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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잡초 보기를 너그럽게

등록 2017-05-19 10:13

*이글은 지난번 길희성교수의 정원가꾸기 글을 보고, 캐나다에 사는 교포가 길 교수에게 보내온 글이다.

길 교수님께,좋은 글 고맙게,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저는 40 년 이상 영어권 캐나다에서 살고 있는, 이제는 오랜 직장 생활에서 은퇴하여 딸네, 아들네의 어린것들의 재롱에 푹 빠진 할머니랍니다.

"... 정말 마음이 내키기 않지만 약을 뿌리는 잔혹한 방식인데,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채택하기로 결심했다."라는 부분을 읽고서, 외람되지만 이메일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잔디밭 곱게 가꾸기에 일생을 바칠 것 같이 보이는 이곳 사람들도 잔디에 약 뿌리는 게 사람이나 동물에 극히 해롭다는 것이 오래 전에 알려진 후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끈질긴 노력 덕분에 정부에서 법으로 약 뿌리는 것을 금하고 약을 팔지도 못하게 하여, 잡초 보기를 너그러이 하고 있습니다.

약 뿌리기를 금지하는 법은 개인 집이나 공원 등의 공공장소에 다 적용되는 것이지요. 모든 것이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잔디에 물 주는 것도 금하는 지역이 있는데, 제가 사는 동네에서는 물 주기를 금하든 않든 잔디에 물 주는 집을 본 지가 30 년은 넘은 것 같습니다. 날이 가물어 잔디가 거의 죽어도 물을주지 않았더니 그 다음 봄에 잔디가 오히려 더 튼튼히 자라곤 하더군요. 호수가 많아 물이 흔한 캐나다에서 잔디에 물을 주지 말라는 것은 정수 과정에서 전기를 많이 쓰게 되니 물을 아껴서 결국 에너지를 아끼라는 것이지요.

토론토에서는(아마 다른 지역에서도) 자기 마당의 나무도 까다로운 시 정부 규정 때문에 마음대로 자르지 못할 정도로 나무를 많이 심고 보호하게 하는 등,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태도가 퍼져 있어, 자연을 좋아하는 저는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는 저의 집을 포함하여 낡은 집(백 년이 가깝거나 넘은 집들)이 있어 너무 낡은 집은 허물고 새로 짓는 경우가 꽤 있는데, 제가 산보하며 늘 보는 재미있는 모양의 집이 있답니다.

낡아 허문 집보다 더 큰 새 집을 지을 때 법 때문에(아니면 저처럼 법이 없어도 그랬을 것 같이) 마당의 큰 나무를 비켜 가며 집 디자인을 한 집이지요. 보통 직사각형의 형태를 가진 집이 많지만, 이 집은 나무가 있는 쪽의 벽이 반달 모양으로 휘어 들어가게 디자인을 할 수밖에 없어, 집 모양이 꼭 '한 입 베어 문 쌘드위치' 같답니다.

저도 해마다 '잡초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달려드는 척하지만, 민들레를 비롯해 이름도 모르는 잡초들이 마당을 점령해 저는 늘 'losing battle'에 처해 있지요. 마당이 친구들네 것보다는 넒은 편이어서 부추, 쑥, 참나물 등 '자기 마당에서는 키우기 싫지만 얻어 먹기는 대환영하는' 것들을 친구들한테 해마다 가져다 줍니다.

아, 말이 많았네요. 저는 은퇴한 후에도 백세가 가까운, 치매 증세가 있는 어머님을 돌봐 드리고, 사위와 며느리가 한국계 사람들이 아니고 보니 어린것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어린것들 돌봐 주기를 자청하는 등의 이유로 나날의 생활이 바빠 고국 소식 접하는 일에 게을렀는데, 2014년 세월호 소식을 듣고서는 말로 나타내기 어려운 충격을 받아 전보다 자주 인터넷으로 고국 소식을 읽습니다. 덕분에 한국 사회의 이모저모를 좀 더 깊이 알게 되고 좋은 글도 읽게 되어 기계치인 제가 인터넷에 대해 고마워하지 않을 수 없네요.

정원 가꾸기를 즐기시기 바라며, 외람된 글 이만 줄입니다. 늘 건강히, 평안히 지내시며 계속해서 좋은 글 써 주시길 빕니다.

임혜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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