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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야생동물

외발 두루미의 춥고 긴 ‘달빛 소나타’

등록 2019-03-04 16:56수정 2019-03-04 17:58

[애니멀피플] 김진수의 진버드
천적 대비해 트인 저수지나 여울 골라, 긴 목 날개에 파묻고 보내는 겨울밤
달빛에 잠자던 두루미가 어슴푸레 드러났다. 수동으로 렌즈 초점을 맞추고 비(벌브)셔터를 열었다. 카메라는 어둠 속 두루미를 감지하지 못했다. 달이 중천에 오르면서부터 카메라 자동초점조절장치도 작동을 멈췄다. 카메라 엘시디 창에는 자갈 깔린 투명한 강바닥과 강 건너 나무 그림자가 생긴 수면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밤 10시40분 음력 열아흐레 달이 떠오르자 별빛이 희미해졌다.

임진강 여울목 잠자리에 70여 마리 두루미와 재두루미가 보였다. 잠자리에 쇠기러기 무리도 함께 있다. 긴 목을 접어 날개 밑에 파묻은 두루미는 잠을 청하려 하지만 이웃 쇠기러기가 시끄럽고 수선스럽다. 밝은 보름날이 사진 찍기는 더 좋다. 하지만 올 정월 보름에는 구름이 많이 끼고 날이 흐려 사진 찍을 기회를 잡지 못했다.

몸길이가 140㎝나 되는 두루미는 까다롭게 잠자리를 고른다. 덩치가 커 천적의 눈을 피하기도 쉽지 않다. 안전을 위해 커다란 호수나 강 한복판같이 시야가 확 트인 널찍한 곳을 찾아 자기도 한다. 주변을 경계하며 천적의 접근을 미리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에 꽁꽁 얼어붙은 철원의 대형 저수지에서 잠을 자는 수천 마리를 볼 수 있다.

얕고 물살 센 강 여울도 잠자리로 좋아한다. 여울은 발목 정도 잠기는 깊이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두루미가 서너 발자국 도움 닦기를 해야 이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울이 발달한 임진강과 한탄강에서 긴 목을 접어 날개에 파묻은 채 외다리로 서 춥고 긴 겨울밤을 보낸다.

달 뜰 무렵 지평선 위 달은 탐조등처럼 빛을 세게 비춘다. 실루엣으로 보이는 새는 역광 때문에 어둡고 윤곽선만 겨우 보일 정도다. 달이 중천에 높이 걸린 자정쯤 달빛이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은은하게 강과 들녘을 고루 밝힌다. 컴컴한 강에 달빛이 비치면 고개 숙이고 잠을 자는 두루미 등과 날개가 멀리 희미하게 빛난다. 고요한 임진강에 빠르지 않고 감미로운 달빛 소나타가 울려 퍼지는 순간이다.

달빛에 취해 셔터 막을 올리고 630여초를 기다렸다. 시간의 흔적을 남기며 물은 흘러가고 어둠 속 두루미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놀라운 평형감각을 자랑하듯 두루미는 10여분 동안 미동도 않고 외다리로 선 채 잠을 잔다. 옆에 자던 쇠기러기 등이 밤새 서리가 내려 희끗희끗해졌다.

김진수 한겨레21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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