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시키지 않아도 늘 꼭 붙어있던 치와와 모녀. 특히 쭈니가 더 엄마에게 매달렸다.
10년 넘게 치와와 모녀와 함께 하다, 지난 연말 치와와 모친인 ‘막내’를 먼저 떠나보냈다.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기쁨을 다룬 글은 많으나 반려동물을 떠나보내는 과정에서 느낀 슬픔과 막막함을 나눈 글은 적다. ‘개부담’을 통해 주로 두 친구와 함께 하는 즐거움을 기록해왔으나, 3주 간격의 연재에서 당분간 막내를 떠나보낸 과정을 적으려 한다.
지난 반년, 쭈니(13)는 구박데기로 살았다. 쭈니의 엄마이자 우리집 치와와 넘버원이었던
막내가 크게 앓고 지난 연말 무지개다리를 건너기까지, 쭈니는 늘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나의 총애를 두고
모녀의 암투는 치열했다. 그러나 뇌병변을 겪은 막내가 제 앞가림을 할 수 없는 처지가 된 뒤 그 녀석을 돌보는 일은 내 일상의 최우선 순위가 됐다. 아침에 눈을 뜨거나 밤에 퇴근했을 때 쭈니의 인사를 받아줄 여유조차 없었다.
막내와 쭈니를 한 공간에 두었을 때 쭈니가 막내를 깔고 앉는 일도 이따금 있었는데, 그럴 때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쭈니를 혼내곤 했다.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픈 아이를 돌보는 이의 마음은 그런 것이다.
태어나 처음, 혼자가 된 쭈니. 더는 고개 파묻어도 핥아줄 어미가 없다.
조그맣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그런 시간이 이 녀석의 쾌활한 성정에 외상을 남기지 않았을 리 없다. 나의 관심을 받지 못해서만은 아니겠다. 2008년 세상에 나왔을 때부터 쭈니는 줄곧 엄마의 보살핌 속에 살아왔다.
반려인이 온종일 집을 비우는 경우 반려견들은 짖거나 서성이고, 배변 실수를 하는 등 분리불안 증상을 보인다. 그러나 12시간씩 집을 비우는 독박 반려인의 행태에도 불구하고 막내와 쭈니가 낮시간을 느긋하게 보냈던 것은 의지할 서로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막내가 뇌병변으로 정신을 놓은 뒤(나는 편의상 이를 ‘치매’라고 표현했다.) 쭈니는 평생 함께 해온 친구이자 가족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렸다. 둘을 함께 키울 때 사람들은 종종 물었다. “새끼가 엄마를 알아봐요?”라거나 “엄마가 새끼를 챙겨요?”라거나”…. 개들은 부모자식 간에도 교배를 한다고 하니, 어미 자식 사이에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게 아닌가 궁금해서 묻는 질문이다.
회사에서 시시티브이(CCTV)를 보니, 온종일 울부짖는 막내를 보며 울타리 너머에서 쭈니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말 못하는 존재라 막내와 쭈니에게 물은 적은 없지만 나는 이 녀석들이 서로에 대해 평생 잘 알고 있었다고 믿고 있다. 볕이 좋은 날이면 쭈니는 막내 옆에 누워 핥아달라 얼굴을 들이밀었고, 막내는 요구에 부응하곤 했다. 쭈니가 막내를 핥아주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내리사랑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러겠는가.
막내의 마지막 나날 동안 쭈니는 뒤늦은 깨달음(?)에 발을 굴렀다. 막내의 배변을 돕느라 잠시 분리해두면 새끼 개는 자꾸 낑낑거리며 엄마에게 보내달라고 했다. 온종일 하울링(개들이 늑대처럼 목을 쳐들고 울부짖는 것)하는 막내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울타리 너머에서 함께 울기도 했다.
신문사에서 일을 하다가 집에 설치된 시시티브이(CCTV)를 보면 쭈니가 몇 시간씩 발을 구르고 있었다. 내가 재택근무를 하며 돌볼 때에도 마지막 보름여의 시간 동안 막내의 울음을 멈추게 할 길은 없었다. 배가 고파서, 배변하고 싶어서, 일어설 수 없어서, 개는 끊임없이 울었다. 온종일 그걸 지켜봐야 하는 쭈니도 전에 없던 불안증세를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엄마’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막내를 보내주는 자리에 쭈니를 데려갈까 말까 고민했지만, 데려가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런 일들에 동참하지 않아도 이 13살짜리 개는 엄마의 죽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무리 동물의 죽음을 애도하는 동물들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범고래나 침팬지, 고릴라처럼 지능이 높지 않아도, 평생 자신을 품어주었던 존재가 사라졌다면 어떤 포유류든 체온만으로 부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초 쭈니가 악성종양 수술로 고작 며칠 병원에 입원했을 때, 막내는 온종일 목놓아 울었다.
남은 개를 위로하는 것 또한 나의 숙제가 되었다. 혼자 남겨졌으니 사회성이 떨어진 것은 물론이고, 막내에게만 온 신경을 기울인 반년 동안 녀석도 눈에 띄게 늙어버렸다. 산책을 즐기는 편이었던 녀석인데, 길을 나서도 좀처럼 걸으려고 하지 않는다. 집에서도 온종일 잠만 잔다. 심장병이 본격화되고 있어서다.
하루 두 번 영양제와 심장병 전용사료를 억지로 먹이고 있지만, 마음을 위로하는 일은 더 어렵다. 쭈니가 좋아하는 ‘손님’을 집에 불러 만찬을 벌이면 잠깐 생기가 도는데, 그 역시 나를 위한 것인지 저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치와와들을 볼 때 그저 즐겁기만 했던 나의 마음에도 그늘이 드리워졌다. 반려견을 여럿 둔 사람들 사이에선 반려견 하나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더라도, 다른 개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너무 슬퍼하거나 우울해하지 말라는 조언이 불문율처럼 전해진다. 하지만 쭈니가 몇 년 안에 막내처럼 크게 앓는 시간을 보내게 될 거라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저리다. 게다가 다음번의 이별 앞에선 ‘이 녀석의 디엔에이(DNA)는 아직 세상에 남겨져 있잖아’라고 위로할 수조차 없을 테니….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