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한 반려견 번식장에서 죽은 어미 개의 배를 가르거나 냉동고에 사체를 보관하는 등의 동물학대 정황이 드러났다. 경기도와 동물보호단체 20여 곳은 번식장에서 사육되던 1400여 마리 개들을 구조했다. 카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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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어미 개의 배를 가르거나 죽은 개들의 사체를
냉동고에 보관하는 등 동물학대 정황이 드러난 경기도 화성시의 번식장이 부모견들을 분양해 투자자를 모집하는 등 편법 영업을 벌여왔다는 증언이 나왔다.
동물단체들은 해당 번식장이 돈벌이를 위해 대규모 번식을 무리하게 해왔고 이 과정에서 불법 의료행위, 밀집 사육, 사체 유기 등이 일어났다고 보고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와 위액트, 라이프 등 동물단체는 지난달 31일 저녁 화성시 한 허가 번식장에 대한 구체적인
내부 제보를 접수하고 현장 조사에 나섰다. 단체들이 접수한 제보와 자료에는 번식장의 참혹한 동물학대와 방치, 비윤리적인 번식 행위와 더불어 번식장 운영자들이 벌여온 편법
영업에 대한 폭로가 포함됐다. 이곳은 ‘국내 1위 말티즈 켄넬(사육장)’로 불리는 곳으로 국내 펫숍에서 많이 거래되는 말티즈, 시츄, 포메라니안 등을 1420여마리 사육해왔다.
경기도 한 반려견 번식장에서 죽은 어미 개의 배를 가르거나 냉동고에 사체를 보관하는 등의 동물학대 정황이 드러났다. 경기도와 동물보호단체 20여 곳은 지난 1일부터 번식장에서 사육되던 1400여 마리 개들을 구조했다. 카라 제공
제보자가 동물단체에 제공한 자료를 보면, 이 번식장은 대표 ㄱ씨 가족이 운영하는 합법적인 동물생산·판매업 업체로 화성시에는 400여마리를 운영하는 곳으로 등록돼 있지만, 실제로는 평소 800~1000여 마리를 사육해왔다. 이들은 더 많은 개들을 키우기 위해 건물 안에 울타리를 쳐서 3.3㎡(1평)도 안되는 공간에 개 8~15마리를 몰아넣거나, 사육장을 3단으로 쌓아 올리는 등
관련 법령(동물보호법 시행규칙 제39조)에 어긋나는 사육을 해왔다.
동물단체들은 이렇게 대규모로 동물을 사육·번식한 배경에는 현행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한 영리사업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본다. 번식장 관계자들이 키우고 있는 모견(번식에 이용되는 어미 개)을 일정 금액을 받고 투자자에게 분양한 뒤, 이에 따르는 수익금을 배분하는 식의 사업을 벌여왔다는 것이다. 명목상으로는 분양이지만 실제 모견의 사육과 번식, 새끼 동물의 경매장 유통 등은 번식장이 맡은 것으로 보인다.
제보자는 “(투자자에게) 모견을 판매하고 직접 브리딩하게끔 도와주고, 새끼가 나오면 판매 수익금을 나눠 주는 방식이다. 투자금 1억원당 모견 20마리를 세팅해 주는 식”이라고 했다. 이렇게 받은 투자금이 10억~20억에 달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현장에서 발견된 번식장 매출 자료. ‘1400마리 공동구조단체’ 제공
현장을 찾았던 동물단체 활동가들도 제보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계약서와 손실표, 투자자 유치 정황 등이 담긴 자료를 확인했다.
함형선 위액트 대표는 “개를 사육하는 울타리마다 각각의 소유주 이름이 붙어 있었다. 실제로
현장에서 만난 번식장 대표가 투자자들의 손실을 막기 위해서라도 100~200마리는 키울 수 있도록 해달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번식장 대표는 한 사람이지만 실제 여러 명이 번식견을 소유한 ‘숍인숍’으로 운영된 것으로 보인다.
현장에서 발견된 번식장 매출 자료 등을 보면, 이 번식장은 모견 250마리와 자견 940여 마리를 투자자(브리더), 국내외 소비자, 펫숍 등에 판매해 연간 8억~17억여원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번식장의 냉동고에서는 개 사체 100여구가 신문지에 감싼 채로 발견됐다. 카라 제공
이러한 영업이 현행법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단체들은 대규모 번식, 판매를 제한하고 있지 않은 현행법의 미비가 조직적인 동물학대를 불렀다고 지적한다. 김현지 카라 정책실장은 “현행법은 동물 50마리당 관리인원 1인을 갖추도록 하고 있을 뿐, 한 번식장 당 사육 마릿수를 제한하지 않고 있다. 오직 수익만을 위해 동물을 번식할 수 있도록 한 기존 시스템이 결국 과도한 번식과 불법적 의료 행위, 열악한 사육 환경으로 동물을 내몰리게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일 동물단체들의 현장 조사 결과, 이 번식장은 지자체에 신고된 시설 이외 6곳의 불법 증축 건축물에서 개들을 사육 중이었는데 뜬장과 철장, 울타리가 빼곡하게 들어찬 밀집 사육이 이뤄지고 있었다. 개들은 피부병과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냉동고에서는 불법 제왕절개 수술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어미 개를 포함해 약 100여구의 사체가 신문지에 싸인 채로 발견됐다.
번식장에서 사체 처리를 지시한 카카오톡 갈무리. 제보자 제공
제보자 또한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끔찍한 불법 실태를 직접 목격했다. 병원비를 절감하기 위해 백신 및 주사, 투약 행위를 본인들(업주)이 하고 있으며 임신한 모견에게 제대로 급여가 이뤄지지 않아 저혈당 증세를 보이거나 죽으면 그 자리에서 배를 갈라 새끼만 빼내는 등 비인간적이고 악독한 불법 시술도 이뤄졌다”고 동물단체에 전했다.
현행법은 어미개의 출산 횟수를 제한(출산 간격 10개월)하고 있지만, 이 번식장에서는 1년에 2~3회까지 출산이 이뤄졌다고 한다. 애니멀피플은 번식장 실태를 추가로 확인하기 위해 제보자와 번식장 대표에게 접촉을 시도했지만 모두 연락이 닿지 않았다.
‘국내 1위 말티즈 켄넬’로 불리던 화성 번식장은 모견들을 투자자에게 분양해 수익을 배분하는 형태의 편법 영업을 벌여왔다. 제보자 제공
동물단체들도 이전 사건과 견줘 이 번식장의 실태가 충격적이라고 평가했다. 1400여마리를 구조한 것뿐만 아니라 허가 번식장이라는 이름 뒤에 벌어지는 편법 영업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김현지 정책실장은 “정부는 반려동물 영업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허가 영업장마저 편법이 난무하는 것이 확인됐다. 반려동물을 사고파는 구조적 문제, 큰 틀에서의 변화가 없다면 동물을 돈벌이로만 본 끔찍한 현장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달 30일 반려동물 영업장에서 발생하는 동물학대, 변칙 영업을 개선하기 위해 ‘반려동물 영업 관리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핵심 내용 중 하나가 ‘생산업 부모견 등록제 도입’을 통해 반려동물의 이력 체계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소유권이 포기된 개들은 경기도와 동물단체들이 나누어 보호 중이다. 경기도 반려동물문화센터 ‘경기반려마루 여주’와 ‘화성도우미견나눔센터’에서 687마리를 구조했고, 나머지 720여마리는 동물단체 코리안독스, 케이케이나인레스큐(KK9), 카라, 위액트, 유엄빠, 라이프 등 20개 단체에서 나눠 구조했다. 화성시는 해당
번식장 대표를 동물보호법, 수의사법 위반 혐의로 4일 고발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