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아멘'은 안돼요'
교회 세습과 헌금 유용사태로 얼룩진 교회상 뒤로는 샘물처럼 신선한 모습도 있었다. 세례교인만 2000명이 넘는 서울 잠실중앙교회 담임목사직을 사임하고, 지난해 10월 용인 구성면에 향상교회를 개척한 정주채(53) 목사. 500명 남짓하던 신자들을 이처럼 크게 키운 그가 19년 동안 몸담아온 '큰 교회'의 집착을 어떻게 떨굴 수 있었을까.
그는 1988년 안식년 때 6개월 동안 머물던 영국에서 교회가 무너지는 현장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청년을 찾아보기 어려운 선진국의 대형교회를 보며, 건전한 중소교회를 가꾸지 않고서는 교회의 미래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귀국한 뒤 교회의 장래 성장계획 대화모임에서 훗날 교회가 1500명이 넘으면 교회를 분립하자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신자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이제 교회가 기반이 잡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봉사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게 되었는데 담임목사가 나가면 이런 흐름이 깨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꼭 교회가 커야만 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며 교인들을 설득했다.
"처음 사심 없이 결정한 것이 신선한 것이다. 이유를 붙여 초심을 탈색시키지 않고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설득에 따라 교회는 투표까지 거쳐 분리를 허락했다. 그가 교회의 새로운 모델로 꼽히는 것은 꼭 교회 분립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잠실중앙교회 재직 때부터 북한동포돕기와 불우한 학생들을 위한 장학사업 등에 앞장섰고, 방치돼 있던 지하실을 개조해 시민들에게 예식장과 모임 장소, 영화관으로 개방했다.
"큰 건물이 주일 외엔 비어 있는 것이 아깝지 않은가." 그는 지금 향상교회에서도 노인과 청소년, 어린이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한다.
그는 목사의 기득권을 벗어나는 제안으로 교단과 목사들한테서 눈총을 받기도 했다. 70살인 목사 임기를 65살로 낮추자고 해 엄청난 저항에 부닥치기도 했다.
"교인들이 말 못하고 속앓이를 하는 경우도 많지요. 교회는 목사가 아닌 성도를 위해 있지요. 가게나 기업과는 다릅니다."
그는 현재 교회의 부패는 목사가 하나님 영광을 찬탈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사도 바울이 앉은뱅이를 고치는 기적을 행한 뒤 신자들이 그를 존경하며 신격화하려 하자 자기 옷을 찢으며 '나는 신이 아니다'라고 소리 높였다. 그러나 한국에선 많은 목사들이 자신이 신격화되는 것을 은근히 즐기고 있다."
그는 세습 문제에 대해서도 "합법적으로 했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권한다 하더라도 내 아들이기 때문에 물려줘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 목사의 자세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면 교회 세습이나 교단 선거 비리 등이 생길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목사가 무슨 말을 하든 '아멘, 아멘' 해선 안된다. 베레야 사람들이 바울의 말을 듣고 '정말 그러한가' 생각했듯이 그의 말이 성경에 합당한지를 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그는 이런 안목과 함께 "교회에서의 배움과 삶이 달라서는 안된다"며 신자들에게 가르침대로 살 것을 당부했다. www.hyangsang.or.kr (031)286-2311~3. 글.사진 조현 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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