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8월3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개 식용 종식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손등에 그린 기념 페인팅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개 식용 금지법을 ‘김건희법’이란 별칭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동물애호단체들입니다. 그리고 많은 언론들이 ‘김건희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이 ‘개 식용 금지 법안’을 당론으로 추진한다고 14일 밝힌 가운데,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지난 13일 페이스북에 이러한 글을 올렸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인 김건희 여사의 이름을 법안에 붙여 언급한 것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에 반박하는 글이었다.
그런데 개 식용 금지 법안은 언제부터 ‘김건희법’으로 불리게 됐을까. 박 의장에게 지목당한 동물단체들은 그의 말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단체들은 법에 김 여사의 이름을 별칭으로 붙이는 것에 대해 개 식용 종식을 위해 수 년간 목소리를 내온 시민, 비영리단체, 여야 의원들의 노력을 지우고, 정치적 공방으로 옮겨붙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날 동물권행동 카라 전진경 대표는 “동물단체들 내부에서는 개 식용 종식 법안을 ‘김건희법’으로 부른 적은 없다. 최근 김건희 여사가 개 식용 종식 법안 추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직접 참석해 뜻을 같이하긴 했지만, 여사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돕고 싶다’는 뜻을 계속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 식용 종식을 바라는 많은 시민들의 바람이 정치적 논쟁으로 퇴색될까 염려된다”고 덧붙였다.
‘김건희법’이란 별칭은 국회의원 연구모임인 ‘동물복지국회포럼’이 지난달 23일 여야 의원 44명이 참여한
‘개 식용 종식 촉구 결의안’을 발의(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 대표 발의)하고, 올해 안에 관련 입법을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뒤에 언급되기 시작했다.
당시 구성된 ‘개 식용 종식을 위한 초당적 의원 모임’의 공동대표를 맡은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이 ‘김건희법’이라고 언급한 것이 기사화되며 별칭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박 의장은 지난달 24일 페이스북에 “모처럼 여야가 협치의 모습을 보이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건희법’에 청신호가 켜지고 있다”고 적었다.
이에 ‘김건희법’ 표현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정치권에서 제기됐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13일 페이스북에 “법률에 대통령 부인의 이름을 붙이는 건 제가 과문한 탓인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대통령을 무슨 신적 존재로 떠받들며 천재적 아부를 하던 자들이 이제는 대통령 부인에게까지 천재적 아부를 한다”고 꼬집었다.
초당적 의원 모임을 주도했던 박홍근 의원은 “여야의 당론채택 등 초당적 입법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는 입장에서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김건희법 호칭은 초당적이지도 않고 입법 환경의 조성에도 장해가 될 게 분명하다”고 밝혔다.
‘개 식용 종식을 위한 초당적 의원모임’ 소속 여야 의원들이 8월24일 국회 소통관에서 모임 출범과 개 식용 종식 관련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있다. 이헌승 의원실 제공
대부분 동물단체들은 ‘김건희법’이라는 이름에만 관심이 쏠리다 국회에 발의된 법안들이 통과되지 못할까 걱정하고 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개 식용을 금지하는 법안은 여야를 막론하고 발의됐지만 통과가 무산됐기 때문이다. 민생당 이상돈 의원, 더불어민주당 표창원·한정애 의원이 각각 축산법, 동물보호법, 폐기물관리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해 ‘개 식용 금지 트로이카 법안’으로 불리며 기대감을 높였지만, 당시 발의안은 국회 임기가 종료되며 폐기됐다. 21대 국회 임기가 8개월여 남은 가운데 이같은 상황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동물단체 대표는 “별칭으로 부르느냐, 아니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론으로 정했다면 이후 상임위 의원들의 입장을 확인하는 것이다. 21대 국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니 좀 더 실효성 있는 논의가 이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른 동물단체 관계자는 “김건희법이든 윤석열법이든 통과만 된다면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도 상관없다”며 여야가 모두 개 식용 종식에 뜻을 모아 실제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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