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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모은 ‘약초 빅데이터’ 공개해 세상 이롭게 해야죠”

등록 2021-12-23 19:16수정 2021-12-24 02:30

【짬】 세계약초연구원 박종철 원장

지난 9월 서울 홍릉수목원을 찾은 박종철 세계약초연구원장. 박종철 원장 제공
지난 9월 서울 홍릉수목원을 찾은 박종철 세계약초연구원장. 박종철 원장 제공

“33년을 학교에서 배웠고, 33년을 대학에서 연구했다. 남은 세월은 약초 지식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며 살고 싶다.”

<대한민국 약초 도감>(가칭) 발간 작업에 매진 중인 박종철(66·순천대 명예교수) 세계약초연구원장의 말이다. 생약학 연구에 매진해온 그는 지난해 순천대 퇴임 뒤 순천에 세계약초연구원을 설립하고 인근 고흥 동강에 자료 450여점을 내놓은 박종철약초전시관도 열었다.

그는 중국과 일본을 50여차례 방문하는 등 세계 곳곳에 출장을 다녔다. 그때마다 방문지의 식물원과 재배지를 찾아 사진을 찍고 자료를 수집했다. 재작년에 프랑스 파리식물원, 체코 카를대식물원, 중국 광시약용식물원, 투루판사막식물원 등 22개 나라 식물원 147곳의 식물 7300종의 약초 학명 빅데이터를 정리했다. 약초사진이 평균 7MB로 15만장, 일반사진이 평균 3MB로 35만장에 이른다.

“퇴근 때 외장하드 6개를 꼭 챙깁니다. 이걸 잃어버리면 제 인생은 빈털터리가 되고 말 것”이라는 박 원장은 “일반여행을 가도 일행의 양해를 구해 식물원으로 달려갔다. 2017년 7월 스위스에 갔을 때 취리히식물원에서 2시간 만에 약초 167종 1211장, 베른식물원에서 2시간 만에 약초 173종 1220장을 찍는 식으로 줄달음질을 쳤다. 늘 죽을 힘을 다했으나 일행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현장 촬영도 힘들지만 이후 자료에 가치를 불어넣는 일은 더욱 고단했다. 사진을 분류해 학명을 입력하고, 이를 식물학명 누리집 ‘더 플랜트 리스트(The Plant List)’와 대조하는, 지겹고 지치는 작업을 반복했다. 촬영지의 영문 이름과 주소도 곁들여 근거를 남겼다.

그가 1년 반 전부터 준비해온 <대한민국 약초 도감>은 국내 약초 800여종의 효능을 집대성한 1500쪽 분량 책이다. 약초마다 특징과 쓰임뿐 아니라 어린잎, 꽃, 덜 익은 열매, 익은 열매, 잎의 앞면과 뒷면, 약재로 만든 사진까지 선보일 예정이다. 한국은 물론 북한, 중국의 참고 문헌 쪽수까지 꼼꼼하게 색인을 달아 후학의 연구를 돕기로 했다. 또 약초의 비교 연구를 위해 비슷한 식물을 찾아 함께 실을 방침이다.

“하루 9시간 정도 작업하고 있다. 800종 중 절반 정도 마쳤다. 하루 3종 정도 정리하니 일년쯤 더 정성을 들여야 할 듯하다”는 그는 “약사 자격증이 있으니 (주변에서는) 약국 열고 편하게 살라고 한다. 하지만 평생 찍은 수십만장의 사진과 대학에서 닦은 연구 경험을 사장하고 싶지 않다. 돈도 들고 힘도 들지만 시작했으니 제대로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순천대 퇴임 뒤 설립

고흥에 박종철약초전시관도

“국내 약초 800종 효능 집대성

‘약초 도감’ 내년까지 낼 계획

사진 50만장 등 순차 공개도”

연구 활용 ‘숙취 해소’ 상품 출시도

부산대 약학과 출신인 그는 1988년 순천대에 부임한 뒤 미국 조지아대 천연물연구소와 일본 도야마의과약과대 한약연구소, 미야자키대 천연물연구실 등지에서 방문연구원을 지냈다. 그동안 전공인 생약학 분야에서 과학인용색인(SCI)급 37편을 포함해 모두 183편의 학술논문을 발표하는 등 탄탄한 연구 이력을 쌓았다.

그가 집중한 엉겅퀴와 해당화 분리물질 연구는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국제학술지 <식물요법>에는 엉겅퀴에서 분리한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간 독성을 해독하는 효과가 있다는 논문이 실렸다. 이후 엉겅퀴의 성분과 약리작용에 관한 연구가 독일 학술지 <약용식물>과 네덜란드 학술지 <식물화학> 등에 잇따라 실렸다. 해당화 뿌리에서 분리한 사포닌의 분석 결과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출판사에서 나온 책 <사포닌>과 중국 국가중의약관리국의 도서 <중화본초>에도 수록됐다.

연구논문에 전념하던 그는 2011년 천연물의 약용효과를 널리 알리는데 학술지보다 일반도서가 유용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후 관심 분야인 한약·약초·약재 등 분야의 저술을 차근차근 준비했다. 이후 1192쪽에 이르는 방대한 저작 <약초 한약 대백과>를 비롯해 <한국의 약초>, <세계의 약초 어디에 있는가> <열대 약용 식물도감> 등 저서 18권을 냈다. 이 가운데 올해 출간한 <동의보감 속 우리약초>는 세종도서 학술부문 우수도서, 2007년 냈던 <한방건강기능식품학>은 학술원 우수도서로 선정됐다. <한방약초 약차>는 4판까지 찍을 정도로 인기를 누렸고 <중국 약용식물>, <일본 약용식물>, <약이 되는 향신료 백과> 등은 이 분야 최초 시도로 시선을 끌었다. 2019~2020년엔 서울 허준박물관과 순천 순천대박물관에서 2차례 개인 약초전시를 열기도 했다.

연구 결과를 생활에 접목하는 데도 정성을 들였다. 전남의 특산물인 연잎과 녹차를 가미한 기능성 소금을 제작해 반향을 일으켰다. 또 순천 한약재 택사를 활용해 로션과 바디워시, 핸드크림을 개발했고, 구례 야생화를 이용해 미용제품과 청량음료를 만드는 특허를 얻기도 했다. 나주 미나리로 숙취해소 음료를 만들어 제약회사에서 상품으로 출시하기도 했다.

교수 정년퇴임 뒤 더 바쁜 박 원장에게 계획을 물었다. “작업하느라 어깨도 망가지고 눈도 흐려졌다. 몸을 상해가며 얻은 소중한 자료가 인류를 이롭게 하는 데 쓰였으면 하는 마음으로 인터넷에 공유하려 한다. 기초자료인 도감과 백과의 발간, 약초사진 빅데이터 공유 등을 단계적으로 진행하겠다. 버드나무에서 아스피린, 팔각회향에서 타미플루를 개발했듯이 코로나19 등 감염병의 치료제 개발에도 생약학이 기여할 수 있게 바탕돌을 놓으려 한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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