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족을 거느린 큰고니(천연기념물 201-2호)를 만난 건 탐조 여행을 갔던 몽골 초원에서다. 고니는 사람들이 다가오자 잠시 당황한 눈치였다. 그래도 겨울철 우리나라에서처럼 놀라 황급히 달아나지는 않았다. 자신들이 있는 곳이 어린 새에게 비교적 안전하고 사람들이 해코지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한참이 지나도 사람들이 자리를 뜨지 않자, 이번엔 몸이 육중한 수컷이 갑자기 내달려 10여m 도움닫기 끝에 날아올랐다. 수컷이 요란한 동작으로 이목을 끄는 사이 어린 새를 데리고 암컷은 물 고인 습지를 헤엄쳐 슬금슬금 멀어져갔다. 사람들과 충분히 거리가 생기자, 이목을 끌며 날았던 수컷이 다시 가족과 합류했다. 어린 새 일곱 마리가 뒤뚱뒤뚱 어미를 뒤따랐다. 햇볕 내리쬐는 몽골 초원의 풀 사이로 새들이 보이다 안 보이다 했다. 초원으로 나들이 나온 가족처럼.
큰고니 가족을 만난 군가르트 자연보호구는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180㎞ 떨어진 해발 1700m의 초원이다. 고원의 건조하고 찬 날씨 때문에 어른 손 한뼘만큼씩만 자란 풀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곳곳에 널린 습지는 새에게 위협적인 사람과 육상동물의 접근을 막아준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니가 즐겨 먹는 세모고랭이 군락지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어린 새를 키우는 데 최적의 장소다.
이런 곳에서 아홉 가족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수천 마리의 큰고니가 매해 겨울 가족 단위로 주남저수지와 우포늪, 천수만, 팔당을 찾아오기는 한다. 큰고니 부부가 둥지에 3~8개의 알을 낳지만, 월동지인 우리나라에서 관찰하면 고작 새끼 두 마리와 함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많아도 4~5마리 정도였다. 겨울철 큰고니 월동지로 나가면 가족이 몇 마리인지 쉽게 셀 수 있다. 몸이 흰 성조와 달리 잿빛을 띤 어린 새들이 어미와 함께 행동하는 경우가 많아 구별이 가능하다.
푸른 초원이 고향인 고니는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로도 잘 알려져 매우 친근한 새다. 하지만 겨울을 나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은 고니의 처지는 ‘호수의 발레리나’처럼 우아하지만은 않다. 월동지인 철원이나 팔당, 천수만에서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물이 꽁꽁 얼면 큰고니들은 얼음 위에 삼삼오오 모여 추위를 피한다. 찬 바람을 피해 날개에 머리만 파묻은 채 빼꼼히 눈만 내민 모습이 안쓰럽게 보인다. 지난 3월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경기 양평 두물머리에 300여마리 규모의 고니 떼가 나타나 큰 관심을 끌었다. 번식지로 날아가기 전 2주 정도 머물며 매일 아침 ‘백조의 호수’를 연출했다. 지금쯤 고향으로 돌아간 큰고니들이 올여름도 어린 새와 함께 푸른 초원의 습지를 거닐 것이다.
글·사진 김진수 한겨레21 기자
습지로 접근하는 사람을 발견한 큰고니. 둥지로 보이는 곳에서 어린 새와 있던 어미가 고개를 세우고 주변을 경계하고 있다.
어미 새 한 마리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날아가고 있다.
암컷은 수컷이 날아가고 나서 어린 새들을 데리고 좀더 멀어져 간다.
다시 돌아온 어미 새가 초원의 습지에 착륙하고 있다.
큰고니 암컷이 습지 한가운데서 알을 품고 있다. 왼쪽은 암컷과 둥지를 지키는 수컷, 둥지 뒤에 몽골의 전통가옥 게르가 보인다.
잿빛 깃털의 새끼 3마리가 어미와 함께 있다.
머리를 날개에 파묻고 눈만 빼꼼히 내밀어 찬 바람을 피하고 있다.
겨울을 나기 위해 천수만을 찾은 큰고니 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