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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나무에 향기가 감도는 이유는…시인 롱펠로가 답했다

등록 2022-08-29 15:00수정 2022-08-29 15:35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존 앨든의 후손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는 1807년 2월27일 메인의 포틀랜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여섯살 무렵부터 매우 학구적이고 라틴어를 능숙하게 구사함으로써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열다섯살 때, 그는 아버지가 이사로 있던 새로 생긴 보든대학에 입학해 그곳에서 너새니얼 호손을 만나 그와 평생을 친구로 지내게 되었다.

롱펠로는 1829년 유럽 여행에서 돌아와 1835년까지 보든대학에서 유럽의 현대어를 가르쳤다. 1835년 그는 언어를 연마하기 위해 다시 유럽으로 갔다가 첫번째 아내 메리 포터가 유산으로 고통을 받다가 사망하는 불운을 당했다. 이로써 롱펠로의 첫번째 아내는 4년간의 불행한 결혼 생활 끝에 스물두살의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

롱펠로는 유럽 여행에서 보스턴의 재력가의 딸인 젊은 여인 프랜시스 애플턴과 결혼을 하고,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결혼 선물로 받은, 케임브리지의 브래틀가에 있는 크레이기 하우스에 정착했다. 1861년에 롱펠로는 또 한번의 불운을 겪게 되는데, 집에 화재가 나서 부인이 불에 타 죽고, 그는 부인을 구하려다 심한 화상을 입게 되었다. 이로써 롱펠로의 두번째 아내는 14년간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끝에 마흔네살의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

롱펠로는 아내를 잃음으로 인해 얻은, 견딜 수 없는 비탄과 슬픔을 달래기 위해, 단테의 <신곡>을 번역하는 데 전념했다. 그는 단테의 <신곡>을 번역해 미국인들에게 최초로 알린 사람이 되었다. 이런 절망적 상황에서도 롱펠로의 시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임종을 앞둔 롱펠로에게 한 기자가 물었다. “숱한 역경과 고난을 겪으면서도 당신의 작품에는 진한 인생의 향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롱펠로는 마당의 사과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나무가 나의 스승이었습니다. 저 나무는 매우 늙었습니다. 그러나 해마다 단맛을 내는 사과가 주렁주렁 열립니다. 그것은 늙은 나뭇가지에서 새순(筍)이 돋기 때문입니다.”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사진 위키피디아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사진 위키피디아

롱펠로에게 힘을 준 것은 긍정적인 마인드였습니다. 환경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인생은 두가지로 나뉘게 됩니다. 나이가 들어가는 자신을 고목(古木)으로 생각하는 사람과 ‘고목의 새순’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인생은 완전히 다릅니다.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생각이 바로 인생의 새순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에 따라 새로운 감정이 생깁니다. 우울한 생각을 하면 우울한 감정이 생깁니다. 감사의 생각을 품으면 감사할 일들이 계속 생깁니다. 표정도 밝아지고 행복감도 높아집니다.

글 문병하 목사/양주 덕정감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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