 짧게는 1주일, 길게는 6개월씩 머물러 연간 100여명이 쉬어 간다.

귀정사가 부자 사찰이어서 무료 쉼터를 운영하는 게 아니다. 이 쉼터는 100여명의 후원자가 1만~2만원씩 보내주는 월 90만원이 운영비의 전부다. 도시인에겐 며칠 여행비나 용돈에 불과한 비용으로 갈 곳 없는 영혼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는 것이다.

전북 남원 산동면 만행사 귀정사.
전북 남원 산동면 만행사 귀정사.

그 안식처의 지킴이는 중묵 처사다. 본명이 김영균(57)인 그를 처음 본 이들은 화상 입은 얼굴에 오른손이 없는 모습에 놀라고, 한참 지나면 그런 장애를 자신도 잊은 듯 스스럼없이 행동하는 데 더욱 놀란다.

그는 한 살 때 집에 불이 나 화상을 입고 병원에 갔으나 ‘살 수 없다’는 의사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방치돼 오른손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거리낌 없이 대해주는 마을 사람들 덕에 장애를 인식조차 못 하고 살았다. 그러나 집에서 멀리 떨어진 중·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이상하다는 듯 혹은 불쌍하다는 듯한 눈초리로 인해 누구의 눈도 쳐다보지 않는 상처투성이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런데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에 진학한 뒤 민중불교연합 동아리에서 선배가 스스럼없이 자기가 남긴 라면을 국물까지 맛있게 먹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지며 선후배들과 동류가 되었다. 그렇게 이른바 ‘운동권’에 들어가 1년 반 옥살이까지 했으나, 짱돌과 화염병을 던지는 폭력적 투쟁 방식이 늘 마음에 걸렸다. 그러던 차에 출가를 결심했으나 조계종법이 개선되긴커녕 개악이 돼 장애인은 출가할 수가 없게 됐다.

출가길마저 막힌 그를 실상사가 받아주었다. 조계종단 차원에서는 승려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실상사만이라도 승려로 인정하자며, 실상사에 있던 도법·수경·연관 스님이 공동으로 계를 주어 그는 ‘중묵 스님’이 되었다. 도법 스님이 주지를 하던 실상사에 원주 소임을 맡아 절 살림을 하던 그는 2010년 환속을 했고, 양궁선수 출신인 아내를 만나 결혼해 두 딸과 함께 귀정사 아랫마을에서 살고 있다.

귀정사 사회연대쉼터 인드라망 쉼터. 1인씩 쉴 수 있는 이런 흙집 쉼터가 7개가 있다.
귀정사 사회연대쉼터 인드라망 쉼터. 1인씩 쉴 수 있는 이런 흙집 쉼터가 7개가 있다.

환속할 때만 해도 ‘파계승에 대한 절 집안의 싸늘한 시선’을 알기에 절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을 작정이던 그를 다시 불러들인 것은 스승 도법 스님이었다. “앞으로 출가자도 줄고, 승려들이 전국의 절 관리만 하다가 인생이 끝나가는 판이니 이제 재가자가 사찰을 관리하는 시범을 보여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중묵 스님은 중묵 처사로 귀정사에 다시 머물게 됐다.

귀정사는 박원순 서울시장도 시장이 되기 전인 2010년 일주일간 머물다 갔을 만큼 소리 소문 없는 안식처였다. 그러던 귀정사가 사회적 쉼터가 된 것은 2012년 겨울을 이곳에서 난 송경동 시인의 제안에 의해서다.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행사를 이끌며 실형을 선고받고 옥살이까지 한 송 시인은 “‘운동’하다가 심신이 피폐해진 이들이 쉴 만한 곳이 없다”며 “귀정사가 쉼터가 돼주면 좋겠다”고 제안했고, 중묵 처사는 두말없이 “그래 보자”고 했다. 이에 쉼터 공동대표인 윤성현(55) 순천들풀한의원 원장과 노동운동을 하다가 귀농한 장병관(54) 집행위원장 등이 합류했다.

그렇게 해서 사회단체들이 모은 돈 1천만원과 귀정사가 마련한 1천만원 등 2천만원을 종잣돈으로 집을 짓기 시작했다. 이동식 주택 한 채 값도 안 되는 돈으로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해고자 등이 손수 등짐을 날라 일곱칸 집을 지었다. 손님들은 의무적으로 해야 할 어떤 프로그램도 없다. 법회에 참석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불자보다 크리스천이나 무종교인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공양간에서 식사하는 손님들
공양간에서 식사하는 손님들

쉼터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묵처사
쉼터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묵처사
“처음 오신 분들은 대체로 어두워요. 이야기도 잘 안 하지요. 마음의 상처가 크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마음이 풀어져 담을 허물고 사람들과 이야기도 해요. 좀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유연해지고 환해져요. 그래서 사람을 멀리하던 이들답지 않게 ‘부처님 오신 날’처럼 절에 무슨 일만 있으면 득달같이 달려와 내 일처럼 도와주곤 해요.”

중묵 처사는 “아마도 자연이 주는 여유 때문일 것”이라며 “나는 한 일이 없다”고 한다. 중묵 처사다운 말이다. 하지만 천수천안 같은 자비의 손으로 상처 입은 영혼을 안아주는 중묵 처사의 ‘보이지 않는 손’을 보고선 상처를 꼭 쥐고 있던 손님들의 손아귀가 스르르 풀려버렸는지 모른다. 장병관 집행위원장도 손님들에게 “남을 위해서 사는 것도 좋지만, 자기 자신을 챙기고 몸과 마음을 쉬는 것도 중요하다”며 짐을 내려놓도록 격려해주곤 한다.

한살때 집의 화재로 오른손을 잃고 화상을 입었으나, 상처 입은 사람들을 만행산 품에 안아 치유하는 중묵처사
한살때 집의 화재로 오른손을 잃고 화상을 입었으나, 상처 입은 사람들을 만행산 품에 안아 치유하는 중묵처사

윤종광 전 민주노총 전북본부장은 일주일간 머문 뒤 “서른 넘어선 하루도 편히 살아보지 못했는데, 처음으로 평안을 맛보았다”며 3년 전 폐암으로 숨지면서 귀정사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뼛가루는 절 뒤편 숲에 묻혔다.

노동운동을 하던 중에 암을 얻은 권정숙(56)씨는 ‘병이 나을 때까지 머물러도 좋다’는 운영진의 배려로 5년째 머물고 있다. 빈한한 이곳 살림 때문에 중묵 처사와 함께 농사 울력이나 템플스테이 숙소의 세탁 등에 발 벗고 나서는 그는 “그나마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면서 귀정사 살림살이가 나아졌다”고 자랑한다. 귀정사 일주일살이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는 4명이 15만원씩 내는 비용이 귀정사와 쉼터 살림에 큰 보탬이 된다는 것이다. 채소는 직접 가꾸고 두부만 사 먹으니 가능하다고 한다.

‘절은 근근이 사는 게 맞다’는 중묵 처사의 말에서 엿보이듯 요즘 세상에 찾아보기 어려운 ‘소욕지족’의 삶이 아닐 수 없다. 풍요 속의 빈곤인 도시와는 너무도 다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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