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올무에 걸려 죽은 반달곰 NF-08. 올무는 동물이 빠져나가려 할수록 고통스럽게 몸을 옥죄며 죽음으로 몰아가는 덫이다. 종복원기술원 제공
최근 지리산 반달가슴곰이 야생에서 새끼 3마리를 출산한 가운데, 곰들의 이동 경로로 추정되는 광양시 백운산 자락에서 올무에 걸려 죽은 멧돼지 사체가 발견됐다. 멧돼지 사체 근방에서는 지난해 사용이 전면 금지된 포획 도구인 ‘올무’가 무더기로 수거됐다.
4일 시민단체 ‘반달곰친구들’은 지난 4월 27일 광양 백운산에서 올무에 걸린 멧돼지 사체와 23점의 올무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반달곰친구들은 “반달곰을 포함한 야생동물과의 공존을 위해 매월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불법엽구 수거 활동에서 올무에 걸려 썩어가는 멧돼지를 발견했다”며 “멧돼지가 죽은 곳에서 5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또 다른 올무가 발견됐으며, 3000평도 안 되는 이곳 주변에서 모두 23점의 올무를 수거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광양 백운산에서 올무에 걸려 죽은 멧돼지의 사체가 발견됐다. 반달곰친구들 제공
올무가 걸려있던 나무는 멧돼지가 살기 위해 친 발버둥으로 뿌리째 뽑혀있었다. 반달곰친구들 제공
사체 발견 당시 올무는 멧돼지의 목에 걸려있었다. 올무를 걸어놨던 나무는 멧돼지가 살기 위해 친 발버둥으로 뿌리째 뽑혀있었다. 반달곰친구들은 당시 상황을 전하며 “여러 상황을 종합해 봤을 때 올무들은 농작물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설치가 아니라, 야생동물을 잡기 위해 설치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전했다. 이어 “올무에 걸려 죽음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멧돼지가 당했을 고통을 생각하지 몹시 두렵고, 참담함에 고개가 숙여진다”고 덧붙였다.
올가미 모양의 사냥도구인 올무는 동물들이 쉽게 끊을 수 없도록 쇠줄로 만들어진다. 보통 살아있는 나무나 묵직한 나무토막에 묶어 설치되는데, 나무토막에 묶인 올무에 걸린 동물은 이 덫을 끌고 다니다가 나무토막이 바위나 큰 나무, 덩굴 등에 걸리면 줄이 조여지면서 생명을 잃게 된다. 올무에 걸린 동물들은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뼈가 골절되는 등 극심한 고통을 느끼게 되며 빠져나오기 위해 몸부림을 치다가 탈진해 죽는다. 이러한 잔인성 때문에 환경부는 지난해 12월 포획 도구에서 올무를 제외하는 ‘유해야생동물 포획 도구에 대한 규정’을 고시했다.
지난달 27일 광양 백운산 자락에서 수거한 올무 23점. 반달곰친구들 제공
멸종위기종도 여러 차례 희생됐다.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인 지리산 반달가슴곰은 지금까지 모두 5마리가 올무에 걸려 폐사했으며, 소백산에 방사된 여우 3마리도 올무에 목숨을 잃었다. 특히, 2018년 6월 이동형 올무에 걸려 죽은 반달가슴곰 KM-55가 발견된 지역과 이번에 올무가 무더기로 발견된 곳은 같은 백운산으로 반달곰들이 추가로 희생될 가능성이 있는 곳이다. 반달곰친구들은 “백운산은 지리산을 벗어난 곰들이 섬진강을 건너 이동한다고 가정할 때 충분히 지나갈 가능성이 있는 야생동물의 길”이라고 지적했다.
윤주옥 반달곰친구들 이사는 “올무와 덫은 목숨을 서서히 빼앗는 잔인한 살인 도구다. 멧돼지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막기 위해 장단기적 대책은 필요하지만, 밀렵 도구에 걸려 며칠을 고통받다 썩어져 구더기의 먹이가 되는 식의 살상이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