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엄지원의 개부담
아픈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봄날의 볕을 만끽하며 잠든 두 모녀.
수술 뒤 돌아온 ‘효녀’ 쭈니 집에 돌아온 뒤에도 쭈니는 보호자인 나를 신경쓰게 하는 일이 없었다. 잠시 딴 일을 하고 있을 때 ‘챱챱’ 소리가 나서 “너 뭘 핥고 있어?” 하고 뛰어나와 보면, 엄마인 ‘막내’의 배나 자신의 발을 핥고 있었다. 두려웠던 ‘2차 감염’ 없이 쭈니는 보름만에 실밥을 풀었다. 어찌 효녀라 하지 않을 텐가. 역설적으로, 이번 수술 뒤 나는 내가 이제 치와와들에게 효도를 할 때가 온 것임을 깨달았다. 수술 뒤 쭈니는 전처럼 명랑하기만 한 치와와 어린이가 아니게 됐다. 암수술을 견뎌낸 노견의 처지가 된 것이다. 췌장염 소견에 심장도 좋지 않고 부정맥이 심하다. 요로결석과 초기 백내장도 있다. 그러니 쭈니가 웅크리고 있거나 밥을 잘 먹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쭈니가 변은 잘 보는지, 혹시 소변을 너무 자주 보진 않는지, 소변 색이 너무 진하진 않은지 매일 살펴야 한다. 쭈니의 엄마인 막내는 말할 것도 없다. 14살 막내는 쭈니가 수술하고 입원한 사이 자신도 설사를 해가며 고통 분담을 해 내 속을 썩였다. 다행히 위염에 그쳤지만 그 과정에서 이것저것 검사를 해보니 막내 역시 심장병 초기라고 했다. 백내장도 심해져 오른쪽 눈은 하얗게 혼탁해져 있다. 몇 주 새 이 녀석들은 아주 할머니가 되었다. _______
‘늙음’을 마주하는 순간 지난해 이 칼럼을 시작할 때만 해도 ‘동안’이라고 자랑했던 막내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나는 그 녀석의 ‘늙음’을 마주하게 된다. 가슴이 아파서 바라보기도 힘들 정도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아침저녁 그 눈에 연고를 넣어준다. 부디 더 악화되지만 않기를 바라면서…. 거리에서 우리가 마주치는 개들은 대개 예쁘고 쾌활하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동물병원을 찾는 반려동물들은 ‘저런 개와 어떻게 살지’ 싶은 녀석들이 대부분이다. 백내장에 피부병에, 다리를 저는 녀석들. 대개가 노령견이다. 그 녀석들을 소중하게 안고 진료를 받는 반려인들을 볼 때, 뭉클해지곤 했다. 동료애 또는 박애정신에 대한 존경이었다. 얼마 못가 나 역시 치와와 모녀를 안고 거리에 나서면 “너무 귀엽다”는 말 대신 “너무 딱하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상상한 적 없는 미래를 요 며칠 자주 떠올려봤다.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그러나 우리는 가족이다. 그러니 지켜줄 것이다. 지난 세월 이 치와와들이 베풀었던 효도를, 남은 나날 그대로 아낌없이 돌려줄 것이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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