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 적응 기간, 사람도 고양이도 고단해 쓰러져 잠들었다.
내 이름은 만세, 육아하는 고양이다.
긴 겨울 끝에 새 학기를 시작하는 달. 새 교실, 새 선생님, 새 친구들…. 온갖 새로움으로 생동하는 3월은, 그러나 육아냥에게는 잔인한 달이다. 사람 아이는 고양이처럼 몇 일만에 폴짝 제 몸을 가누고, 몇 달만에 제 앞길을 헤쳐나가지 못한다. 복잡다단한 사람 세계에 들어와서 나는,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동네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아이고, 3월이 언제 이렇게 훌쩍 와버렸나 모르겠네.” 아이의 아빠가 달력을 넘기며 말했다.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졸업을 하고, 새 기관으로 옮기게 된 2월말부터 3월초 달력에는 아이가 쉬는 날들이 초봄 들꽃처럼 여기저기서 고개를 삐죽 내밀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며 맞춰놓은 일상의 균형에 1이라도 균열이 생기면 여파는 도미노처럼 이어진다. 게다가 고난의 파도는 늘 여러 겹 한꺼번에 몰려오게 마련이다. 어린이집 쉬는 날에 이어 고열을 동반한 감기가 찾아왔고, 평일 육아를 전담하다시피했던 베이비시터 할머니가 예정된 휴가를 떠나서 자리를 비우셨다. 뒤이어 3월 첫 주, 아이가 새로 입학한 어린이집에서는 3주간 적응기간을 가진다고 했다. 첫 주 1시간, 둘째 주 2시간, 셋째 주 3시간만 등원하고 집으로 돌아와야했다. 정해진 방침에 따라 아이가 서서히 낯선 환경에 적응해가면 좋으련만, 그 시간 누가 아이를 돌봐야할지 또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다른 반 어느 일하는 엄마는 어렵게 들어간 어린이집 입학을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다.
아이의 엄마·아빠는 연이어 쓴 휴가에 담번엔 누가 회사를 안 가고 아이를 돌보느냐를 두고 아이가 잠들고 난 뒤 조용히 이야기를 나눴다. 이때, 누가 자기 일이 더 중요하다고 우겨서는 안된다. 양보와 조율 끝에도 누구 하나 휴가를 내기 어려운 날에는 아이의 외삼촌과 베이비시터 할머니가 개인적인 일을 접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손을 보탰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는 날에는 지방에 계신 아이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부탁을 해야 하나 하며, 반려인들은 전화기를 만지작거렸다. 도저히 사정이 마땅치 않을 땐, 동네 친구 엄마는 물론이고 베이비시터 할머니의 딸까지 당신 엄마 대신 자기가 시간을 헐어 아이를 보살피겠다고 손을 들었다.
인간의 말을 하지 못해 답답했다. 매일 집에 있는 내가 아이를 돌보겠다고 이들에게 말할 수 있음 좋으련만. 그들의 사정대로 돌아가는 상황만 지켜보고 있어야 했다. 다행히 아이는 보육하는 사람이 들쭉날쭉한 나날을 감정의 기복 없이 잘 보냈다. 아이의 부모가 걱정했던 것보다 새로운 기관에 적응도 잘 해나갔고, 밤에 돌아온 엄마·아빠에게 하루 일과를 조잘조잘 이야기했다.
아이는 늘 그랬듯 부모의 걱정과 불안보다 한 걸음 앞서 준비돼 있는 듯 했다. 그러니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가 낯선 교실에서 낯선 친구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이가 안도할 수 있게 폭신한 내 등 한 켠을 내어주는 것. 그리고 고양이의 마음으로, 변화무쌍한 이 계절이 지나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되겠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겠지 하는 마음으로.
만세·전업육아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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