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네오섬 탄중푸팅 국립공원에서는 지척에서 오랑우탄을 만날 수 있다. 노정래 제공
동물원을 눈여겨 둘러보면 동물 사는 곳마다 내부 구조가 다르고, ‘동물을 위해 세심한 배려를 하는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진흙목욕을 좋아하는 코뿔소를 위해선 늪처럼 질퍽한 웅덩이가 있다. 기린, 코끼리, 호랑이가 사는 곳도 이런 식으로 구조를 만든다.
오랑우탄이 생활하는 곳에는 키가 큰 통나무를 몇 개 세워 놨다. 밧줄을 얼기설기 엮어 놔 오랑우탄이 이걸 타고 놀기도 한다. 상당수 오랑우탄은 동물원에서 태어나 야생 경험이 없다. 그래서 야생 생활과 비교할 수 없겠지만, 야생에 비하면 시시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놀만 하다.
동물원에서 동물을 보면서 ‘왜 멸종위기에 처했을까?’를 생각해보면 좋겠다. 왜일까? 원인은 인간이다.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사람이 먹을 식량을 생산하려고 산림을 농토로 바꾸느라 훼손하고, 집 지을 땅이 필요해 도시로 만들어서 그렇다. 산업혁명 이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무지막지하게 잡아먹어서 그런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들소다.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을 잘 길러 새끼를 낳게 하고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선진 동물원의 중요한 업무다. 동물원은 생명체의 중요성을 배우고 동물과 인간이 공존할 필요성을 느끼면서 쉬는 곳이어야 한다. 이런 취지로 멸종위기에 처한 오랑우탄도 기르면서 보여준다.
말레이시아 언어로 ‘오랑’(Orang)은 ‘사람’을 가리키며, 우탄(Utan)은 ‘숲’을 이른다. 즉, ‘숲 속의 사람’(오랑우탄)이란 뜻이다. 오랑우탄은 인간 유전자와 97% 같다. 아시아에 사는 유일한 유인원으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 서식한다.
샛강으로 들어가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커피색 강물은 깨끗한 자연의 색이다. 노정래 제공
사람이 오랑우탄을 구경하고 있을까? 오랑우탄이 사람을 구경하고 있을까? 노정래 제공
오랑우탄은 원래 한 종이었으나 40만년 전에 보르네오오랑우탄과 수마트라오랑우탄 등 두 종으로 분화됐다. 보르네오오랑우탄은 세 개의 아종이 있다. 서로 먼 곳에 살다 보니 지리적으로 격리가 일어나 다른 종으로 분화되고 다시 아종이 생긴 것이다. (이달 초에는 수마트라 섬에 사는 ‘타파눌리오랑우탄’이 수마트라오랑우탄과 다른 새로운 종이라는 주장이 학계에 보고되었다. 이것까지 치면 오랑우탄은 세 종이다.)
오랑우탄은 나무타기 선수다. 나뭇가지를 잡고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훌쩍훌쩍 날아다니듯 옮겨 다닌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나무 위에서 생활한다. 팔이 길고 튼튼하다. 네 개의 긴 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이 나무를 움켜잡도록 근육이 발달했다. 언뜻 보면 영락없이 사람 손이다. 발가락도 그렇다.
매일 밤 높은 나무에 잠자리를 만든다. 나뭇가지를 30㎝가량 잘라 얼기설기 놓고 그 위에 나뭇잎이 있는 잔가지를 깔아 푹신푹신한 둥지를 만든다. 이런 특성을 고려해 동물원에서 오랑우탄이 생활하는 곳에 높은 나무와 밧줄을 놓아 야생에서 사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게 돕고 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가라는 말이 있듯, 오랑우탄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려면 오랑우탄 서식지에 가보면 좋다. 야생 오랑우탄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몇 곳에서 볼 수 있으나 운이 좋아야 만날 수 있다.
인도네시아 탄중푸팅 국립공원에 가면 야생 오랑우탄을 반드시 만날 수 있다. 수도 자카르타에서 비행기 타고 한 시간 반쯤 가서 차량으로 30여분 가면 쿠마이 항구가 나온다. 항구에서 배를 타고 강줄기를 따라 밀림의 심장부로 빨려가듯 올라간다. 이곳에는 세계적인 영장류학자 비루테 갈디카스가 1970년대 초반부터 오랑우탄을 연구하고 있으며, 지금도 근처에서 생활하고 있다. 지금은 생태관광지가 되어 서양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유인원 연구의 선구자는 다 여성이다. 제인구달은 침팬지를, 다이엔 포시는 고릴라를, 비루테 갈디카스는 오랑우탄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고 각자 재단을 설립해 보호활동을 했다. (다이엔 포시는 1985년 숨졌다) 오랑우탄 보호재단은 숲에서 어미를 잃어 고아가 된 새끼를 데려다 기르고 다 크면 다시 숲으로 보내준다. 아프거나 다친 개체들은 재활시켜 밀림에 풀어준다.
탄중푸팅 국립공원은 코주부원숭이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노정래 제공
강은 상류로 갈수록 좁아진다. 강을 따라 생태여행 배가 오간다. 세 곳의 먹이급여지를 중심으로 오랑우탄을 관찰한다. 노정래 제공
고온다습한 열대우림은 생산성이 매우 높아 키가 큰 나무가 많고 먹이가 풍부해서 오랑우탄이 살기에 최적의 장소다. 예전에는 개체 수가 많았다. 불행하게도 몇 년 전에 고아가 많이 생겼다. 산불로 어미가 불에 타 죽어 고아가 된 것이다. 원주민들이 밭을 만들려고 몰래 불을 지르기도 한다. 대부분의 산불은 팜유 농장을 만들기 위해 벤 나무에 불을 지른 것이다. 외국의 거대 기업들이 팜유를 얻기 위한, 엄청나게 넓은 농장이 필요해서다. 팜유 농장으로 터전을 빼앗긴 저지대에 사는 오랑우탄들이 고지대로 옮겨가면서 먹이 경쟁에 밀려 죽는 경우도 있다.
오랑우탄을 사지로 몰고 간 것은 팜유다. 팜유 채취는 지금도 계속된다. 샛강 주위에 정박해 있는 유조선 같은 큰 배가 팜유를 실어나르는 배다. 1984년 인도네시아 정부가 오랑우탄 최대 서식지인 탄중푸팅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어 개체 수 감소는 막고 있다.
밀림으로 돌아간 고아 오랑우탄은 사람 손에 커서 먹을 수 있는 열매가 어떤 것인지, 어디서 찾아야 할지 배우지 못했다. 이들을 위해 하루에 한 번씩 먹이를 준다. 탄중푸팅 국립공원 내 세 곳(캠프 리키, 폰독 탕구이, 탄중 하판)에 먹이를 놔둔다. 연구기지인 ‘캠프 리키’에 가면 서열 1위인 오랑우탄 ‘톰’을 만날 수 있다. 오랑우탄 서식지 투어 배를 타고 있으면 알아서 시간 맞춰 안내한다. 가는 도중에 생태 설명도 듣고 눈으로 체험할 수 있다.
샛강으로 들어가면서 와이파이가 안 되니 스마트폰에 마음을 줄 필요도 없다. 처음에는 불안하다가도,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 된다. 내 영혼에게 주는 선물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슴에 아른거리는 시간이다. 곁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와 마음을 터놓고 교감하게 된다. 싫든 좋든 서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서로를 이해하고, 없던 정도 생길 판이다. 편히 잠자다 새들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모닝콜로 들려, 잠귀 밝지 않은 사람도 자연스럽게 이른 새벽에 깬다. 눈을 감고 새소리를 들으며 생각을 정리할 수도 있다.
인간들은 오랑우탄의 터전을 빼앗았다. 지금도 욕심을 채우고 호사를 누린다. 팜유는 초콜릿, 튀김용 기름, 과자, 비누와 화장품에 들어 있다. 과자는 더 달콤하게 하려고, 비누는 단단하고 거품이 많이 나게 하려고 팜유를 넣는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팜유는 우리 옆에 다가와 있다. 고아 오랑우탄이 발생하는 데 우리가 간접적인 역할을 한 것과 같다. 팜유 제품을 아예 멀리할 수 없을 테니, 조금씩 줄이면 엄마를 잃을 새끼가 더는 생기지 않게 할 수 있다.
노정래 전 서울동물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