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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시골에서 도시적 문화생활에 벗어날때 느껴지는 맛

등록 2021-07-18 13:34수정 2021-07-18 13:35

며 깨달으며

나의 문화생활 김반장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여기 시골에서 뭐 하십니까? 여긴 뭐 아무 것도 없고 이 답답한 곳에서 문화생활도 할 수 없고 그렇지 않습니까?’ 예전에 마주쳤던 옆동네 이주민 아저씨는 나를 보고 대뜸 티비에서 봤다며 여기에 무슨 일로 오셨냐면서 말을 걸었습니다.

자기는 이곳에 아무 것도 없어서 답답하다고, 극장도 없고 애들이랑 같이 가볼 놀이 공원도 없고 외식할만한 식당도 없고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 그렇게 도시에서 누리던 문화생활에 대한 향수를 가지셨는지 나름의 애로사항을 말하셨는데.

그 얘기를 듣는 나는 속으로 ‘그래서 나는 좋은데… 극장이 없어서 좋고, 놀이 공원 같은 게 없어서 좋고, 천혜의 바닷가가 있어서 좋고, 파도소리에 갈매기 우는 소리 좋고, 사람들이 북적대지 않아 좋고, 밤에는 어두워서 좋고(사실 더 어두웠으면 좋겠다), 푸르른 논이 보여서 좋고, 논두렁에 두루미와 청둥오리 있어서 좋고…’

가만 생각해보면, 나와 각시는 서울에 있었을 때도 극장에 가거나, 콘서트를 가거나 클럽에 가는 것을 크게 문화생활이라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문화계에서 일하는 직업을 가져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문화가 갖는 원론적 의미와는 거리감 있는 자본주의 시대의-‘새로운 문화상품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같은-소비생활을 우리는 ‘문화적’이다 라고 보기는 어려웠으니까요.

오히려 자연이 푸르르고 사람 손이 덜 간 곳을 찾아갈 때, 그곳에서 훨씬 큰 문화적 감흥을 느끼곤 해서 ‘문화생활’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허구성과 비주체성, 소비를 부추기고 허영심을 장려하는 듯한 그 어감이 대체로 불편하기까지 했습니다. 저 또한 30대 중후반까지 주말이면 홍대클럽에서 연주를 했고 연주회를 마치고 밤늦게까지 춤추고 놀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 중에 한명이었습니다만, 어느 날부터 그 생활패턴이 변화하기 시작하면서 문화생활이라는 의미를 진지하게 되새겨보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 생활을 이후에도 계속 이어갔다면 아마도 공황장애로 고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당시 변화의 과정 안에서 정신적으로 방황도 많이 했고 몸 고생도 했지만 긴 시간 그 생활 속에 지체하지 않고 삶에 변화가 생겨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조상님의 은공이라고 할 밖에요.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누군가 나에게 시골생활의 가장 좋은 점이 무엇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무엇일까 하면서 생각 난 것은, 핸드폰에 문자가 잘 오지 않는다. 전화는 거의 오지 않는다. 익숙한 인간관계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이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울에서 밴드생활을 할 때는 문자와 전화가 북새통 울리듯이 울렸는데, 그때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일정 마치고 다음 일정을 가고, 이 방송 마치면 저 방송, 이 무대 마치면 다음 무대준비와 밴드리허설… 그리고 자주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어서 나는 내가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다가 시골로 이주하여 충분히 혼자 있는 시간 속에 있어보니, 나는 사람을 자주 많이 만나는 것을 그다지 즐겨하는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혼자 있는 시간을 이렇게 좋아하고 또 혼자서 할 게 이렇게 많은지 이전에는 잘 알지 못했던 겁니다. 그때는 그렇게 어색하게 느껴지던 시간들이 이제는 이렇게 고요하고 편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사람 만나는 게 싫어진 것은 아닙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아지니 누굴 만나면 반가와서 좋고, 혼자면 혼자서 집중 할 수 있어 좋고, 좋아진 게 더 많아진 거죠. 그래서 비로소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나서야 진정 행복할 수 있다고 단언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시골로 이주한 이후로는 이전 서울에서 알던 인간관계의 사람을 초대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괜히 만나서 옛날이야기, 왕년 이야기하기도 싫고, 때마다 할 것이 많은 시골생활과, 맞춰가야 할 것 투성이인 초보 부부생활의 일상에 적응하는 것도 벅찼기 때문에, 시간을 들여서 누군가 만나 할 일없이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원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크게 외롭지 않아서였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돌아보면, 주변에 사람들로 일정으로 바글거릴 때, 그때가 저는 훨씬 외로웠다고 느낍니다.

이 미팅과 저 미팅이라는 이름으로 이 사람 만나고 저 사람 만나고 할 때, 어디론가 도망가기 위해 분주하게 일을 만들고 있다는 자각이 들 때도 많았습니다만, 그 드는 자각에 손을 들어주기에는 너무나 할 일이 많았고 책임져야 할 일정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거리를 두고 몇 년 살아가다보니, 정말 나는 나를 잘 몰랐구나 싶어지는 것들이 많이 드러나더군요. 이 관계 저 관계를 다 좋게 해보려고 욕심으로 발버둥 치던 때를 돌아보게 되고, 음악을 통해 세상에 빛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벌인 실수들을 돌아보게 되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 판단 저 판단하고 다니며 번뇌를 몰고 망상을 피우던 순간들을 돌아보게 되고, 내가 평온하지 못한데 세상에 대고 평안하라고 하는 게 얼마나 얼치기 같은 소리인지 돌아볼 줄 알게 되었습니다.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그렇게 된 이유는, 문자와 전화가 잘 오지 않는 환경. (생각만 해도 쾌적하지 않습니까?!) sns와 이메일을 하되, 급한 일이 없으니 내가 하고 싶을 때하고 내가 우선순위로 둔 할 일을 마치고 할 수 있는 여유.

무엇보다 때때로 찾아오는 무기력함과 외로움을 피하기 위해서 누군가에게 연락하고 어디 시내로 약속 잡아 도망갈 수가 없어졌기 때문에, 있는 그 자리에서 그 감정과 느낌을 그대로 느껴보고 외부요인의 방해 없이 충분히 허우적대고 사유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주어진 덕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급기야, 나중에는 이게 피해 다녀야 할 만큼 나쁜 게 아니란 것을 알게 되고 점점 그 상태를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게 된 상황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관점과 생활방식의 차이로 생기는 각시와의 잦은 갈등 속에서도 나름의 평정을 유지 할 수 있는 힘이 이전보다는 좀 있어진 거 같기도 합니다.

저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익숙한 환경, 그리고 인간관계들을 통해 자기를 발견하고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거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얼마나 절망하며, 실망하고 비관하게 되는지요. 요즘말로 집착이 쩌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는 진정 자기를 알아가기도 힘들고 자유롭기는커녕 행복하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문화라는 말을 표면적으로 보자면 특정 지역과 집단의 사람들이 함께 살면서 공유하고 있는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 그것을 토대로 만들어진 무형 유형의 것들을 지칭하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그렇기에 우리가 속한 곳의 문화를 제대로 볼 수 있으려면 그 ‘문화’로부터 그 집단으로부터 벗어나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느끼는 ‘문화생활’과 그 ‘유익함’이란 사람들이 말하는 ‘문화생활’과 ‘관계맺음의 방식’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벗어났을 때, 비로소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동떨어짐의 행복을 알게 해준 것이 시골생활의 최고의 좋은 점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고, 이 행복을 아는 사람이라면 ‘문화시설’이 없는 시골일수록 최고의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글 김반장/순천사랑어린학교공동체원

***이 시리즈는 전남 순천 사랑어린학교장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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