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신소윤의 육아냥 다이어리
사냥 갔던 반려인이 돌아온 날
노동의 무한굴레가 시작되었다
사냥 갔던 반려인이 돌아온 날
노동의 무한굴레가 시작되었다
내 이름은 만세, 육아하는 고양이다.
반려인의 대필로 인간들의 칼럼 세계로 입문한 것이 2014년(<한겨레21>1035호~1126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마감 노동의 고됨에서 해방된 지 1년 여만에 다시 돌아왔다.
반려인이 부른 배를 끌어안고 집을 뛰쳐나갔다가 보름이 지나 돌아왔던 3년 전 여름, 나는 그날의 충격을 기억한다. 고양이들은 같은 영역에서 지내던 동료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지 않으면 사냥을 나갔다가 죽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소중한 친구가 없는 세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조금 허전하긴 했지만 삶이란 그런 것이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그런데 그가 유령처럼 다시 나타났다. 난생 처음 보는 사람 아기를 끌어안고.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우리의 육아 라이프가, 무한노동의 굴레가. 고양이라고 열외일 수 없었다. 나의 의지는 우주 끝으로 날려보내고, 철저히 아이의 본능에 기민하게 대응하며 지내는 생활을 한지 어언 4년. 나는 이제 제법, “만세야, 아이 좀 봐줄래?”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만히 아이를 들여다보고 있는 게 아니라 앞발로 톡톡 아는 척이라도 하는 ‘육아냥’으로 거듭났다.
나에게는 두 명의 반려인이 있다. 이 둘과 주로 육아를 나눠서 한다. 반려견 제리도 있다. 세상의 동물 뉴스를 보면 아이와 친한 개들이 수천만 마리는 되는 것 같던데, 제리는 제외다. 식탐이 많은 제리는 아이가 어릴 적에 간식을 몇 번 빼앗아 먹었다가 아이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다. 둘은 여전히 좋다가도 싫고, 싫다가도 좋은 애증의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그리하여 반려인들과 나의 아침은 똥싸개들을 맞이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장이 튼튼한 아이는 매일 아침 큰일을 보고, 반려견 제리도 비슷한 시간에 대장 활동에 매진한다. 반려인은 “엄마, 응가 다 했어”라고 소리치는 아이의 엉덩이를 닦아주고 돌아서자마자, 배변판 위에 남긴 제리의 흔적을 치워야 한다. 여기서 내가 육아냥인 이유는 반려인의 손 하나를 덜어줘 그가 완벽한 ‘똥치우개'가 되는 상황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양이는 무심한 듯 배려심이 넘친다.
한창 육아에 허덕이던 어느날 아이가 잠든 틈을 타 소파에 앉아 책을 보던 반려인이 혼자서 큭큭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는 엄마가 해방감을 느끼는 순간 자기 존재를 확인시킨다. 우는 아이를 달래러 부랴부랴 달려간 반려인이 남겨놓고 간 책을 살펴봤다. 미국에 사는 주부 앰버 더시크가 쓰고 그린 <아이가 태어난 뒤 모든 게 달라졌다>에는 사람의 형상을 한 내가 그려져 있었다. 화장실에 갈 때 문 닫고 볼일을 보는 건 꿈도 못 꾸고, 아이에게 머리카락(나의 경우 털)을 쥐어 뜯겨 늘 퀭한 얼굴로 지내야만 하는.
하지만 육아노동의 세계에 늘 피로와 수면 부족만 있으란 법은 없다. 마음 깊이 채워지는 기쁨과 환희의 순간이 있었다. 내 고양이 평생 볼 일 없을 줄 알았던 사람 아기의 모든 첫 순간들을 우리는 함께 공유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고 쓰고 있는 내 모습이라니. 나는 이렇게 육아냥이 되어버린 것이다.
만세·전업육아냥
※7살 고양이 ‘만세'의 사람 아기 육아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웃음과 눈물이 공존하는 육아의 세계에 뛰어든 만세에게 많은 응원을 보내주세요.
“아이를 보라”고 해서 가만히 보고만 있던 시절. 그때는 몰랐다. 지금처럼 어엿한 ‘육아냥’이 될 줄은.
육아 법칙 1번은 아이가 잘 때 일단 같이 자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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