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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순례기

팬데믹에 사라졌던 순례객들…예수 ‘수난의 길’ 따라 빼곡

등록 2022-12-08 07:00수정 2022-12-08 10:51

이스라엘을 찾다(중)
한국-이스라엘 수교 60돌…‘역사적 인물’ 예수 유적지 찾아
유대인 공동묘지 너머에 예루살렘 성곽 가운데 예루살렘 성전이 보인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유대인 공동묘지 너머에 예루살렘 성곽 가운데 예루살렘 성전이 보인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이스라엘 북쪽 갈릴리에서 남쪽으로 140여㎞를 내려가면 여리고가 나온다. 사막처럼 헐벗은 산과 벌판이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오늘날과 같은 차가 아니라 두발로 걷고 또 걸었을 2천년 전 예수의 순례길은 얼마나 고됐을지 가늠키 어렵다. 여리고성은 요르단강과 사해가 합류하는 북서쪽 15㎞ 지점에 있는 고대의 성읍이다. 여리고는 해수면보다 250m 낮은 곳에 위치해 해발 800여m인 예루살렘 언덕에서 자전거를 타면 페달을 한번도 밟지 않고 이곳까지 30여㎞를 달려올 수 있다고 한다.

예수가 세례를 받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재현하는 그리스정교회 신자들. 조현 종교전문기자
예수가 세례를 받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재현하는 그리스정교회 신자들. 조현 종교전문기자

생명은 사막에서 더욱 그립다. 나무와 풀조차 없는 땅들을 지나왔기에 이 오아시스 도시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여리고성 안으로 들어가니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던 세례 터가 나온다. 강에선 유럽에서 온 그리스정교회 신자들이 흰옷을 입고 물속에 들어가 세례를 재현하며 찬송을 부른다. 마치 천상의 화음 같은 찬송 소리가 요단강의 흐린 물조차 정화시켜주는 듯하다. 강폭 20~30m쯤의 작은 이 강이 지금은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경계다. 얼마 전 한 한국인 청년도 세례를 재현하다 풍랑에 밀려 강 건너 요르단 경계를 넘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 바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왜 예수는 갈릴리나 예루살렘을 두고 이 먼 곳까지 와서 세례를 받았을까. 이스라엘 순례를 안내한 이강근 유대학연구소장은 “부패하고 병든 종교 지도자들이 있는 유대회당을 떠나 종교개혁가들이 많던 곳으로 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례 터 인근엔 시험산이 있다. 예수가 인근 광야에서 40일간 기도를 한 뒤 사탄의 시험을 받았다는 곳이다. 시험산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자라지 않은 황량함 자체였다. 예수가 사탄의 유혹을 받았다는 중턱엔 수도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예수는 이곳에서 사탄으로부터 △돌을 떡으로 만들라 △높은 데서 뛰어내리라 △나에게 절하라며 육체적 욕망과 능력, 권세를 주겠다고 유혹했으나 예수는 인간적 유혹을 다 이겼다고 전하고 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의 시신을 염한 장소에서 크리스천들이 얼굴을 맞대면서 예수의 체취를 느끼며 묵상하고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의 시신을 염한 장소에서 크리스천들이 얼굴을 맞대면서 예수의 체취를 느끼며 묵상하고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간 골고다언덕에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행군하고 있는 가톨릭 사제와 신자들. 조현 종교전문기자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간 골고다언덕에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행군하고 있는 가톨릭 사제와 신자들. 조현 종교전문기자

‘비아 돌로로사’ 순례 중 예수의 모습을 하며 골고다언덕에서 14년째 맨발로 살아가는 미국인 제임스 조제프와 우연히 조우한 소강석 새에덴교회 담임목사. 조현 종교전문기자
‘비아 돌로로사’ 순례 중 예수의 모습을 하며 골고다언덕에서 14년째 맨발로 살아가는 미국인 제임스 조제프와 우연히 조우한 소강석 새에덴교회 담임목사. 조현 종교전문기자

예수가 시험을 이기고 3년의 사역을 한 후 마지막 7일을 보낸 곳은 예루살렘이다. 예루살렘은 인구 90여만명이 사는 분지로 대부분의 집이 언덕 위에 자리해서 전형적인 달동네의 모습이다. 유대인과 무슬림, 크리스천들이 모두 성지로 여기는 예루살렘 성벽은 4㎞ 남짓한 벽체로 둘러싸여 있다. 이 성벽은 기원전 1천년경 다윗이 점령해 다윗성이라고 명명하고 이어 솔로몬이 성전을 건립하면서 3천년간 유대인들의 정신적 구심점이 된 곳이다. 2천년 전 로마에 의해 성전이 파괴된 후에도 이슬람과 기독교 간의 뺏고 뺏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던 곳이다. 예수가 사형 선고를 받고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 숨을 거두고 부활을 했다는 성소인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슬픔의 길)도 모두 이 성벽 안에 자리하고 있어서, 전세계의 크리스천 순례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 중의 하나다. 이미 실내외를 막론하고 마스크 착용을 하지 않는 이스라엘에선 내외국인 모두 코로나 팬데믹에서 해방된 듯 순례객과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었다. 이번 순례객을 맞이한 이스라엘 관광부 피니 샤니 수석 차관보는 “‘코로나19’ 사태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가 겹치면서 매년 300만∼400만명이었던 관광객 수는 2020년 사실상 전무하다시피 했는데, 이스라엘은 코로나 백신 접종이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돼 작년 6월 실내 마스크 착용 등 모든 방역 조치를 해제해 다시 순례객이 늘고 있고, 관광객들을 위한 버스도 정상화됐다”며 “2023년에는 관광객 수가 예년 수준을 완전히 회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감람산 베드로통곡교회에 전시된 부조. 십자가를 진 예수가 채찍을 맞으며 골고다언덕을 오르는 장면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감람산 베드로통곡교회에 전시된 부조. 십자가를 진 예수가 채찍을 맞으며 골고다언덕을 오르는 장면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예수가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하고 올라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베드로통곡교회로 통하는 길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예수가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하고 올라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베드로통곡교회로 통하는 길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날 첫닭이 울기 전 예수를 모른다고 세번 부인한 베드로의 모습이 새겨진 베드로통곡교회 정문 청동대문. 조현 종교전문기자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날 첫닭이 울기 전 예수를 모른다고 세번 부인한 베드로의 모습이 새겨진 베드로통곡교회 정문 청동대문. 조현 종교전문기자

‘비아 돌로로사’는 예수가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십자가형을 선고받고 로마군과 유대 종교 지도자들, 군중의 조롱과 모욕을 받으며 십자가를 지고 갔던 800여m에 이른 길이다. 이 길엔 재판을 받은 자리인 1처부터 예수의 무덤이 있는 14지점을 순차적으로 걸으며 묵상하도록 되어있다. 예수께서 무거운 십자가를 미처 감당하지 못하고 세번이나 쓰러지면서 손을 짚거나 십자가에 못 박힌 곳을 비롯해 한 지점 한 지점 모두가 크리스천들에겐 예수의 아픔이 전해지는 곳이다. 예수가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며 고통 속에 절규하며 숨이 멎은 무덤은 순례의 절정이다. 겨우 두세명이 들어설 수 있는 무덤에 들어가기 위해 수백명의 순례객들이 줄 서서 기다리며 고요히 예수의 마지막 장면을 묵상하고 있었다.

‘비아 돌로로사’에선 인도에서 온 사제와 신자들이 십자가를 지고 예수의 마지막 모습을 재현하기도 했다. 또 한 순례객은 마치 맨발로 걸으며 마치 예수처럼 순례하고 있었다. 14년째 이곳에서 맨발로 순례하며 살아간다는 미국인 제임스 조제프였다. 그는 “서로 사랑하라”고 미소를 보냈다. 그는 또 “북한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달동네 같은 예루살렘 전경. 조현 종교전문기자
달동네 같은 예루살렘 전경. 조현 종교전문기자

성지 순례를 위해 예루살렘 감람산의 좁은 골목길을 오르내리는 순례객들. 조현 종교전문기자
성지 순례를 위해 예루살렘 감람산의 좁은 골목길을 오르내리는 순례객들. 조현 종교전문기자

각국 언어의 주기도문이 새겨진 주기도문교회에 있는 한글 주기도문. 조현 종교전문기자
각국 언어의 주기도문이 새겨진 주기도문교회에 있는 한글 주기도문. 조현 종교전문기자

예루살렘성 밖에 나오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땀을 비 오듯 쏟으며 기도한 겟세마네동산과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한 베드로통곡교회, 부활한 예수가 하늘로 승천했다는 승천교회, 주기도문교회 등이 감람산 위에 자리하고 있다. 순례를 이끈 전 한교총 대표회장 소강석 새에덴교회 담임목사는 겟세마네동산에서 “모두가 편한 것을 좋아하지 어느 누가 채찍을 맞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난을 당하고 싶겠느냐”면서 “예수님도 ‘이 잔을 거둬달라’고 했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고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라’고 했다”며 예수가 엎드렸던 바위에 머리를 맞댔다.

감람산에선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간 골고다언덕이 있는 예루살렘성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성벽 아래엔 7천여개의 무덤이 빼곡하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올 때 함께 부활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성전 아래 매장되기를 원한다고 한다. 대부분 험준한 언덕에 빼곡하게 집이 들어선 예루살렘의 외관과 달리 공동묘지는 단일한 색상으로 평화롭게 자리해 세 종교가 다투는 성전 구역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소강석 목사는 “예수님은 관 안에서는 시신이 썩는데도 겉모습은 깨끗하게 치장하고 있는 저 ‘회칠한 무덤’을 비유로 들곤 했다”며 “우리 자신이 겉모습과 내면이 다른 ‘회칠한 무덤’이 아닌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고 말했다. 의사로서 목사 안수를 받고 새에덴교회 사역에 동참한 이재훈 목사는 골고다언덕을 바라보며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소망이 있는 저에게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 낮아지기와 자기 비움임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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