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함께하는 마음공부
*이 글에서 할아버지란 전남 순천 사랑어린학교 공동체에서 마음공부를 이끄는 아무개 이현주 목사를 말한다.
[남도여행길에 사랑어린배움터를 찾았다.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마음공부시간, 마침 나처럼 나이 많은 애들도 받아준다고 해서 꼽사리 껴 앉게되는 복을 누렸다.]
할아버지께서 들고 있던 잔을 내밀며 물으셨다. 이 잔에 뭐가 담겼는지 아는 사람?
- 몰라요.
- 저도 몰라요.
그 중 한 나이 많은 여자애가 대답했다
- 저는 알아요. 오미자차예요.
그렇지. 너는 알겠다. 이 차를 만들어 가져왔으니까~ 만든 사람은 알지. 또 누가 알 수 있을까? 이게 오미자차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 먹어보면 돼요.
맞아. 이렇게 먹어보면 알 수 있어. 먹어보기 전엔 아무도 알 수가 없지. 이걸 만든 저 친구가 오미자차라고 해도 그걸 믿지 않는 누구에겐 가는 아직 오미자차가 아닌 거야. 색깔이 비슷하다고 오미자차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 오미자 향이 난다고 오미자차라고 확신할 수 있겠어?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직접 먹어보는 거야.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문제들에 부딪히지. 왜 이런 상황들이 벌어졌을까? 왜 내가 이런 곤란한 처지에 몰리게 됐을까? 하느님을 배우는 우리 언어로 얘기하면, 한님은 왜 내게 이런 삶을 살게 하셨을까? 왜 내게 이런 상황을 주셨을까? 이런 질문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답도 찾아낼 수 있지. 어떻게? 오미자차처럼 먹어보는 거야. 그 상황을 차 마시듯 느껴보고 즐겨보는 거야. 살아내 보는 거지. 그러면 그 상황을 만들어 주신 분처럼 답을 알게 될 거야. 우리가 아직 어려서 잘 정리된 답을 못 찾을 수는 있어. 그래도 괜찮아. 머리로는 정리가 안 되도 몸은 받아들일 테니까. 어쩌면 답을 찾을 때까지 계속 그런 상황을 주실 수도 있어. 둔한 놈은 한번 맛보고 모를 수도 있으니까~^^ 몰라도 괜찮아. 중요한 건 답이 아니라 한님의 의중을 읽어내려는 좋은 질문을 품고 사는 것이야. 그러면 항상 배우려는 마음을 잃지 않을 수 있어. 자벌레를 책에서라도 본 사람은 자벌레를 만났을 때 어 저거 자벌레다 할 텐데, 한 번도 못 본 사람은 그냥 벌레라고 할 거야. 배운다는 것은 자벌레를 그냥 벌레라 하지 않고 자벌레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지. 자, 그럼 너희들이 써 낸 익명의 질문쪽지들을 읽어볼까?
- 사랑이 뭐예요?
ㅋㅋㅋㅋㅋ ㅎㅎㅎㅎㅎ
허 참, 진짜 좋은 질문을 했구나. 그래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들어볼까?
- 몰라요
- 아직 몰라요
그래 그럴 수 있어. 아직 경험할 기회가 없었으면 모를 수도 있겠지. 뭔가 많은 경험을 해도 깨어 있지 않으면 그게 사랑인지 무언지 모르는 경우도 있으니까… 또 누구?
- 가슴이 뛰는…
- 따뜻한 마음…
- 가만히 안아주는…
- 눈물의 씨앗이요
그래 그거 왜 안나오나했다ㅋㅋ 자기가 그것을 어떻게 경험했느냐에 따라 십인십색의 답이 나올 수도 있겠다. 그런 게 사랑뿐이겠나. 어떤 사물이든 상황이든 내게 왔을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걸 대했는지, 그래서 그 시간을 얼마나 잘 보냈는지에 따라 저마다 모두 다른 자기의 답을 얻게 되는 거야. 그래서 좋은 질문을 품고 사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지. 이 질문을 한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이런 좋은 질문을 품고 산다면, 자기에게 오는 삶을 허투루 살지 않을 것이 분명하고, 언젠가 아주 훌륭한 답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해. 그럼 다음 질문쪽지는~
- 짜증이나 화가 날 때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지 않고 풀 수가 있을까요?
참 기특한 질문이구나. 화가 났을 때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게 될까봐 염려하는 거잖아. ㅁㅁ는 어느 때 화가 났을까?
- 내 뜻대로 잘 안됐을 때…
그럼 ㅇㅇ이는?
- 무시당했다고 여겨졌을 때…
그래, 뜻대로 안되거나 무시당하거나 하면 누구나 화가 날 수 있지. 火는 불이란 뜻이야. 불은 무엇이 있어야 탈까?
- 땔감이요
그래, 불은 장작 같은 땔감이 있어야 활활 타오르지. 땔감이 없으면 불은 쉽게 꺼지고 마는 힘없는 존재야. 가스가 다 떨어진 라이터는 아무리 손가락이 아프도록 문질러도 절대 불이 붙지 않아. 어떤 사람이나 환경이 나를 잠깐 화나게 할 순 있어. 라이터 부싯돌처럼 아주 잠깐. 그러나 그 불씨를 키우고 활활 타오르도록 땔감을 대 주는 건 바로 자기 자신이야. 이 질문을 한 누군가도 일부러 다른 사람에게 나쁜 짓을 하거나 화나게 하진 않을 거야. 이미 난 화 때문에 남에게 피해를 줄까봐 조심하는 사람이니까~ 다른 사람들도 그래.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는 일부러 다른 사람의 화를 돋우는 행동을 하진 않겠지. 단지 전혀 의도하지 않은 자신의 어떤 말투나 행동이 상대방의 기준과 달라 그 사람의 화를 돋게 했을 뿐이야. 거꾸로 상대방의 말투나 태도 때문에 내가 화가 날 때도 있고… 화를 내면 다른 사람에게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 그전에 자기 자신에게 더욱 치명적이지. 다른 사람이 내 화로 인해서 데일 정도면 나는 어떻게 되겠어. 그러니 화는 가급적 내지 말아야지. 그런데 그게 맘대로 안 돼. 그래서 이미 화가 났어. 그럴 때 어떡하느냐~ 잘 모를 땐 주변에 훌륭한 스승들은 어떻게 이겨냈는지 살펴보면 돼. 틱낫한이란 높은 스님이 월남전을 일으킨 미국사람에게 항의하러 미국에 가셔서 미국 정치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따지셨대. 전쟁은 미국 땅이 아니라 베트남에서 일어났지만 그 전쟁을 일으킨 원인을 당신들이 제공했으니 내가 미국 땅까지 오게 됐다. 당신들이 일으킨 전쟁은 잘못됐다. 수많은 생명들이 그 전쟁으로 죽어나가고 있으니 당장 멈추어 달라. 그런데 그 자리에 있던 무리들에게서 냉소와 무시를 당했어. 그러니 얼마나 화가 치밀었겠어. 애써 참고 그 자리를 떠나서 한적한 곳을 찾아 그곳에 있는 큰 나무에 대고 길고 깊은 숨을 토해내셨다고 해. 후~푸~ 후~푸~ 나무는 사람과 달라 맞받아치지 않고 다 받아주었겠지. 그렇게 한참을 토하고 나니까 좀 진정이 되더래. 그래서 다시 차분히 미국사람들을 설득하려고 그 자리에 나타났다고 해. 나도 그런 경우가 있었는데, 그땐 나무가 아니고 옥상이었지^^ 올라가서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한참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고 났더니 그만 피식 웃음이 나지 뭐야~^^ 그걸 사람한테 질렀어봐. 아마 맞아 죽었을 거야~ㅋㅋ 그럼 다음 질문을 열어볼까?
-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내가 자기를 좋아하는 줄 알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ㅋㅋㅋㅋㅋ ㅎㅎㅎㅎㅎ
웃을 일이 아니구나. 고민이 되겠다. 그래 그럴 수 있어. 너는 그 친구가 싫은데 그 친구는 네가 자기를 좋아하는 줄 알고, 그래서 너를 좋아하는 표를 낸다는 말이지? 그래. 그거 그 친구한텐 안 된 일이지만, 네가 네 마음을 솔직하게 말해줘야 할 것 같구나. 그냥 놔두면 그 친구의 생각을 인정하는 꼴이 되어 더 큰 착각으로 발전할 수도 있을 터이니…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조석으로 바뀌는 법이니 나중엔 어찌 될지 몰라도 지금은 내가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자신에 대해서나 상대방에 대해서나 최선이 아닐까 해. 그러다 좋아지면 좋아한다고 말하고…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인가, 나보다 한 학년 아래 여자아이를 무척 좋아했더랬지. 이런 얘기하니까 모두 눈이 반짝반짝 해지는구나~^^ 어린 나이에 용기가 없어서 오래도록 그냥 속으로만 짝사랑하고 있었는데, 글쎄 그 여자애가 다른 남자애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 버렸지 뭐야. 하늘이 노랗더라고~ 상대 녀석은 나보다 키도 큰데다가 잘 생기기까지 했으니 도저히 내가 어찌 해 볼 도리가 없겠더라고. 그런데…내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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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했지. 깨끗이! 뻔히 안 될 걸 아는데 미련두면 뭐 하겠어. 집에 가서 이불 뒤집어쓰고 엉엉 울었지. 반나절쯤 울고 나니까 괜찮아 지더라고~ 이게 되는 일인지 안 되는 일인지 그것만 분별을 잘해도 인생 그렇게 꼬이진 않아요.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미련을 못 버리고 매달리니까 힘들고 괴로운 거라~ 되는 것만 해도 세상엔 할 일이 정말 많아요. 오늘은 여기까지.
누가 이 시간을 정리해 올린다고 했는데, 내가 아는 그 친구, 그닥 기억력이 신통치 못해서 들은 얘기 안들은 얘기 잘 구별을 못할 거야. 괜찮아. 나도 내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 못할 때가 있어. 그러니 정리한 내용이 같이 들었던 얘기가 아니더라도 그냥 좀 봐줘요. 지금 들었던 얘기가 아니라면 예전 언젠가 들었던 얘기일 수도 있을 테니~^^
글 성일
***이 시리즈는 전남 순천 사랑어린학교장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합니다.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970/550/imgdb/original/2021/0714/20210714503491.jpg)
사진 픽사베이
![순천사랑어린학교공동체에서 마음공부를 이끄는 아무개 이현주 목사(왼쪽에서 세번째)가 마음공부시간에 대화하고 있다. 사진 순천사랑어린학교 제공 순천사랑어린학교공동체에서 마음공부를 이끄는 아무개 이현주 목사(왼쪽에서 세번째)가 마음공부시간에 대화하고 있다. 사진 순천사랑어린학교 제공](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70/389/imgdb/original/2021/0714/20210714503490.jpg)
순천사랑어린학교공동체에서 마음공부를 이끄는 아무개 이현주 목사(왼쪽에서 세번째)가 마음공부시간에 대화하고 있다. 사진 순천사랑어린학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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