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박진의 벌떼극장
남의 집 꿀을 탐하는 시기는 무밀기 여름에
헛개나무, 유채, 토끼풀 등 꽃이 부족해서
도봉하다 죽는 벌의 모습.
우리나라 말 중에 ‘사흘 굶어 담 아니 넘을 놈 없다’란 속담이 있다. 이 말은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몹시 궁하게 되면 못하는 짓이 없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사람도 먹을 게 없으면 눈에 보이는 게 없는 것처럼 꿀벌도 마찬가지이다.
꿀벌도 며칠 굶으면 도둑질을 한다. 이를 양봉업계에서는 도봉이라고 한다. 쉽게 말하면 도둑벌이다. 귀엽고 통통한 꿀벌이 도둑질도 한다니 사람 사는 세상과 별다를 게 없다. 꽃이 많은데 왜 도둑질을 할까?
도둑벌이 생기는 이유는 단 하나! 먹을 게 없으니깐! 자신들의 집에 먹이가 없고 주변에 꽃도 없다면…그때는 귀여움모드에서 전쟁모드로 변신하게 된다. 꿀벌의 도둑질을 보고 있으면 절실함이 꿀처럼 뚝뚝 묻어난다. 지키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의 한 판 승부이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말리지 않으면 한 쪽이 죽을 때까지 싸운다.
도봉이 많이 일어나는 시기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름에 자주 일어난다. 우리나라의 특성상 여름은 꿀벌들에게 보릿고개의 시기이다. 장마로 인해 꽃이 피어 있어도 꿀을 가져오기 어렵고 여름철 꽃 중에는 꿀벌이 좋아하는 꽃 또한 적다. 이를 꿀이 없다는 의미에서 양봉가들은 무밀기이다.
주변에 꽃이 피어 있는 것 같은데도 도둑질을 하는 이유는 꿀벌이 좋아하는 꽃이 없어서이다. 꿀벌이 모든 꽃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에 알려진 꿀벌이 좋아하는 식물(밀원식물)은 약 600여종이 있다. 대표적인 꽃은 아까시나무, 밤나무, 헛개나무, 싸리나무, 피나무 메밀, 유채, 토끼풀 등이 있다.
먹이가 없는 시기인 여름철에는 벌통을 관찰하기 위해 벌통을 오래 열어두고 있으면 도둑벌들이 출몰하기 시작한다. 마치 영화 속 좀비들처럼. 그럴 땐 재빨리 문을 닫아줘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꿀벌이 또 다른 한 무리를 데리고 와서 곧바로 전쟁터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벌도 잘 먹은 벌은 윤기가 나고 때깔이 좋다. 그렇지 못한 벌들은 꾀죄죄하고 무언가 볼품이 없다. 벌이 잘 먹고 잘 살게 하려면 주변에 벌들이 좋아하는 꽃과 나무를 심어주면 된다.
우스갯소리로 세상의 모든 양봉가는 환경운동가라고 이야기한다. 꿀을 더 많이 수확하기 위한 개인적인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이긴 하지만 그렇게라도 우리는 꽃과 나무를 심고 있다. 올해도 서울숲에는 꿀벌정원이 생겼고, 한강잠원지구에는 6천평 정도의 꿀벌숲이 생겼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은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벌이 사라지고 있는 게 안타까운데 내가 무엇을 할지 모르겠다면 내 주변에 꽃과 나무를 심어보면 어떨까?! 사람과 벌이 공존하는 달콤한 도시가 될 것이다.
글·사진·영상/박진 어반비즈서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