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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반려동물

🌈 가족이 떠났는데, 경조휴가 1주일 낼 수 있을까요

등록 2022-02-11 09:59수정 2022-02-14 15:32

[애니멀피플] 펫로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⑥
동물 경조사 챙기는 국내 기업들
국내 네 가구 중 한 가구가 동물을 키우는 반려가족이지만 기업의 동물의 장례휴가, 수당지급 등은 큰 공감을 못 얻고 있다. 이런 가운데 비혼, 1인 가구 직원의 복지를 위해 ‘반려동물 양육’ 제도를 운영하는 회사가 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국내 네 가구 중 한 가구가 동물을 키우는 반려가족이지만 기업의 동물의 장례휴가, 수당지급 등은 큰 공감을 못 얻고 있다. 이런 가운데 비혼, 1인 가구 직원의 복지를 위해 ‘반려동물 양육’ 제도를 운영하는 회사가 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 펫로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① 인정받지 못하는 슬픔, 펫로스
② 반려인 50%가 펫로스…“왜 쓰레기봉투로 보내야 하나요?”
③ 강아지별이 슬픔으로 반짝일 때…‘온전한 사랑’을 배웠다
④ 하루 1100여 마리…반려동물 장례 어떻게 치르고 있나요
⑤ 서두르지 마세요…반려동물의 ‘마지막 소풍’ 배웅하는 법

‘강아지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면 휴가는 며칠을 써야 할까? 내 멘탈로는 하루 가지고는 안될 것 같은데….’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종종 직장인들의 ‘동물 휴가’ 고민이 등장한다. 시간을 마음대로 뺄 수 없는 직장인들이 반려동물을 떠나보내거나 갑작스러운 병 간호 때 휴가를 언제, 며칠이나 써야 할지 등을 묻는 것이다.

“3일에서 일주일은 쉬어야죠.”
“하루만에 장례를 치르고 출근했는데, 도저히 일이 안됐어요.”

경험자들의 댓글 사이에, 이런 글도 눈에 띈다.
“키우던 동물이 세상을 떠났다며 동료가 일주일이나 휴가를 쓰더라고요. 그 정도로 힘들어요?”

반려동물 장례식장 ‘펫포레스트’의 추모공간. 사진 스튜디오 어댑터 윤동길
반려동물 장례식장 ‘펫포레스트’의 추모공간. 사진 스튜디오 어댑터 윤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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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장례휴가 2.1일이 적당”

과연 회사는 직원이 반려동물을 잃었을 때 휴가를 보장해줘야 할까, 휴가를 준다면 며칠이 적당할까? 애니멀피플이 공공의창·한국엠바밍·웰다잉문화운동과 함께 기획하고 여론조사회사 조원씨앤아이가 진행한 ‘한국 반려동물 장례인식조사’(2021년 12월 21~23일, 성인 1000명 대상)에 따르면, 아직까지 동물의 장례 휴가나 조의금 전달은 큰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은 ‘반려동물 사망 때 직장이나 소속 단체는 휴가를 보장해야 할까’라는 설문에 높은 비율로 공감하지 못한다(76.3%)고 답했다. 휴가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23.7%)에 비해 3배나 높은 응답율을 보인 것이다. 조의금(위로금)을 주는 문화에 대해서도 응답자의 86.2%는 공감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이들이 적정한 휴가일로 꼽은 날은 평균 2.1일이었다. ‘직장이 유급 휴가를 보장한다면 며칠이 적당한가’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절반(56.9%)은 하루라고 답했다. 1일부터 15일까지 자유롭게 기입할 수 있도록 한 설문에서 1일은 56.9%, 2일이 17.5%, 3일이 15.2%, 4~7일이 7.0%, 8일 이상이 2.4%로 날짜가 늘어날수록 응답율은 낮아졌다. 전체 응답자의 70.3%가 반려동물을 키운 경험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유급휴가나 조의금 복지에 대한 공감도는 높지 않았던 것이다.

2017년 이탈리아에서는 한 보호자가 반려견의 병 간호를 위한 휴가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하자 법원에 소송을 내 승소했다. 게티이미지뱅크
2017년 이탈리아에서는 한 보호자가 반려견의 병 간호를 위한 휴가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하자 법원에 소송을 내 승소했다. 게티이미지뱅크

한편 지난 2017년 10월 이탈리아에서는 흥미로운 재판이 진행됐다. 로마 사피엔차 대학의 교직원이 반려견의 긴급 수술을 앞두고, 이틀간의 유급 휴가를 신청했지만 그의 상관은 휴가를 허락하지 않았다. 교직원은 이에 불복해 소송을 냈고, 결국 승소했다. 법원은 반려견의 수술과 병 간호가 “가족 또는 개인과 관련한 심각한 사유”에 해당한다며 급여 삭감 없이 휴가를 줘야 한다고 했다. 이 판결은 반려동물도 가족임을 제도적으로 인정한 첫 사례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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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엔 ‘시간’이 필요하다

반려인에게 ‘동물 휴가’는 왜 필요할까. 동물이든 사람이든 죽음의 순간은 언제가 될지 예측할 수 없다. 근무 중 황망한 소식을 들을 수도 있고, 긴 간병으로 잦은 입·통원이 필요할 수도 있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는 최소 3시간의 화장 시간뿐 아니라 교외 장례식장까지 이동하는 시간도 고려해야 한다. 보호자가 1인 가구이거나 자가용이 없는 상태라면 어려움은 더 커질 수 있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는 최소 3시간의 화장 시간뿐 아니라 장례식장들이 위치한 교외까지 이동시간까지 고려해야 한다. 반려동물 장례식장 추모공간. 21그램 제공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는 최소 3시간의 화장 시간뿐 아니라 장례식장들이 위치한 교외까지 이동시간까지 고려해야 한다. 반려동물 장례식장 추모공간. 21그램 제공

2020년 반려견 ‘복돌이’를 떠나보낸 직장인 변규홍씨는 업무 중 가족으로부터 사망 소식을 전달받았다. 직장에서 바로 출발해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7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장례를 마치고 유해(메모리얼 스톤)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밤 11시가 넘은 시각이 됐다.

급히 처리할 업무 탓에 다음날 바로 출근을 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마음을 추스르기 어려웠다. 변씨는 “할머니 장례 때 심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는데 주말을 제외하고도 이틀의 연차를 썼던 기억이 난다. 복돌이 때도 회사에 제도가 있었다면 바로 쉬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고양이 ‘미미’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기 전 간병생활을 했던 차윤주씨도 죽음 직전 5일간 일상 업무를 중단해야 했던 경험을 들려줬다. 차씨는 “당시 프리랜서로 매일 라디오 방송 패널로 출연하고 있었는데 양해를 구하고 일을 쉬었다. 허락은 받았지만 흔쾌한 느낌은 아니었다. 만약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었다면 회사 눈치와 사회적 시선 때문에 휴가를 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윤주씨는 반려묘 ‘미미’의 신장질환을 간병하며 죽기 마지막 5일 간은 휴가를 내고 임종을 지켰다. 차윤주씨 제공
차윤주씨는 반려묘 ‘미미’의 신장질환을 간병하며 죽기 마지막 5일 간은 휴가를 내고 임종을 지켰다. 차윤주씨 제공

반려인이 늘면서 반려동물의 양육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비혼 선언을 한 직원에게 반려동물 양육 수당과 장례 휴가를 지원한 화장품 브랜드 ‘러쉬코리아’가 대표적이다. 러쉬코리아는 2017년부터 반려동물이 있는 비혼 직원에게는 매달 양육 수당을 5만원씩 지급하고, 기르던 동물이 사망했을 때는 1일 유급휴가를 보장하고 있다.

러쉬코리아 윤예진 홍보 담당자는 “비혼 선언 제도를 만들 때 사장님이 펫로스로 힘들어하는 직원을 만나고 관련 사항을 추가한 걸로 안다.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장례식에라도 참석해야 하지 않냐고 했더니 당시 직원이 남은 연차가 없다고 답했다더라. 그때 동물도 가족인데 당연히 휴가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제도를 마련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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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친화 복지를 운영하는 이유

2030세대 미혼 임직원이 많은 게임업계도 회사가 반려동물 양육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게임회사 ‘펄어비스’는 2020년 8월부터 강아지 혹은 고양이를 키우는 미혼 또는 자녀가 없는 기혼 직원에게 반려동물 보험을 지원하고 있다. 동물의 통원·입원 의료비, 반려견 보상 책임을 보장하는 보험료를 매달 1인당 최대 3마리까지 지급한다.

반려동물 사료 전문 브랜드 ‘로얄캐닌’은 반려동물 동반출근과 한해 230만원 수준의 반려동물 양육비용을 지원한다. 사진은 보호자가 일하는 동안 반려동물이 쉴 수 있도록 사무실 안에 마련해 놓은 ‘펫룸’. 로얄캐닌 제공
반려동물 사료 전문 브랜드 ‘로얄캐닌’은 반려동물 동반출근과 한해 230만원 수준의 반려동물 양육비용을 지원한다. 사진은 보호자가 일하는 동안 반려동물이 쉴 수 있도록 사무실 안에 마련해 놓은 ‘펫룸’. 로얄캐닌 제공

업계 특성상 반려용품 업체들은 동물 경조사 지원에 적극적이다. 반려동물과의 동반출근을 허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치료비·장례비를 지원하거나 장례 유급휴가를 주고 있다. 반려용품 전문 쇼핑몰 ‘펫프렌즈’는 동물이 사망하면 20만원의 장례비를 지급하고 유급휴가 1일을 지원한다. 펫프렌즈는 동물의 장례뿐 아니라 생일 축하금, 입양 비용 등을 지원하고, 반려동물 유치원 등을 사내에 운영하는 직원 복지로 유명하다. 반려동물 헬스케어 스타트업 ‘핏펫’도 장례비 전액을 지원하고, 병원비 일부를 지원하는 제도를 운영 중이다.

국내외 기업들이 동물친화적인 업무환경을 제공하려 노력하는 이유는 단순히 반려인구가 늘어서는 아니다. 해외 여러 연구와 조사 결과, 직장의 반려동물 친화 정책이 직원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펫프렌즈
펫프렌즈

2016년 미국 밴필드(Banfield) 동물병원은 미국 내 다양한 기업의 직원과 인사 담당자를 설문해 ‘반려동물 친화 직장이 업무에 미치는 영향력’(Pet-Friendly Workplace ‘PAWrometer’)을 발표했다. 설문 결과를 보면, 대다수의 응답자들은 동물친화적인 업무환경이 사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직원 70%, 인사 담당자 77%), 직장에 대한 충성도를 높인다(직원 82%, 인사 담당자 91%)고 답했다.

또한 직원들은 이런 제도가 일과 삶의 균형에 긍정적 영향(85%)을 미쳤으며 스트레스 감소(85%)에도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펄어비스 관계자도 자사의 반려동물 복지가 “동물에 초점을 맞춘 제도라기 보다는 미혼 임직원들이 업무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차원의 사내복지”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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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복을 존중받는 기분”

2017년 러쉬코리아에서 최초로 비혼 선언을 한 김슬기씨는 반려묘 5마리의 집사다. 김씨는 일과를 마치고 귀가해 청소하고, 밥 하고, 고양이들 돌봄을 마치면 자정을 훌쩍 넘길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회사 복지는 너무 기혼자만 혜택을 주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비혼 선언 뒤 동물 수당과 유급 휴가 등의 복지를 보장받고 나서는 “결혼을 했든 아니든 조직 안에서 ‘나’라는 사람의 행복을 존중 받고 있구나” 느꼈다고 한다.

지난해 동물자유연대가 한 기업의 노동조합을 대상으로 진행한 노동자와 동물복지 강의 자료. 동물자유연대 제공
지난해 동물자유연대가 한 기업의 노동조합을 대상으로 진행한 노동자와 동물복지 강의 자료. 동물자유연대 제공

동물자유연대 한혁 전략사업국장은 “국내 많은 기업이 늘어나는 비혼 반려인구를 고려해 사내 동물 복지를 늘려가는 추세다. 노조에서 단체협약 사항으로 동물 관련 복지조항을 신설하는 시도를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동물 동반출근, 반려 수당, 경조 휴가, 사내 식당 케이지프리, 채식선택권 보장 등은 직원을 위한 복지뿐 아니라 동물보호 인식 개선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전했다. (끝)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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