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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방음벽 부딪혀 세상 뜨는 새의 억울함 알리고 싶어요”

등록 2022-01-02 18:55수정 2022-01-04 11:53

[짬] 동물권 활동가 유휘경씨

동물권 활동가 유휘경씨.
동물권 활동가 유휘경씨.

“다큐멘터리를 보고 야생조류들이 유리창에 부딪혀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바로 눈앞에서 새의 죽음을 목격할 줄은 몰랐다.”

2021년 3월 봄, 광주에서 전남 여수로 가는 지방도로에서 투명방음벽에 부딪혀 숨진 새 세 마리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동물권활동가 유휘경(29)씨의 말이다.

그날 새들의 죽음을 목격한 유씨는 “새들의 죽음을 알리고 싶어” 주변 지인과 사회적관계망서비스 등을 통해 새들이 투명방음벽에 부딪혀 죽지 않는 방안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친구인 ‘짱돌’(본명 김지영)이 동참을 선언했고, 유씨가 활동하는 광주지역 동물권소모임 ‘밥 잘사주는 성난 비건’ 소속 회원들도 속속 동행을 약속했다. 문예창작학과 출신으로 본명보다 활동가 이름인 ‘희복’을 더 애용한다는 유씨는 동물성 원료로 만들어진 음식은 먹지 않는 비건(채식주의자) 지향인이다.

2021년 12월 26일 광주의 한 아파트에서 투명방음벽에 부딪혀 죽은 새.
2021년 12월 26일 광주의 한 아파트에서 투명방음벽에 부딪혀 죽은 새.

유씨는 회원들과 새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새들은 투명유리를 인식하지 못하고, 대부분이 높이 5㎝, 폭 10㎝ 미만인 공간은 통과하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최소 가로 3㎜, 세로 6㎜ 이상 무늬가 있어야 앞에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한다는 점이 신기했다.

유씨와 ‘밥 잘사주는 성난 비건’ 회원들은 2021년 9월부터 광주의 도심권 유리창 및 투명방음벽에 부딪혀 죽은 새의 종류와 수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엔 전문 탐조인 김윤전 국립생태원 외부연구원과 오승준(전남대 생물학과 학생)씨를 초청해 영산강에서 새들을 만났다. 유씨는 “탐조 경력이 오래인 전문가들이 새들의 특징을 바로바로 알려줘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투명방음벽 부딪힌 새의 죽음

지난해 봄 눈앞에서 목격하고

광주 동물권 소모임 회원들과

억울한 새의 죽음 실태 조사

“새 사라지면 인간 삶도 피폐해져

방음벽 조류 충돌 저감 조치 시급”

광주 한 아파트 단지를 찾아 새들의 죽음을 기록하는 동물권 활동가 유휘경씨.
광주 한 아파트 단지를 찾아 새들의 죽음을 기록하는 동물권 활동가 유휘경씨.

지난달 26일엔 야생조류 투명방음벽 충돌 실태 파악을 위한 현장조사에도 나섰다. 참가자들은 교통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높은 투명방음벽이 설치된 광주시 동구 학동 무등산아이파크 아파트와 남구 방림동 명지로드힐 아파트 주변을 살폈다. 두 아파트 투명방음벽에서만 흰배지빠귀, 멧비둘기, 집비둘기, 직박구리 등 새 51마리가 벽에 충돌해 죽어 있었다.

유씨는 “무등산아이파크 아파트 투명방음벽엔 맹금류 스티커가 부착돼 있었지만, 충돌방지엔 별 도움이 안 됐다”며 “관심이 없었을 땐 그냥 지나쳤는데, 이젠 유리창이나 투명방음벽을 보면 ‘새들의 무덤’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유휘경씨 등 밥 잘 사주는 성난 비건 회원들이 2021년 11월 전문 탐조인 김윤전 국립생태원 외부연구원과 오승준씨를 초청해 영산강 강변에서 새들을 관찰하고 있다.
유휘경씨 등 밥 잘 사주는 성난 비건 회원들이 2021년 11월 전문 탐조인 김윤전 국립생태원 외부연구원과 오승준씨를 초청해 영산강 강변에서 새들을 관찰하고 있다.

야생조류가 투명방음벽이나 유리창에 부딪혀 죽는 일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은 수년째 제자리다. 김윤전 연구원은 “국내에서 하루 2만 마리, 연간 800만 마리의 야생조류가 인공구조물인 유리창과 투명방음벽에 부딪혀 죽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전국 22개 자치단체에서 야생조류 충돌방지를 위한 조례를 제정한 것은 긍정적이다. 광주시는 2021년 4월 장연주 시의원(정의당)이 대표발의로 공공기관이 설치 또는 관리하는 건축물이나 투명방음벽에 조류 충돌 저감 조치를 설치해야 한다는 ‘광주광역시 조류 충돌 저감 조례안’을 제정했다.

유씨는 “정부 차원의 법제화와 관련해 국회에서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금으로선 투명방음벽에 조류 충돌 저감 테이프 등을 부착하도록 권고할 수 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자치단체나 정부에서 제재할 수는 없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광주시 동구 한 아파트에 설치된 투명방음벽.
광주시 동구 한 아파트에 설치된 투명방음벽.

“새들이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죽는다는 것은 생명존중 차원에서 마음 아픈 일이다. 인간의 편리함 때문에 죽어가는 새들이 늘어나면 인간의 삶도 건강해지기 어렵다.”

유씨는 “이 순간에도 새들이 죽어가고 있다.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 새들을 살릴 수 있고, 그 새들은 환경 생태계 회복의 파수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야생조류 등 동물권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다.

‘밥 잘사주는 성난 비건’은 광주시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조사 시민 모니터링 단을 모집하고 있다. 유씨는 “시에 요청해 받은 자료를 보면 광주엔 순환도로 등에 46개의 투명방음벽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파트단지 등 투명방음벽이 몇 개인지 자료는 없더라”며 “모니터링단을 꾸려 그 실태부터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사진 유휘경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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