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이 그을린 채 목줄에 묶여 있던 개. 동물자유연대 활동가가 준 간식을 먹고 있다.
목에 줄이 묶이고 울타리에 갇힌 채 화마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목격자들이 있었다.
6일 오전 찾은 강원도 고성군 일대에서 만난 동물들은 불에 그슬린 채 겨우 살아남았거나 참혹하게 세상과 작별한 상태였다.
불길이 휩쓸고 간 고성군 토성면 봉포리의 한 불법 개농장, 삶과 죽음의 거리는 2m 남짓에 불과했다. 살아남은 개들은 눈앞에서 맞은 편 철창에 갇힌 친구들이 불에 타 죽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사체가 된 개들은 화재 당시를 화석처럼 증명했다. 뒷다리를 하늘로 향한 채 고통스럽게 이빨을 드러내고 죽은 개, 살기 위해 달아오른 철창을 거세게 밀었는지 아래로 핏자국을 흘린 채 타버린 개들이 여전히 철창에 갇혀 있었다. 이 농장에서는 72마리 개가 살아남았고, 21마리의 사체가 발견됐다.
생존한 개들 가운데 일부는 유독가스 때문인지 기침을 하고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그 와중에 사람을 보고 배를 드러내며 반기는 개도 있었다. 피해 동물 구호를 위해 현장을 찾은 동물자유연대 활동가가 깨끗한 물을 철창 안으로 부어주자 시커먼 그을음을 입은 개가 허겁지겁 목을 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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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줄이라도 풀고 대피해주세요”
“동물들도 함께 대피해요. 데리고 못 간다면 목줄이라도 풀어주세요.”
화재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전파되던 메시지처럼 목줄을 풀고 불길을 피한 개들도 있었다. 불에 그슬린 개집이나 밥그릇 등 흔적은 보였지만 개 사체는 가까이 없거나 빈 목줄만 남은 장소가 여러 곳 있었다.
하지만 불에 녹아 쓰러진 울타리에 깔린 채, 혹은 목줄을 한 채 내장을 드러내고 불 타 죽은 개들도 발견됐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개들도 눈에 띄었다. 원암리에서 만난 황구는 주인 떠난 빈집을 배경으로 줄에 묶여 있었다. 악몽 같은 시간에 식욕을 잃은 듯 밥그릇 가득 짬밥이 굳어 있었다.
성천리 은목교회에 딸린 농장에 사는 세 마리 개들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연신 “고맙다”는 말을 듣고 있었다. 이 교회 문종복 목사는 “4일 저녁 사람들 10명쯤 모여서 기도회를 열고 있었는데, 개가 너무 짖어서 나오니 온 동네가 타고 있었다. 개들이 우리를 살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날 두 마리는 황급히 목줄을 풀어줬지만, 흰색 진도 ‘백순이’는 불길에 가로막혀 목줄을 풀지 못했다. 문 목사는 “백순이가 잘못됐을 줄 알았는데, 다행히 목줄이 길어서 바위 옆에 굴을 파고 들어가 살아남았더라”고 말했다. 백순이는 화재 이후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유독 사람들 곁을 피해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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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휩쓸린 4만 마리
“동물 구하는 사람들이에요? 누가 우리 소 좀 찾아줘요.”
불길은 동물을 가리지 않고 덮쳤다. 농장동물 피해도 극심하다. 용촌리에서 만난 한명순(77) 할머니는 유니폼을 입은 동물단체 활동가들을 만나자 사라진 소의 행방을 물었다. 할머니가 키우는 소 3마리 가운데 한 마리는 화상을 입었고, 불길에 놀라 뛰쳐나간 한 마리는 길을 잃었다. “동네 사람이 봤는데, 바다로 막 허우적대며 들어가더래.” 할머니가 사는 용천2리는 해변까지 1km 남짓이다.
농장동물 피해 현황을 파악 중인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5일 오후 현재 약 4만 마리 농장동물이 화재에 휩쓸린 것으로 파악된다. 피해 개체의 대다수는 닭으로 보고됐으며 추가 피해를 집계 중이다.
성천리에서 닭, 오리, 굼벵이를 기르는 최진규씨(53)의 농장은 70% 이상 불탔다. 병아리와 아직 덜 큰 닭을 모아둔 계사는 전소하다시피 했다. 흰 털이 잿빛이 된 닭들이 열린 문으로도 나가지 않고 불안한 듯 계사 구석에 몸을 모으고 있었다. 불에 탄 병아리들은 흔적을 찾기도 어렵게 잿가루가 되었다.
최씨가 그나마 마음 쓸어내린 일은 농장을 지키던 개들이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5일 새벽 4시, 최씨는 진도 ‘들판이’와 풍산견 ‘탱탱이’를 구하러 달려갔다. “얘네 구하려다가 죽을 뻔했어요. 탱탱이가 묶여 있었거든요. 개들이 저를 보자마자 와락 안겨드는데 얼마나 눈물이 났는지 몰라요.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눈앞에서 가스통 두 개 펑펑 터지지. 이놈들 기절초풍했을 거야,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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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의 사각지대에 놓인 동물들
화재 현장을 찾은 조희경 동자연 대표는 “동자연과 동물구조관리협회 두 곳은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동물 구조와 관련해 협조하는 민간단체로 정부 지정돼 있다. 하지만 이번 화재와 관련해 어떤 협조 요청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용촌리에서 만난 한명순 할머니는 “(다친 소 치료를 위해) 축협에 연락해 수의사를 보내달라고 했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며 답답해하기도 했다.
이날 피해 동물 진료 지원 계획을 밝힌 강원도수의사회에 따르면, 속초 지역 내 동물 병원 가운데 일부는 5일부터 화재 피해 동물을 자발적으로 무료 진료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화마가 휩쓸고 간 마을, 동물들은 시민이 직접 구하지 않는 이상 재난 현장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고성/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검은 털이 갈색으로 그을린 개. 은목교회 검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