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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야생동물

엉큼하고 잔혹하다고?…늑대는 억울하다

등록 2018-01-03 09:00수정 2018-01-03 11:59

[애니멀피플] 노정래의 동물원 탐험
2004년 서울대공원 탈출, 사람들 공포에 떨고…
남자는 다 늑대라고? 늑대에 대한 편견이다
서식지 축소로 가축에 손대자 ‘악마’된 비운의 동물
미국 다코타 지역의 회색늑대.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미국 다코타 지역의 회색늑대.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여자가 남자를 경계할 때 흔히 쓰는 말로 “남자는 다 늑대야!”라 한다. 이처럼 한국에서 늑대는 ‘엉큼’의 대명사로 비유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늑대는 북미에서 약400년 전에 인간과 함께 번성했던 동물이다. 늑대는 수렵생활을 하던 인간과 공생 관계로 함께 잘 살았었다. 그러다 인간이 수렵생활을 포기하고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면서부터 늑대는 인간의 적이 됐다. 배고픈 늑대가 쉽게 얻을 수 있는 가축에 손을 대기 시작하자 피해를 보던 인간이 그냥 놔둘 리 없다. 외국에서는 끝장을 보겠다는 생각이었는지 포상금까지 내걸고 늑대를 잡아들인 적도 있었다. 독약, 덫이나 총으로 늑대 소탕 작전에 나서기도 했다. 한술 더 떠 늑대가 사람들을 해친다는 누명을 씌워 소문을 내기도 했다. 사람들이 약속하기라도 한 듯 동화책이나 영화에서 늑대가 사람을 해치는 잔인한 동물이나 부정적인 남성으로 표현되는 것이 다반사였다.

늑대는 신사다

여우는 마을 근처 사람과 가까이 생활하지만, 늑대는 산속에 산다. 늑대가 사냥할 표적은 산속에 사는 동물 중에서 병들어 허약하거나 약해빠진 놈이 대상이다. 일단 표적이 정해지면 늑대 가족이 합심해 그놈만 골라잡아낸다. 개체수를 조절하는 생태계의 자연적인 작동 방식이다. 약하거나 병에 걸린 개체는 도태시켜 건강한 개체군을 유지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고 필요 이상으로 살생하지는 않는다. 간혹 산속이나 한적한 곳에 있는 양떼 목장을 노리기도 하나 닥치는 대로 잡아 죽이지 않고 식량으로 할 만큼만 잡아간다. 일제강점기 자료에 의하면 늑대가 사람을 물어 죽인 기록이 있다. 하지만 늑대가 육식동물이라 할지라도 이유 없이 다른 동물을 해치지는 않는다. 그 당시 무슨 사연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 늑대가 사람과 접촉한 예로 2004년 서울대공원에서 다른 기관으로 이동하던 늑대가 탈출한 적이 있다. 9시 뉴스까지 나서서 야성이 있는 늑대가 민가로 탈출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 뉴스를 본 경기 과천시민들은 혹시 사람을 해칠까 봐 대문을 걸어 잠갔을 것이다. 과천 문원동 동네 골목으로 지나가던 늑대를 본 시민의 신고로 붙잡혔고 사람을 해치기는커녕 꼬리를 뒷다리 사이에 넣어 잔뜩 겁을 먹은 상태였다.

늑대는 평생 일부일처로 사는 종이다. 엄마 아빠가 먹이를 구해 와 새끼를 보살핀다.  걷고 있는 회색늑대.  칼로스 델가도/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늑대는 평생 일부일처로 사는 종이다. 엄마 아빠가 먹이를 구해 와 새끼를 보살핀다. 걷고 있는 회색늑대. 칼로스 델가도/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사실 늑대는 신사다. 늑대는 가족을 이룬 이후 평생 일부일처로 산다. 자식이 태어나면 엄마와 아빠가 먹이를 구해 와 정성껏 보살핀다. 먼 곳에서 사냥한 먹이는 뱃속에 넣어 집으로 돌아와 게워 자식한테 준다. 먹잇감이 아무리 많아도 필요 이상으로 숨통을 끊어 놓는 경우는 없다. 자기가 사는 공동체 속에서 다른 종을 무차별적으로 해치지 않고 식량으로 쓸 정도만 솎아내며 조화롭게 살 줄 아는 종이다.

인간이 늑대에게 배울 것이 한둘이 아니다. 우리나라 이혼율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부채질하듯 황혼 이혼까지 늘고 있어 이혼이라는 단어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여지고 있어 안타깝다. 통계를 보면 경제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이혼율이 증가하는 추세지만, 동물들은 살기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가족이 똘똘 뭉쳐 이겨낸다. 늑대도 그렇다. 사람들은 자식을 낳아 간혹 버려 입양아를 만들기도 하나 늑대는 그런 생각조차 안 한다. ‘나만 잘살면 된다’는 식의 인간적 사고와 달리 늑대는 공동체에서 다른 종을 배려하며 산다. 그렇기 때문에 먹잇감이 바닥나지 않아 늑대가 굶어 죽지 않고 번성했다. 사람도 도덕적으로 그리고 배려하며 살면 결국 언젠가는 자기한테 되돌아온다. 누명 쓴 늑대는 억울하다. 이젠 “저 남자 정말 늑대 같지 않니?” 라며 호감을 표현하는 대명사로 바뀌어야 한다.

회색늑대 불러들여 성공한 도시

전통혼례에서 현대식 결혼으로 바뀌면서 신랑 복장이 한복에서 정장으로 바뀌었다. 신랑 정장이 고급화되면서 턱시도를 선호했다. 서양에서 들어온 복장이다. 턱시도는 원래 1880년대 미국 뉴욕주의 ‘턱시도 파크’라는 마을에서 유래했다. 이 마을에 살던 프랑스 귀족 출신 신사가 전통연미복의 꼬리 부분을 잘라내 입고 파티에 나타났다. 이 의상이 턱시도 역사의 시초다. 연미복이란 남성들이 결혼식, 약혼식 또는 큰 파티에 입는 최고의 정장으로 상의 뒷부분이 제비 꼬리처럼 늘어진 형태다. 이 제비 꼬리를 잘라내고 입은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턱시도는 ‘턱시도 파크’라는 지명을 따 붙여진 이름이다. 그럼 ‘턱시도 파크’라는 지명의 유래는 뭘까? 궁금하다. 마을 이름은 이곳에 살았던 인디언 부족 추장의 ‘턱시트’라는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턱시트’라는 인디언말을 영어로 옮기는 과정에 ‘턱시도’가 됐다. ‘턱시트’는 인디언말로 늑대라는 뜻이다. 그 당시 늑대가 좋은 의미로 통해 추장 이름을 그렇게 지었을 것이다. 요즘 결혼식에 턱시도를 입고 등장하는 신랑이 많다. 하객들에게 ‘나 늑대처럼 멋진 남자야!’라는 표현일까?

한국에서 늑대는 1967년 경북 영주에서 마지막으로 포획된 이후 종적을 감췄다. 야생 늑대.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한국에서 늑대는 1967년 경북 영주에서 마지막으로 포획된 이후 종적을 감췄다. 야생 늑대.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턱시도 파크처럼 늑대로 유명한 도시가 있다. 미국 미네소타주의 엘리시(Ely city)에 회색늑대(Gray wolf)가 많이 출몰했다. 엘리시는 회색늑대를 내치지 않고 끌어안아 1993년 국제늑대해설센터를 건립하여 늑대를 적극적으로 알렸다. 이를 계기로 해마다 이 도시에 10만명이 훌쩍 넘은 관광객이 북적거린다. 그 전에는 단지 몇천명 정도 들락거리던 도시가 늑대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늑대의 진실을 알고 누명을 벗긴 도시다. 현대 들어 늑대가 이렇게 우리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아쉽게 우리나라에는 1967년 경북 영주에서 늑대가 마지막으로 포획된 이후 종적을 감춰 야생에서 멸종됐다. 다행히 동물원에 늑대가 있어 야생으로 돌려보낼 준비는 돼 있다. 이런 일이 동물원의 역할이다. 상위 포식자가 없어 고라니와 멧돼지가 판치고 있는 우리나라 깊은 산 속에 늑대를 불러와야 할지 고민스럽다. 몇 년 전에 환경부에서 늑대 복원을 검토한 적이 있다. 복원에 앞서 늑대의 누명부터 벗겨줘야 국민이 늑대를 안심하고 맞이할 것이다. 우리나라 산에 늑대가 먹고살 식량이 충분히 있는지 반드시 확인한 후에 불러들여야 한다.

야생동물 보러 국립공원에 간다면?

멸종위기 야생동물을 먹잇감으로 여기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월악산에 산양, 지리산에는 반달가슴곰을 복원한 지 오래됐고 이젠 정착 단계다. 지금은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에서 소백산 여우 복원에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다. 사람들이 산양이나 곰을 보러 국립공원을 찾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미국 미네소타주의 엘리시처럼 소백산을 품고 있는 영주시에 여우를 보려는 관광객이 북적거리는 때가 올 것으로 믿는다. 아울러 가랑비에 옷 젖듯 인간이 다양한 생물과 공존해야 한다는 생각이 싹트길 희망한다. 경북 영양군에 국립멸종위기종복원센터가 올해 봄에 오픈할 예정이다. 이곳이 우리나라 멸종위기종 복원의 컨트롤타워 역할은 물론, 생물다양성의 중요성을 알리고 건강한 생태계가 더 유지 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노정래 전 서울동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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