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애니멀피플 반려동물

치와와들의 ‘효도’를 이제 돌려줄 때

등록 2020-04-07 14:01수정 2020-04-07 14:45

[애니멀피플] 엄지원의 개부담
아픈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봄날의 볕을 만끽하며 잠든 두 모녀.
아픈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봄날의 볕을 만끽하며 잠든 두 모녀.

쭈니가 ‘유방암 수술’을 한 지 한 달이 지났다. 한쪽 유선과 자궁, 난소를 모두 들어낸 쭈니는, 열두 살의 적지 않은 나이에도 수술을 잘 견뎌냈다. 무엇보다 수술 뒤 놀라운 자기관리 능력을 보여주며 나를 숙연하게 했다. 가족은 서로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할 때에도, 사실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수술 전 주치의 선생님은 쭈니의 환부가 생식기 근처여서 핥거나 대소변 등 이물질이 묻을 경우 감염이 생길 수 있는 점을 주로 걱정했다. 몸이 작기 때문에 수술 부위와 생식기 사이의 거리는 1㎝도 되지 않아서다. 하지만 쭈니는 듣도 보도 못한 수준의 깔끔이인 것으로 드러났다.

수술 직후부터 이 조그만 치와와 녀석은 위생 관리에 철저했다. 조그만 케이지 안에서도 이 녀석은 알차게 공간을 나눠쓰고 있었다. “보통 개들이 수술하고 나면 마취 깨고 정신이 없어서 소변 보고 뭉개고 앉아있고 그러거든요. 쭈니는 소변을 보고 꼭 다리를 살짝 들어서 자리를 옮겨 앉더라고요.” 주치의 선생님의 설명에 공연히 내 어깨가 으쓱했다. ‘니가 나보다 낫구나. 리스펙이다.’

_______
수술 뒤 돌아온 ‘효녀’ 쭈니

집에 돌아온 뒤에도 쭈니는 보호자인 나를 신경쓰게 하는 일이 없었다. 잠시 딴 일을 하고 있을 때 ‘챱챱’ 소리가 나서 “너 뭘 핥고 있어?” 하고 뛰어나와 보면, 엄마인 ‘막내’의 배나 자신의 발을 핥고 있었다. 두려웠던 ‘2차 감염’ 없이 쭈니는 보름만에 실밥을 풀었다. 어찌 효녀라 하지 않을 텐가.

역설적으로, 이번 수술 뒤 나는 내가 이제 치와와들에게 효도를 할 때가 온 것임을 깨달았다. 수술 뒤 쭈니는 전처럼 명랑하기만 한 치와와 어린이가 아니게 됐다. 암수술을 견뎌낸 노견의 처지가 된 것이다. 췌장염 소견에 심장도 좋지 않고 부정맥이 심하다. 요로결석과 초기 백내장도 있다. 그러니 쭈니가 웅크리고 있거나 밥을 잘 먹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쭈니가 변은 잘 보는지, 혹시 소변을 너무 자주 보진 않는지, 소변 색이 너무 진하진 않은지 매일 살펴야 한다.

쭈니의 엄마인 막내는 말할 것도 없다. 14살 막내는 쭈니가 수술하고 입원한 사이 자신도 설사를 해가며 고통 분담을 해 내 속을 썩였다. 다행히 위염에 그쳤지만 그 과정에서 이것저것 검사를 해보니 막내 역시 심장병 초기라고 했다. 백내장도 심해져 오른쪽 눈은 하얗게 혼탁해져 있다. 몇 주 새 이 녀석들은 아주 할머니가 되었다.

_______
‘늙음’을 마주하는 순간

지난해 이 칼럼을 시작할 때만 해도 ‘동안’이라고 자랑했던 막내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나는 그 녀석의 ‘늙음’을 마주하게 된다. 가슴이 아파서 바라보기도 힘들 정도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아침저녁 그 눈에 연고를 넣어준다. 부디 더 악화되지만 않기를 바라면서….

거리에서 우리가 마주치는 개들은 대개 예쁘고 쾌활하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동물병원을 찾는 반려동물들은 ‘저런 개와 어떻게 살지’ 싶은 녀석들이 대부분이다. 백내장에 피부병에, 다리를 저는 녀석들. 대개가 노령견이다. 그 녀석들을 소중하게 안고 진료를 받는 반려인들을 볼 때, 뭉클해지곤 했다. 동료애 또는 박애정신에 대한 존경이었다.

얼마 못가 나 역시 치와와 모녀를 안고 거리에 나서면 “너무 귀엽다”는 말 대신 “너무 딱하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상상한 적 없는 미래를 요 며칠 자주 떠올려봤다.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그러나 우리는 가족이다. 그러니 지켜줄 것이다. 지난 세월 이 치와와들이 베풀었던 효도를, 남은 나날 그대로 아낌없이 돌려줄 것이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애니멀피플] 핫클릭

코끼리의 잔혹한 성년식, ‘파잔’을 아십니까? 1.

코끼리의 잔혹한 성년식, ‘파잔’을 아십니까?

시속 240㎞로 날아와 사냥 ‘순삭’ …‘하늘의 호랑이’ 검독수리 2.

시속 240㎞로 날아와 사냥 ‘순삭’ …‘하늘의 호랑이’ 검독수리

머스크 향수 좋아하다가…50마리 남은 사향노루 ‘멸종위기’ 3.

머스크 향수 좋아하다가…50마리 남은 사향노루 ‘멸종위기’

이름 뜻도 ‘영리한’ 여우, 1970년대까진 우리나라 살았다는데… 4.

이름 뜻도 ‘영리한’ 여우, 1970년대까진 우리나라 살았다는데…

서두르지 마세요…반려동물의 ‘마지막 소풍’ 배웅하는 법 5.

서두르지 마세요…반려동물의 ‘마지막 소풍’ 배웅하는 법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