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주의 한 주유소의 사무실 안 텔레비전과 셋톱박스에 앉은 어린 새.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한 주유소 사무실. 갓 이소한 어린 제비들의 연습 비행이 한창이다.알에서 깬 지 20일쯤 된 세 마리 제비는 연신 사무실 텔레비전 위 셋톱박스와 의자 등받이를 오간다. 또 좀 멀리 떨어진 온풍기 연통과 시계 위로 날아 날개에 힘을 붙이려 하고 있다. 아직 둥지를 벗어나지 못한 막내만 제비집에 홀로 앉아 형들의 비행을 부러워하고 있다.
제비는 지난해 처음 사무실 안 복조리에 둥지를 짓기 시작했다. 봄에 ‘강남’ 온 제비는 진흙을 물고 사무실 안으로 날아들었다. 복조리를 둥지 터로 생각하고 있다고 본 주인은 현관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또 현관문 위의 작은 창은 아예 떼어내 밤낮으로 새들이 드나들게 해주었다.
집 주인에게 지난해 경험은 아픈 기억이다. 작년부터 새가 사무실 안으로 날아들었다. 새가 벽에 걸린 복조리에 둥지를 만들 때만 해도 신기하고 대견스러웠다. 하지만 둥지 높이가 좀 낮았을까? ‘복조리 제비집’이 신기한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핸드폰을 들고 까치발로 제비집 안을 찍어댔다. 어미 새는 스트레스를 크게 받았다. 하루는 새벽에 일어나보니, 어린 새들이 모두 제비집 아래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집주인이 놀라 다시 제비를 집에 올려놨지만, 무슨 일인지 어미들은 어린 새들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기만 했다. 더는 새끼를 키우려 하지 않았다. 제비를 기다리면 주인은 올해는 일부러 복조리 위치를 좀 높였다. 또 제비 둥지를 신기해하는 사람이 있어도 사무실 안에 잘 들이지 않았다.
`복조리 둥지’에서 제비가 새끼를 키워냈다. 지난 7월 어미가 아직 이소하지 못한 막내 제비에게 연신 먹이를 물어다 주고 있다.
사무실 시계와 온풍기 연통이 한창 날기 연습에 한창인 어린 새의 훈련장이다.
둥지를 벗어나도 어린 제비들은 상당 기간 부모 새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아직 나는 힘이 부족해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아직은 직접 먹이를 잡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둥지는 겨우 벗어났다고 하지만 어린 새에게 가장 위험한 시기이다. 수많은 어린 새들이 이 시기에 새홀리기나 황조롱이 같은 맹금류나 까치, 까마귀와 고양이의 먹잇감이 되기도 하다.
이런 새들에게 사무실은 최고의 ‘날기 연습장’인 셈이다. 멀리 날지 않아도 편하게 내려앉을 장소가 많다. 의자 등받이부터 텔레비전 위, 벽에 걸린 시계가 모두 이들이 날다 쉬는 장소다. 또 사방이 막힌 사무실은 천적의 눈으로부터 더 안전하다. 날개 힘이 부족한 어린 새들이 맘 놓고 날개를 퍼드덕대다 먹이를 받아먹곤 안전하게 쉴 수도 있는 장소다.
사무실 소파로 날아드는 새들. 사무실 전체가 비행훈련장이다.
새 배설물은 골칫거리다. 새들이 이소하기 전만 해도 복조리 둥지 아래 받침대를 만들어 배설물을 어느 정도 받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새끼들이 본격적으로 날아다니기 시작하자 의자, 소파는 말할 것도 없고 텔레비전 위 사무실 바닥까지 맨 제비 똥투성이다.
제비 똥이 성가시지만, 새들이 새끼를 잘 키워 나가기를 바라는 집주인의 마음을 제비들이 알아채기라도 했을까? ‘복조리 둥지’ 말고도 김씨 집에만 5개의 둥지가 더 있다. 1980~90년대부터 제비집 지을 장소 자체가 부족한 처지인데, 주유소 ‘명당자리’를 차지한 제비는 올 자식 농사 시름을 덜고 있다.
사진·글 청주/김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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