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수천 년 동안 사람을 도와왔지만, 곤경에 빠진 주인을 구하려는 내적 동기가 있음이 최근 밝혀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불길에 휩싸인 주인을 구하고 죽은 오수견을 비롯해 사람을 구한 충견 이야기는 많다. 그러나 실제로 구조견이 아닌 보통 개가 자발적으로 곤경에 빠진 주인을 구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구조 훈련을 받지 않은 개 60마리를 대상으로 도움을 청하는 주인을 구하는지 알아본 흥미로운 실험결과가 나왔다. 조수아 밴 부르그 미국 애리조나대 대학원생 등 미국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플로스 원’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개들에게 주인을 구하려는 성향이 있음을 확인했다”며 “이것은 주인이 느끼는 스트레스가 개로 전파되는 ‘감정 이입’의 증거”라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큰 상자에 갇힌 주인이 “사람 살려” 등의 비명을 지르게 하고 개의 반응을 살폈다. 상자에는 스티로폼으로 만든 가벼운 문이 달려 있었다. 시험 대상의 3분의 1인 20마리가 문을 열고 주인을 구했다.
밴 부르그는 “이 수치가 그리 큰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며 “그러나 내용을 자세히 알아보면 얼마나 대단한 수치인지 알 수 있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같은 상자에 맛있는 먹이를 넣어두었을 때 시험 대상의 3분의 2는 문을 열지도 못했다. 그는 “구조에 나서려면 단지 그럴 내적 동기가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상자에 든 먹이를 꺼낼 줄 아는 개들 가운데 84%가 주인을 구조했다.
네팔 지진피해 현장에서 인명구조에 나선 구조견. 이런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개들도 주인을 구조하러 나선다. 영국 국제개발부,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고통을 호소하는 주인의 비명이 영향을 끼쳤을까. 연구자들은 이를 알아보려고 주인이 상자 속에서 잡지를 낭독하는 실험을 했다. 비명을 질렀을 때보다 적은 16마리 만이 문을 열고 주인에게 갔다. 다시 말해 개의 구조 행동은 단지 주인과 떨어지기 싫어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다.
연구자들은 실험하면서 개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나타내는 낑낑대기, 짖기, 하품하기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주인이 상자 속에서 비명을 지를 때 개도 더욱 많이 짖고 낑낑댔다.
게다가 이 실험을 두 번, 세 번 되풀이했을 때도 개들의 스트레스 상태는 줄지 않았다. 상자 속에서 책을 읽는 시험에서 개의 스트레스가 점점 줄어든 것과 대조를 이룬다. 밴 부르그는 “개들은 익숙해지기 마련이지만 주인의 비명은 그걸 가로막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이처럼 주인의 스트레스가 개로 전달되는 것이 사람의 공감이나 동정에 해당하는 감정 이입의 증거라고 밝혔다.
공동 연구자인 클라이브 윈 이 대학 심리학과 교수는 “이번 연구는 훈련을 받지 않은 개라도 사람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보여준다. 많은 개가 곤경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고 나서고, 성공하지 못하면 스스로 힘들어한다. 주인을 구하지 못하는 것도 그럴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떻게 할지 몰라서이다.”라고 말했다.
인용 저널:
PLOS One, DOI: 10.1371/journal.pone.0231742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