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5·18 유가족인 김소형씨를 안으며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버지가 온 것처럼, 아버지가 안아준 것처럼 따뜻하고 포근했습니다.”
18일 5·18민주화운동 37돌 기념식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따뜻한 포옹을 받았던 김소형(37·여)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행사 당시를 돌아봤다.
김씨는 ‘슬픈 생일’이라는 제목으로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고 연단을 물러나는 중이었다. 문 대통령이 등 뒤로 다가오는 걸 전혀 몰랐다. 다른 이의 손짓으로 대통령이 앞 자리를 떠나 20여m 떨어진 자신에게 다가왔음을 겨우 알아차렸다. 김씨는 그제야 뒤따라온 대통령을 끌어안고 한동안 눈물을 쏟았다.
문 대통령은 김씨를 따뜻하게 안아주며 “울지 마세요. 기념식 끝나고 아버지 묘소에 참배하러 같이 갑시다”라고 위로했다.
김씨는 “아빠가 안아준 것처럼 어깨가 넓게 느껴졌다. 어깨에 기대 목 놓아 울고 싶었다”고 당시 느낌을 회고했다.
김씨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생일을 갖고 있다. 그는 1980년 5월18일 광주에서 태어났다. 전남 완도에서 근무하던 아버지 김재평(당시 29)씨는 갓태어난 딸을 보러 18일에 출발했으나 광주 외곽이 봉쇄된 탓에 나주와 화순을 빙빙 돌다 사흘 만인 20일에야 가족을 만났다. 하지만 21일 잠시 묵었던 광주 화정동 동생 집에서 총소리에 놀란 갓난아이가 칭얼거리자 이불로 창문을 막으려다 계엄군이 쏜 총탄을 맞고 숨졌다.
‘5·18둥이’인 김씨는 이날 애절하게 편지를 읽어내려가 문 대통령을 비롯한 추모객들을 울렸다. 김씨는 “5·18은 제가 이 세상에 왔던 기쁜 날이기도 하지만 제 아버지를 빼앗긴 슬픈 날이기도 합니다. 만약 제가 그때 태어나지 않았으면 아빠와 엄마는 지금도 참 행복하게 살아계셨을 텐데”라고 흐느꼈다. 김씨는 이어 “한 번도 당신을 보지 못한 아이가 이제 당신보다 더 커버린 나이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당신을 이렇게 부를 수 있습니다. 아버지, 당신이 제게 사랑이었음을, 37년 전에 당신을 비롯한 모든 아버지가 우리가 행복하게 걸어갈 내일의 밝은 길을 열어주셨음을 (알게되었습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라고 오열했다.
앞자리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문 대통령은 안경을 벗고 손수건을 꺼내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았다. 이어 편지를 다 읽고 퇴장하는 김씨를 따라가 안으면서 위로했다.
문 대통령은 약속대로 기념식이 끝나자 김씨와 함께 아버지 묘소를 참배했다. 김씨는 참배를 마친 뒤 “대통령이 행사 때 약속을 지켜주셔서 고맙다. 5·18의 진실을 밝히겠다는 약속도 지킬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고 말했다.
안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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