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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반려동물

킁킁~ 우린 ‘좋은 날’만 남았단다

등록 2020-07-16 09:54수정 2020-07-16 23:50

[애니멀피플] 통신원 칼럼
죽음의 문턱서 살아남은 ‘후추’와 ‘로다’
난폭자와 겁쟁이를 바꾼 두 달의 기적
후추(왼쪽)와 로다는 동물권행동 카라의 동물보호소 ‘더봄센터’의 난폭자와 겁쟁이로 이름 높다. 더봄센터의 정원에서 만나 인사를 하는 둘.
후추(왼쪽)와 로다는 동물권행동 카라의 동물보호소 ‘더봄센터’의 난폭자와 겁쟁이로 이름 높다. 더봄센터의 정원에서 만나 인사를 하는 둘.
후추가 달라졌다. 윤기 나는 갈색빛의 털에 잔디밭이 예쁘게 잘 어울리는 개, 후추의 이런 모습을 상상해 보지도 못했다. 요즘의 후추는 놀아달라고 채근하며 폴짝폴짝 뛰는 것이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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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도살장에서 구조된 후추

후추는 지난해 말, 하남 개도살장에서 구조되었다. 개들을 나무에 목매달아 죽이는 도살장이었다. 후추는 추위를 피할 길 없이 차가운 땅 위에서 덜덜 떨고 있었다. 그 애는 눈앞에서 개들이 죽는 모습을 본 터라 뜬장 위를 나가면 죽는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구조의 손길에도 죽어라 버텼다.

“얘는 내가 멧돼지 쫓는 개로 키울 거야. 못 줘.”

지난해 말 개농장에서 처음 만나 구조된 후추. 몹시 사납다고 했고, 사람에게 적대적이었다.
지난해 말 개농장에서 처음 만나 구조된 후추. 몹시 사납다고 했고, 사람에게 적대적이었다.
후추가 있던 도살장을 폐쇄하며 모든 동물을 구조할 때, 도살자는 완강했다. 후추가 몹시 사나운 개라 밭 지키는 개로 적격이라고 했다. 이런 개는 보호소 가면 바로 안락사라고도 덧붙였다. 기어코 설득하고 설득해 후추의 소유권을 받아냈었다.

그의 말대로일까, 후추는 사람에게 적대적이었다. 후추를 진료한 수의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테크니션은 얼굴을 물릴 뻔했다. 후추는 곧 위탁보호소로 갔다. 그리고 봄이 시작하던 5월, 카라 더봄센터로 입소했다. 후추를 보살피던 위탁처 소장님은 “아주 조심해야 하는 애”라고 후추를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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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축되어 겁 많던 로다

로다는 참 알 수 없는 애였다. 이 애는 작년 3월 벌교 개농장에서 구조되었다. 후추처럼 뜬장 위에서 덜덜 떨고 있었는데, 몸에는 근육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깡말라 있었고 털도 푸석푸석했다. 한껏 고개를 숙이고 눈도 제대로 못 마주쳤다. 무슨 일을 겪어서 이렇게 위축되어야만 했을까 의문이었다.

지난해 3월 개농장에서 구조 뒤 한 달 뒤의 로다. 몇 달 동안 위축되어 있었던 로다는 처음에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지난해 3월 개농장에서 구조 뒤 한 달 뒤의 로다. 몇 달 동안 위축되어 있었던 로다는 처음에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구조를 한 후 병원에서 정밀검진을 받았을 때도 로다에게는 특별한 질병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저 몇몇 수치가 이유를 알 수 없이 지나치게 높았을 뿐이었고, 대증요법도 소용이 없었다. 알 수 없는 수치를 뒤로하고 로다는 퇴원했다.

로다는 그 뒤로 14개월을 위탁처에서 보냈다. 살은 쪘고 피부병은 나았지만, 여전히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것을 두려워했고 구석에서 온몸을 웅크리는 게 고작이었다. 위탁처 소장님이 아닌 사람과 함께 있으면 깊은 패닉에 빠졌다. 겨우 숨을 쉬는 게 대견할 정도였다. 그런 로다도 지난 5월, 후추와 함께 더봄센터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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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평범한 개들

더봄센터에 여름이 오자, 중앙정원에는 잔디가 쑥쑥 자라고 있다. ‘사나운 개’라 손가락질받았던 후추는 그 잔디밭을 좋아한다. 잔디밭의 냄새를 구석구석 맡고, 뛰고, 창문 너머의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한다. 담당 활동가에게 부리는 애교는 깜찍하다. 상기되어 벌어진 입꼬리와 행복하게 늘어난 분홍색 혓바닥은 후추가 가지게 된 소중한 일상의 상징이다.

얼마 전, 후추는 중앙정원을 뛰어놀다가 로다를 만났다. 로다는 산책이 어려워 활동가의 품에 안긴 상태였다. ‘뭐해? 용기를 내!’ 응원하듯 코를 맞댄 후추는 그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자신감이 넘쳐 보이고, 활동가의 품에 안긴 로다는 그 모든 것이 낯선 듯 선연한 듯했다.

요즈음 로다는 슬슬 ‘개’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중이다. 견사에 들어가면 구석에서 가만 앉아있을 뿐이지만, 그래도 제법 고개를 들고 사람과 시선을 마주치는 정도는 된다. 어깨마사지도 얌전히 잘 받는다. 그러다 자신과 비슷하게 소심한 개들과 짝을 지어 테라스에 풀어주면 친구들에게 신나게 꼬리를 흔들며 뜀박질을 한다. 친구들 사이에서 놀이를 주도하는 로다는 명랑하고 행복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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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앎과 행동의 힘으로

소외된 세상에 사는 개들은 너무 쉽게 죽는다. 특히나 품종 없는 대형견들의 사정은 처참하다. 개농장이나 도살장에서 벗어나 지자체 보호소로 간다고 해도 사납거나 소심하다는 이유로 입양되지 않아 안락사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새로운 기회가 될 보호소 입소는 죽음의 또 다른 이름이 될 뿐이다.

앞으로 더 좋아질 미래만 남은 개들, 후추와 로다의 변화는 고작 두 달 만에 이뤄졌다. 이들은 나쁜 개는 없으며, 사람이 잘하면 개는 그에 따라준다는 단순한 진실을 너무나 손쉽게 증명했다. 마찬가지로 개도살장에서, 개농장에서 지내고 있는 모든 개들 또한 적합한 기회만 주어진다면 사랑스러운 반려견이 될 준비를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후추(위 사진)와 로다는 이제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고 자신감 있는 개로 바뀌었다.
후추(위 사진)와 로다는 이제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고 자신감 있는 개로 바뀌었다.
모든 동물이 안전하게 새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회는 언제 마련될까. 매년 발생하는 13만 마리 유기동물과 전국 3000곳 개농장의 개들, 사각지대에 서 있는 동물들에게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지자체 보호소가 구조하는 동물들의 치료와 사회화 교육을 보장할 수 있도록 거듭나길 바란다. 더봄센터의 존재가 증명하듯이, 그건 결코 불가능한 꿈이 아닐 것이다.

글 김나연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 사진 동물권행동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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