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을 하고 돌아온 아이는 내 등에 가만히 몸을 대고 노곤한 마음을 다독이는 듯했다.
아이를 키우면 자기만의 ‘육아 필수템’이 있다. 나의 반려인은 종일 아이를 돌보는 날이면 무언가를 마시는 일로 시작해 마시는 일로 하루를 마감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정신 차려야지”라고 말하며 뜨거운 커피를 내려 마시고, 밤이 되어 아이가 잠들고 나면 “혼이 쏙 빠질 것 같아”라고 말하며 차가운 맥주를 마셨다. 카페인과 알코올은 끝없는 육아노동의 에너지원인 듯했다.
그는 “육아는 ‘장비빨’”이라는 말도 신봉했다. 한창 아이에게 손이 많이 가던 돌 이전에 택배 기사는 매일이 크리스마스인 양 집 앞에 상자를 쌓아두고 갔다. 그는 2010년대 육아 아이템을 수집해 박물관이라도 세울 것처럼 물건을 모았다. 잠시라도 두 손이 자유롭고, 화장실이라도 맘 편히 갈 수 있다는 후기가 있다면 내일 당장 세상의 끝이 올지라도 ‘구매하기’ 버튼을 눌렀다. 그 시절 우리 집에는 음악이 나오는 모빌, 발로 슬쩍 밀면 엄마가 안고 흔드는 듯한 속도와 진동으로 움직이는 바운서, 아이가 엄마 뱃속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는 포대기 따위가 집 안에 차곡차곡 쌓였다.
모든 물건은 “육아 신세계를 열어준다”는 평을 받았지만, 육아에서 신세계란 있을 수 없다. 온갖 육아 장비를 동원한다고 해도 아이를 돌보는 일이란 언제나 끝이 없고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순간의 연속이다. 주어진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철저히 누군가에게 종속된 일상을 보낸다는 것은 아이가 건강하고 아름답게 자라는 것에서 오는 보람과 별개로 외롭고 고단하다.
반려인이 ‘신박’한 육아 아이템에 중독이 되어갈 무렵, 보다 못한 고양이들이 나서곤 한다. 그러나 우리 고양이들은 커피와 맥주를 마시지 못하고 도구도 사용하지 못한다. 대신 우리들에게 의외의 육아 필수템은 따로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인내.
자기중심적인 고양이라지만 아이를 돌보는 ‘육아냥’들은 기다림에 능숙해진다. 아이가 사이렌을 켠 듯 울어댈 때 나는 아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침대 발치에서 가만히 기다렸다가 울음을 그치면 곁에 가서 슬쩍 얼굴을 비비곤 했다. 아이가 이 집에 오기 전, 나는 내가 사람에게 가고 싶을 때만 곁을 줬지만 아이가 나에게 와서 무지막지하게 몸을 치대는 것도 참을 수 있는 고양이가 됐다.
아이가 처음 덥석 내 등을 덮쳤을 때의 느낌을 잊을 수 없다. 언제나처럼 거실에 배를 깔고 앉아 멍때리고 있는데, 외출을 하고 돌아온 아이가 후다닥 달려와서는 내 등을 꽉 끌어안았다. 평소 같으면 귀찮고 무거워서 있는 대로 힘을 줘서 일어나 도망갔을 테지만 그날은 왠지 기다려줘야만 할 것 같았다. 장난처럼 내 등을 끌어안았던 아이는 제 얼굴을 내 등에 가만히 대더니 한참 그렇게 있었다. 그날 아이는 어디로 다녀온 걸까. 외출해 다녀온 낯선 공간이 불편하고 싫었던 걸까. 어른들 따라다니느라 힘들었던 건 아니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기다려주는 동안 아이는 안정된 듯 편안한 얼굴로 내 등을 떠나 장난감을 펼쳐놓고 놀기 시작했다.
이후로도 아이는 어떤 순간마다 내 등을 꼭 끌어안고 시간을 보낼 때가 있었다. 그 순간들을 가만히 기다려주다 보니 아이는 무릎으로 기다가 어느덧 걷게 됐고, 옹알이만 하다 제법 능숙하게 말을 하는 아이가 됐다. 그 모든 과정에 내 작은 기다림의 순간들도 조금은 보탬이 되지 않았을까.
만세·전업육아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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