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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솔닛 “대통령 탄핵 비법이 뭔가요?” 박원순 “화장실 제공이요”

등록 2017-08-28 16:10수정 2017-08-28 21:04

박원순 서울시장·작가 리베카 솔닛 대담

박 “뉴욕 하이라인에서 영감 얻어 7017 추진”
솔닛 “인프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민 공감”

솔닛 “서울에서도 ‘여성들만의 밤’ 추진했으면”
박 “제안해줬으니 여성단체 도움 받아 추진”
<걷기의 인문학> 저자인 리베카 솔닛이 2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로 7017' 인근 '여행자 카페'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걷기의 인문학> 저자인 리베카 솔닛이 2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로 7017' 인근 '여행자 카페'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맨스플레인’이란 용어를 만들어낸 책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의 미국 작가 리베카 솔닛은 의자에 앉는 것을 사양했다. 서있는 것이 더 좋다고 했다. 27일 저녁 서울로7017(이하 7017)의 여행자카페를 찾은 솔닛 작가는 그렇게 꼿꼿하게 서서 박원순 서울시장을 기다렸다.

솔닛은 여성주의자로 널리 알려졌지만, 작가, 비평가, 환경·인권 운동가 등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얼마전 한국서 개정판이 출간된 <걷기의 인문학>(반비)은 걷기와 도시에 대한 전문가로서 그의 면모를 보여준다. 7017에서 솔닛을 만난 박 시장은 “7017 사업이 어려움 끝에 성공을 거뒀고, 서울시는 보행자 도시를 만들려고 노력 중이다. 조언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솔닛 작가는 “인프라를 바꾸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인식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일”이라고 답변했다. 솔닛 작가는 “한국에서 대통령을 탄핵하는 비법”을 물었고, 박 시장은 “시민들에게 화장실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대답했다.

솔닛 작가와의 대담은 박 시장의 느리지만 유창한 영어 실력 덕에 시종 영어로 이뤄졌다. 먼저 박 시장이 이날 개장 100일을 맞은 7017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걷기의 인문학> 저자인 리베카 솔닛이 27일 오후 서울 중구 '7017 서울로' 인근 '여행자 카페'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걷기의 인문학> 저자인 리베카 솔닛이 27일 오후 서울 중구 '7017 서울로' 인근 '여행자 카페'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박원순 시장(이하 박)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을 보고 영감을 얻어 이 고가도로를 보행도로로 바꾸고자 했다. 이것은 내 선거 공약이었다. 그러나 시민들을 설득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인근 주민과 남대문 시장 상인들이 반대해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이 사업을 마치자 100일 동안 380만명의 시민들이 이 곳을 찾아와 시장이 더욱 활성화됐다.

리베카 솔닛(이하 솔닛) 이것은 도시의 보행성을 높이기 위한 더 큰 사업의 하나였나?

물론이다. 보행친화적 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강한 비전을 갖고 있고, 이제 시작 단계다. 더 많은 사업을 할 것이다. 지금은 시민들이 차에 중독돼 있지만, 미래엔 시민들의 생각이 바뀔 것이다. 두 다리로 걷도록 설득하고 싶다. 도심에서 차를 추방하고 싶다.

솔닛 보행자를 위한 도시 비전은 대중교통 이용을 장려하는 것도 연결돼 있나? 이렇게 큰 도시에서는 걷기만으로 어디든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서울의 대중교통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편리한 지하철과 버스가 있다. 카드 하나로 지하철과 버스, 택시까지 싸게 이용할 수 있다. 승용차를 몰지 않아도 서울 어디든 쉽게 갈 수 있다. 대중교통이 더 편리하고 시간이 절약된다. 보행자 도시를 위해서 조언해줄 것이 있나?

솔닛 보행자 도시가 되기 위해 인프라보다 더 어려운 것이 사람들의 생각이다. 내가 사는 샌프란시스코는 걷기 위한 인프라가 잘 돼 있는데, 시민들이 차량을 선호하면서 그런 노력이 무색해진 측면이 있다. 젊은 부유층은 버스가 자신들의 품격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지 우버 택시를 많이 이용한다. 샌프란시스코가 우버의 발상지라는 것이 안타깝다. 보행 중심 도시는 물리적인 해법만으로는 안 되고 시민들에게 도시의 미래에 대한 인식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관건이다.

보행과 대중교통에 이어 솔닛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여성주의’로 화제를 돌렸다. 박 시장은 ‘여성들만의 밤’이라는 솔닛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솔닛 콜롬비아에서는 정말 멋진 시도가 있었는데, 바로 ‘여성들만의 밤’이란 행사였다. 콜롬비아에서는 이 행사를 계기로 남성들의 아이 돌보기, 공공 공간의 안전, 누릴 권리 등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19세기에 서울에서도 밤에 여성들만 통행하도록 한 일이 있었다고 책에서 읽었고, 내 책에서도 인용했다.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으로 많은 여성들이 깊은 우려를 갖게 됐다. ‘여성들만의 밤’을 서울에서 추진할 생각이 있는가?

제안해줬으니 여성단체들의 도움을 받아서 한번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걷기의 인문학> 저자인 리베카 솔닛이 2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로 7017' 인근 '여행자 카페'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걷기의 인문학> 저자인 리베카 솔닛이 2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로 7017' 인근 '여행자 카페'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이날 가장 많이 논의된 주제 가운데 하나는 ‘도시 공간과 민주주의’였다. 솔닛은 한국의 촛불혁명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박 시장은 촛불혁명의 의미와 이를 보호하기 위한 서울시의 노력을 설명했다. 결론은 민주주의에도 화장실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솔닛 공공 공간에서의 걷기는 민주주의 실현에도 핵심적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 민주주의 역사는 곧 공공 공간인 도시의 역사였다. 도시의 역사는 걷는 데서 시작했다. 미국에 대해 걱정되는 것은 자동차 중심 도시여서 사람들이 차 밖으로 나오지 않고 공공 공간에 모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 시민이 지난 촛불시위에서 서울이라는 도시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궁금하다. 또 시장님은 그 상황이 우려스럽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한국에서 대통령을 탄핵하는 비법을 배워가겠다고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웃음)

지난 겨울 촛불시위는 매우 역사적인 일이었다. 한번에 170만명이 모인 적도 있었는데,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고 테러도 없었다. 서울시 정부와 공무원들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했다. 시위 시민들에게 화장실을 제공하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솔닛 민주주의도 화장실을 필요로 한다.(웃음)

지난 촛불시위는 노벨평화상 감이다. 비폭력 저항을 통해 정권을 퇴진시키고, 정권을 교체했다는 점에서. 독재자는 이런 광장이나 거리 등 공공 공간을 최대한 없애거나 통제하려고 해왔다. 인기가 좋은 시청 앞 광장은 전임 시장 때까지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취임한 뒤 신청자들 사이에 충돌만 없으면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게 바꿨다.

솔닛 공공 공간의 민주화를 이룬 것이다.

솔닛 선생의 의견에 따라 실천한 것이다. 나는 솔닛 선생의 제자다. (웃음)

<걷기의 인문학> 저자인 리베카 솔닛이 2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로7017'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산책을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걷기의 인문학> 저자인 리베카 솔닛이 2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로7017'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산책을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두 사람은 여행자카페에서의 이야기를 마치고 직접 7017을 걸어보기로 했다. 7017에 올라가자 많은 시민들이 나와 있었다. 박 시장과 솔닛 작가가 대화하는 것을 발견한 많은 시민들이 두 사람을 곁으로 와서 두 사람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마치 두 사람이 7017의 남녀 조형물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서울역을 가리키며) 저것이 서울의 중앙역이다. 저 역을 유라시아 철도의 출발역이자 종착역으로 만들려고 한다.

솔닛 매우 고전적인 느낌의 기차역이다.

이전의 서울시 정부는 과거를 파괴하고 철거했지만, 나는 역사를 보존하고 살리려고 한다.

솔닛 7017은 도심과 도심 밖의 공간을 바라볼 수 있는 게 인상적이다. 시민들이 좋아하는 열린 공간이다.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과 비교하면 7017이 더 크고 높다. 하이라인은 부유층의 동네이기도 하고 호화로운 느낌이 들어서 누구나 환영받지는 못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7017은 누구나 와서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 같다.

서울 도심은 작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고, 그 산들을 따라 18㎞의 성벽이 건설됐다. 이 성벽 길을 따라 걸을 수 있다. 이렇게 시민들에게 걷기 좋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솔닛 서울에 성벽을 따라 걸으러 다시 와야겠다.

기자 서울은 당신이 사는 샌프란시스코와 뉴욕 가운데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솔닛 서울은 로스앤젤레스에 가깝다. 7017 아래의 도로의 모습은 로스앤젤레스의 슈퍼 하이웨이 같은 느낌이 든다. 차를 기준으로 도시를 설계한 것이다. 그에 비해 뉴욕은 상당 부분 19세기적이고, 뉴욕 맨해튼은 서울보다는 더 작은 느낌이 든다. 로스앤젤레스는 여러 면에서 대단한 도시지만 지나치게 자동차 중심이다.

<걷기의 인문학> 저자인 레베카 솔닛이 2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로 7017' 중림동 방향 출구에 설치된 공공미술작품 '윤슬'을 둘러보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걷기의 인문학> 저자인 레베카 솔닛이 2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로 7017' 중림동 방향 출구에 설치된 공공미술작품 '윤슬'을 둘러보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대담의 마지막에 박 시장은 솔닛 작가에게 보행자 도시를 위한 서울시 자문단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했다. 솔닛 작가는 “생각해보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서울시가 ‘여성들만의 밤 행사를 연다면 다시 오겠다. 여성들을 위한 멋진 축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아직 결정할 수 없지만 매우 좋은 아이디어”라고 공감을 표시했다. 솔닛은 다음 약속 장소로 떠나는 박 시장을 바라보며 자신의 지인에게 “참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글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사진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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