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충북유족회가 21일 오전 충북도청 앞에서 과거사법 개정을 환영하고 민간인 학살 사건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오윤주 기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어서면서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서산개척단 사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 등의 진상 규명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 배상·보상안과 벌칙 조항 삭제, 청문회 비공개 등을 놓고 불만의 소리도 나온다.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927일 동안 농성을 해온 형제복지원 피해자인 최승우씨 등은 21일 오후 농성을 해단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과거사법 통과까지 10년 걸렸다. 농성은 끝내지만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의 진실을 향한 걸음은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국회에서 과거사법이 통과돼 진실화해위원회가 10년 만에 다시 문을 열고 활동을 재개한다. 진실 규명은 처벌이 아니라 진실 자체가 목적이다. 진정한 국민 통합의 길”이라며 “실효성 있는 조사로 피해자·유족 등의 한을 풀고, 인권국가의 위상을 확립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과거사법 국회 통과 의미를 부여했다. 문 대통령은 변호사 때 인권위원으로 진상조사에 참여했던 형제복지원 사건과 선감학원,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등 국가 폭력으로 인한 인권 침해 사건을 예로 들었다.
과거사법 통과에 따른 국가 권력 인권 침해, 민간인 학살 등 각종 사건의 진상 규명을 바라는 지방정부, 유족회, 대책위원회 등의 기대도 쏟아진다. 한국전쟁 충북유족회는 충북도청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가뭄에 단비 같은 과거사법 개정을 환영한다. 국가가 나서 미완의 역사적 과제를 해결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영철(79) 서산개척단 진상규명대책위원장은 “과거사법 통과로 한 맺힌 가슴이 뚫리는 것 같다. 1700여명이던 피해자가 이제는 50여명 남았다. 이들이 억울하게 눈감기 전에 정부가 후속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앞서 지난 20일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도 “형제복지원 사건 해결의 진정한 첫걸음이 시작됐다. 국가 차원의 조사가 신속·철저하게 진행되도록 자료를 제공하고 협조하겠다. 피해자들을 위한 추가 지원책도 만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쉬운 소리와 함께 실질적인 과거사 규명 요구도 나온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전국유족회는 과거사법의 보완과 재개정을 요구했다. 이 단체 윤호상 상임대표의장은 “이번 과거사법은 누더기법으로 불린 지난 과거사법보다 더 퇴보한 것으로 진실을 규명하기엔 너무 미흡하다. 진상규명 범위, 위원회 구성, 조사 기간 등을 조정하고, 비공개 청문회를 공개해야 한다. 배상·보상 문제 등을 포함하는 등 21대 국회에서 재개정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박만순 충북역사문화연대 대표는 “수사권 도입 등 조사권을 강화해야 진상을 제대로 밝힐 수 있다. 과거사 재단 설립, 배상·보상 방안 마련 등도 필요하다”고 했다.
오윤주 송인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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