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감기에 걸릴까 안절부절못하는 나는 열이 없는지 아이의 머리를 짚어보곤 한다.
내게 세상에서 가장 싫은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첫번째가 목욕이요, 두번째가 병원이다. 가끔 종을 뛰어넘어 목욕을 사랑하는 고양이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는데, 나는 평범한 고양이이므로 목욕이 너무 싫다. 촘촘한 털 사이로 축축하게 물이 스며드는 그 느낌이 즐겁지가 못하다. 내 의지로 그루밍하며 충분히 몸을 다듬고 지내는데도, 나의 청결을 의심하여 결국 씻기고야 마는 반려인에게 드는 섭섭한 마음은 또 어떻고.
그 섭섭함을 말로 다 하기 어려워 평소 온화하고 다정한 내가 사나운 고양이로 변하는 시간이 바로 연중 4번 돌아오는 목욕 시간인데, 여기에 1년에 1차례 정도 포악함을 보태는 날이 있다. 바로 병원 가는 날. 주체성 강한 고양이는 자기 의지가 아닌 누군가에 의해 입을 벌리고, 털 사이를 헤집고, 눈꺼풀을 뒤집고, 꼬리를 들어 올려 ‘똥꼬’를 확인하는 일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병원에 가기 싫어서 늘 건강을 유지하려 애쓰지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묘생, 복병이 찾아올 때가 있다. 올해의 복병은 ‘턱드름’이었다. 턱 아래 사람 블랙헤드 같은 까만 여드름이 점점이 박혔다. 어떤 건 불룩하게 솟아오르기도 했다. 기름진 사료가 밥을 먹을 때마다 닿으면서 피부에 자극을 준 모양이었다. 이런저런 민간요법을 써봤지만 효과를 보지 못하고 결국 병원을 찾았다. 수의사와 간호사가 내 사지를 붙들고, 턱을 살피고 닦고, 턱 아래 털까지 싹 밀어 나를 얼마나 멍청한 몰골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다. 진료를 마친 의료진이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보호자님, 만세 평소에는 착하다는 게 사실인가요?”
환절기 골골대는 반려인들을 대신해 저녁에 아이를 돌보기 위해 충전 중이다.
내가 병원을 극도로 싫어하는 탓인지, ‘육아냥’이 되어서도 내가 돌보는 아이가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생기면 안절부절못한다. 자는 아이 열을 재보고, 코는 막히지 않았는지, 숨소리는 괜찮은지 얼굴에 귀를 바짝 대보느라 나는 늘 밤잠을 설치곤 한다. 평소엔 행여나 감기에 걸릴까, 아이가 발로 걷어찬 이불을 고이 덮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육아의 세계에서 콧물, 기침, 열이란 단어는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아이가 아프면, 엄마가 아프고, 아빠도 아프다. 끙끙 앓으며 불편해하는 아기를 보며 부모들은 “아이고, 내가 대신 아프면 좋겠네”라고 말하곤 하는데, 감기는 찰떡같이 그 말을 알아듣고 엄마, 아빠에게 차례로 옮겨가 붙곤 한다. 그래서 아이가 자라 면역이 강화되기 전까지 이맘때 환절기에는 늘, 감기가 한바탕 휩쓸고 가야 겨우 끝나는 전쟁이 이어졌다.
셋이 돌아가며 아플 때는 그나마 다행이다. 부모가 동시에 아플 때는 답이 없다. 감기로 너덜거리는 부모는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인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동네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말이 이럴 때를 대비해서 나왔나 보다. 하지만 아래·위·옆 콘크리트 벽을 사이에 둔 이웃은 가깝지만 멀고… 그러니 어쩌겠는가, 우리 고양이들이 나서야지. 사람들은 우리가 낮잠을 너무 많이 잔다고 수군대는데, 이게 다 골골대는 반려인들을 대신해 아이와 놀아줄 체력을 비축하기 위함이라는 깊은 뜻을 아시는지.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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