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의 정글에서 보르네오오랑우탄 어미가 새끼를 업고 가고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사람은 어릴 때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이 많다. 부모 곁에 살면서 이슬비에 옷이 젖듯 부모를 닮아 간다. 소통하는 언어와 문화를 어릴 때 거의 다 배운다고 보면 된다. 한국에서 태어난 어린이가 미국으로 입양되어 자라면 한국말을 못하고 대신에 영어를 잘 한다. 한국 문화 대신 미국 문화에 젖어 익숙하다. 이렇게 어릴 때 생활이 중요하다. 동물은 사람과 다를까?
늑대소년 이야기
사람이 동물의 보살핌을 받고 자란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1800년대초 프랑스 생세랭이라는 마을에서 10대 초반쯤 되는 야생소년이 발견되었다. 겉모습만 사람일 뿐 동물과 같았다 한다. 동물 울음소리를 내고 아무 곳에나 용변을 봤다. 옷을 입히면 찢어 버리고 사람이 가까이 가면 이빨을 으르렁거리며 경계했다. 사람들은 이 어린이를 늑대소년이라고 불렀다. 이 늑대소년을 변화시키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겨우 화장실을 사용할 정도만 변화됐고, 몇 가지 단어를 사용할 뿐 더 진척되지 않았다 한다. 결국 그는 끝내 인간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죽었다. 이 늑대소년은 사람이었으나 어릴 때 사람이 아닌 동물의 보살핌을 받고 동물과 함께 자라 인간의 특성을 습득하지 못한 채 일생을 마쳤다. 어린 시절 학습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사례다.
동물들에게도 양육과 교육은 부모 몫이다. 어려서부터 어미에게 떼어진 새끼는 사회성이 발달하지 않는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동물은 어릴 때 엄마와 격리해 길러도 될까? 동물은 언어와 문화가 없을까? 서로 먹이 차지하려고 싸움질이나 하는 동물들은 어릴 때 부모에게 배울 것이나 있을까? 천만에 동물도 사람과 같다. 동물도 종마다 언어가 있어 자라면서 배운다. 조류 대부분은 엄마와 아빠가 자식을 돌본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는 부모에게 배우며 근처에 사는 같은 종인 다른 개체와 어울리면서도 배운다. 만약에 알에서 깨어난 어린 새끼를 어미와 격리해 사람이 기른다면 정상적으로 성장할까? 신체적인 발육이야 되겠으나 늑대소년처럼 혼란스러운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예로서 알에서 깨어난 A종의 새끼에게 B종의 소리를 들려주면서 사람이 기르면, A종의 소리 대신 B종의 소리를 흉내 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 A종은 다 커도 자기 종과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 없다. 수컷이라면 암컷에게 어떻게 구애를 하는지도 모를 것이다.
인공포육은 바람직했을까?
야생동물 포유류 대부분에서 자식 양육은 엄마 몫이다. 엄마는 어린 자식에게 젖을 먹일 뿐만 아니라, 포식자에게 잡아먹히지 않도록 보살펴 기른다. 새끼는 엄마에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배운다. 초식동물은 먹지 못하는 풀이 어떤 것인지 익히며 천적을 피하는 방법, 쫓겼을 때 눈치껏 따돌리는 방법도 배운다. 육식동물은 먹잇감을 어떻게 몰아붙여서 잡아야 할지, 어디를 물어야 단번에 숨통이 끊어지는지도 배운다. 다른 개체와 어울려 지내면서 사회성도 기른다. 살면서 평생 써먹어야 할 것을 배우는 중요한 시기다. 설령 이들이 동물원에서 생활하는 놈들일지라도 마찬가지다. 어릴 땐 반드시 어미와 함께 둬야 한다. 젖 뗀 이후 다 커 독립할 시기가 되면 부모가 자식의 등을 떠밀어 멀리한다. 섣불리 인간적인 시각으로 젖 뗄 무렵 됐다며 미리 격리하지 않아야 한다. 때가 되면 어미가 알아서 등 돌린다.
2010년 서울대공원 인공포육장의 침팬지. 현재 서울대공원 등 주요 동물원은 인공 포육을 중단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한때 우리나라 동물원에 인공포육장이란 곳이 있었다. 어미가 돌보지 않은 어린 새끼를 사육사가 기르면서 관람객에게 보여주는 곳이다. 귀엽고 예쁜 어린 동물을 보려고 주말이면 인공포육장 입구에 몇십 명씩 줄을 서서 대기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자기 차례가 되어 가까이에서 보는 기쁨을 오랫동안 느끼고 싶어도 뒤에서 밀고 들어와 더 머무를 수 없을 만큼 북적거렸다. 하마터면 죽을 뻔한 새끼를 인공 포육으로 살린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공 포육으로 자란 새끼 중 일부는 제구실을 못 하기도 했다. 다 커 무리로 보내진 초식동물 중 일부는 무리와 어울리지 못하고 왕따가 되거나, 육식동물 중 어떤 놈은 동료에게 물려 다치기도 했다. 이는 동료와 의사소통이 안 돼 벌어진 일이다. 서로 말이 안 통하니 왕따 시키고, 윽박질러도 서열 지키지 않고 눈치 없이 굴어 물릴 수밖에 없다. 학습되지 않은 대가를 왕따와 상처로 맞바꿨다. 전시 위주였던 동물원이 보전센터 기능을 하는 동물원으로 발전하는 단계에서 겪는 성장통으로 본다. 야생에서 생활하는 동료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주며 따로 과외라도 시켰더라면 정상적으로 성장했을까?
사자 새끼들이 어미의 젖을 빨고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케나 마사이 마리 국립공원의 코끼리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동물원에서 새로운 종이 필요하거나, 대를 이을 때, 유전적 다양성을 높이려고 외국동물원에서 동물을 도입하기도 한다. 국내에서 외국동물원으로 보낼 때도 있다. 이런 상황에 인공 포육으로 새끼를 살려내 예산도 아꼈다. 많은 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2014년 서울대공원을 비롯해 국내동물원 여러 곳에서 인공 포육을 과감히 중단했다. 관람객에게 인기 있는 곳이라 일부에선 반대했으나 중단하길 잘했다. 대신에 엄마가 보이는 곳, 엄마 냄새가 나는 곳에서 돌볼 수 있게 방법을 바꿨다. 사육사 손에 크게 하되 놀 땐 엄마와 함께 지내게도 했다. 이는 새끼가 엄마와 생활하면서 학습할 수 있게 하고 심리적 안정을 주려는 깊은 생각이 깔려 있다.
자연을 보호하고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 새 보러 다니는 탐조 마니아, 식물 탐사 등 관련 동호회가 많다. 특히 네 가구당 한 집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살 정도로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반려동물은 분양해오거나 지인을 통해 가족으로 맞이한다. 반려동물을 가능하면 어릴 때 데려와야 가족과 더 친밀하게 생활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언제쯤 데려와야 좋을지 반려동물 입장에서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겠다.
동물의 언어와 습성도 보전해야
동물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종 보전센터’다. ‘종 보전’을 하려면 대가 끊이지 않게 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종의 언어와 습성까지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런 취지로 전국 여러 동물원에서 인공 포육을 중단하고 엄마 곁에서 돌보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최근에 실내동물원과 동물카페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이곳에서 인기 있는 것 중 하나가 아기동물이다. 자기 언어를 잃고 허우대만 멀쩡한 동물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동료와 말이 안 통해 평생 가슴앓이 앓고 살지 않게 해야 한다. 부모와 떨어져 성장하는 동안 겪어야 할 심리적 스트레스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솔직히 관람객도 문제다. 새끼동물만 좋아하지 말고 엄마와 새끼가 함께 지내는 모습을 좋아하면 더 빨리 바뀌지 않을까?
노정래 전 서울동물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