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나고 달라진 것은 채근하는 아이 때문에 화장실 문을 열고 볼일을 본다는 것이다. 아이가 잠든 밤에도 육아냥은 습관적으로 문 열고 일을 본다.
내 이름은 만세, 육아하는 고양이다.
아이 나이가 0~4살일 때, 인생 희로애락을 압축적으로 맛보는 육아 집중기를 어떻게 털 한 오라기 흔들림 없이 보내왔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고양이 시간’에 대해 말한다.
고양이 시간이 무엇이냐면, 주변의 소란에 상관없이 나만의 공기를 품고,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고양이의 일상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자기 몸을 둘러싼 반경 10㎝ 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라도 들리지 않는 척, 보이지 않는 척 오로지 스스로에게만 집중하는 시간. 고양이가 앞발을 가지런히 모아서 가슴팍 아래 묻고 식빵을 굽고 있다면 바로 그 시간이다.(식빵 굽기: 고양이가 마음이 편할 때 주로 취하는 자세로, 네 발을 배 아래 깔고 몸을 편안하게 웅크리고 있다. 위에서 보면 마치 잘 구운 한 덩이 식빵처럼 보인다.)
그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서는 약간의 수련이 필요하다. 어떤 난리법석이 벌어져도 두 눈과 두 귀를 닫고 육아의 세계와 잠시 거리를 두는 것. 아이가 장난감통을 뒤집어엎어 온 집안이 알록달록한 색으로 변해도 다시 잘 정돈해두고 싶은 마음을 눌러야 한다. 서랍장을 열어 온갖 옷을 꺼내 살풀이춤을 추더라도 두 눈을 질끈 감아야 한다. 아이 친구들이 집에 놀러와 돌고래 소리를 내며 놀 때에도 늘 쫑긋 세우던 두 귀를 살포시 접어야 한다.
그렇다고 노는 아이를 두고 문을 닫은 채 ‘방콕’ 하란 말은 아니다. 고양이인 나는 아이와 놀아주는 데 한계가 있지만 노는 걸 잘 지켜봐 줄 수는 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아이를 바라보며 아이가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고작 고양이일 뿐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곁에 있는 걸 확인하고 조잘거리며 노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 어쩐지 아이가 안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육아는 힘들어. 아이가 잘 때 함께 뻗게 되는 고단한 육아냥 생활.
이렇게 첫번째 고양이 시간을 보내고 나면 진짜 고양이 시간이 찾아온다.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천장의 전등만 탁 꺼도 어둠이 내려앉는 그 시간. 어질러진 장난감도, 허물처럼 벗어둔 옷가지도, 바닥에 씨앗처럼 흩뿌린 밥풀도 보이지 않는 그 밤. 고요한 어둠 속에서 낮 동안 아이를 보느라 못 챙긴 나를 돌본다. 헝클어진 털을 고르고, 사료도 천천히 오독오독 씹고, 좋아하는 창밖 구경도 한다. 적막을 뚫고 아이 엄마·아빠가 ‘탁’ 하고 뜯는 맥주캔 소리도 경쾌하게 들린다. 그들도 이렇게 엄마·아빠를 벗어나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나면 아이가 어지럽힌 장난감을 정리할 힘도, 벗어둔 옷을 빨래 바구니에 넣을 힘도 생기는 모양이다.
밤사이 아이는 나도 모르게 자라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알아챌 수 없겠지만 육아하는 나도 어떤 방식으로든 자라 있겠지.
만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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